주간동아 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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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빼라,쓸쓸하지 않으려면

소설가 박범신 “겉으로 큰소리치지만 외로워, 솔직한 모습 마주할 시간 필요”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입력2006-07-24 13: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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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힘 빼라,쓸쓸하지 않으려면
    쓸쓸하다’라는 표현은 자의식 강한 베이비붐 세대 중년층의 심리와 문화를 규정하는 형용사다. 소설가 박범신 씨가 2005년 펴낸 자전적 에세이 ‘남자들, 쓸쓸하다’에도 “우리가 큰소리치고는 있었지만 사실 이렇게 외로웠다”라고 말하는 중년 남성들의 토로가 가득하다. 저자는 약간의 엄살이 섞인 솔직하고 구체적인 고백을 통해, 특히 어떤 한국적 상황들이 중년을 막다른 길로 몰아가는가를 지적하고 있다. ‘남자들, 쓸쓸하다’를 덮고, 이 중년의 소설가에게 ‘여자들도 쓸쓸하다’라고 말했다. 쓸쓸하지 않은 중년이란 가능한 것일까.

    -중년의 남자들은 왜 쓸쓸해졌을까.

    “이전엔 가부장제가 남자들의 권력 행사를 가능하게 했다. 지금 집집을 들여다봐라. 원천봉쇄다. 가부장제는 긍정적이진 않았지만, 형식적으로 가족 구성원이 되도록 강제했다. 그러나 지금 남자들은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았다. 남자들을 무장해제하려면 가족들이 노력해야 한다. 사회에서도 ‘실패한’ 남자는 살아남기 어려워졌다. 전근대에 여성의 지위가 낮아서 가정이 불행했던 것과 똑같은 이치다.”

    -여성주의자들로부터 비난도 꽤 들었을 것 같다.

    “글을 꼼꼼히 읽은 분들은 공격할 필요가 없다고 느끼는 것 같더라. 결국 남자들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말이니까.”



    힘 빼라,쓸쓸하지 않으려면

    2005년 말 산악인 엄홍길 씨와 함게 킬리만자로 정상에 선 박범신 씨(오른쪽에서 두 뻔째). 산 위에서 늘 새로운 꺠달음을 얻는다고 한다.

    -어떤 변화인가.

    “가부장제 교육을 받은 남자들은 겉으로만 강한 것이 문제다. 상대에게 질까, 손해 볼까 덜덜 떨면서도 강한 척한다. 가족과 함께 식당에 가서 종업원이 굽신대지 않으면 자존심이 상한다. 큰소리를 쳐야 가족 앞에서 쪽팔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얼마나 피곤한 인생들인가. 어려서부터 어머니가 아들을 최고라고 기르며,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한다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여자랑 실력으로 붙으면 못 당하니 아예 얼이 빠져 있거나, 더 독재적으로 행동하기도 한다.

    중년 남자들은 힘을 빼야 행복해진다. 질 수도 있고 손해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 그게 중년이다. 아이들이 트로트를 싫어하면, 요즘 유행하는 노래가 뭔지 들어봐라. ‘내 덕에 이렇게 살고 있는데 나를 무시하냐’는 태도를 가졌다가는 더 쓸쓸해진다.”

    -남자와 여자 간의 문제이면서 세대 간의 문제인 듯하다.

    “지금 남녀 사이의 갈등보다 더 심각한 것이 세대 간의 문화 차이다. 중년도 하나의 사람으로 봐야 하며, 중년 스스로 부족한 인간임을 인정해야 한다. 사회가 강퍅하고 몰인정하다 보니, 나 이외의 다른 사람들도 소중하다는 사실을 가르치지 않는다. 자신을 솔직하게 들여다보자. 과부하가 걸려 있는 걸 모르겠나. 100볼트짜리 인간인데 150볼트에 꽂아 돌아가고 있다. 퓨즈가 끊어지지 않은 채 타는 중이라 과부하가 걸린 걸 알지 못할 뿐이다.”

    -어떻게 해야 중년이 행복해질까.

    “중년에게는 쉼표가 필요하다. 쉬기 위한 여행도 좋다. 관광이 아니다. 한 열흘 혼자 돌아다니면 독기도 빠지고 중년이 된 솔직한 내 모습과 마주할 수 있다. 한 20일 돌아다니면 살기 싫어진다. 그 고비를 넘기면 중년이 된 자신을 인정하고, 힘과 에너지도 얻을 수 있다. 지금까지의 인생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계획도 세울 수 있다.”

    그는 독기를 빼기 위해 히말라야로 간다고 했다. 기자가 그에게서 진정성을 느낀 이유는 히말라야 때문도 아니고, ‘가부장제의 희생자’인 남성들에게 새삼 동정심을 갖게 돼서도 아니다. ‘겨우’ 쉰여섯 살에 대학에 들어가 판소리를 공부하면서 ‘제 몫을 다하고자 애쓰는’ 이 중년 소설가의 부인을 만났기 때문이다. 그는 정말 쓸쓸했던 것이다.

    인생의 오후에 읽을 만한 책

    힘 빼라,쓸쓸하지 않으려면
    한국인의 평균수명이 80세를 넘었다. 하지만 대다수 40대 중년들에게 앞으로 남은 인생은 설렘보다는 두려움과 초조함이 더 큰, 미지의 불안한 세상이다. 요즘 중년들은 노후자금을 모으는 것만으로 행복한 노후가 보장되리라고 믿지 않는다. 고용불안, 저금리, 불확실성으로 대변되는 시대에 중년의 유일한 목표가 노후자금 모으기가 될 경우 오히려 좌절감만 커질 위험성도 있다. 나이 들어 돈에서 해방될 수는 없을까? 한 일본 작가는 “나이를 잘 먹는 법은 잃어버릴 것을 준비하는 것이다. 준비해서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태도를 갖추는 것”이라고 말한다.

    베이비붐 세대가 중년을 맞으면서 2~3년 전부터 국내 출판계에도 나이 잘 먹는 법에 대한 실용서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나이 든다는 것’이 인생의 현자가 되는 길임을 가르쳐주는 행복한 책들이다. 마흔 이전엔 두려워 말고 마흔 이후엔 후회하지 말라(아르고스) 제목 그대로 두려움 없이, 후회 없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에 대해 말하는 책이다. 저자 즈카오는 처세, 마음, 선택, 행동, 화술, 인간관계라는 인생의 6가지 카테고리 안에서 사람들이 흔히 저지르는 사소하지만 중대한 실수와 고정관념에 대해 성찰하고, 풍부한 사례와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지혜를 구체적으로 제안하고 있다.

    중년의 위기를 맞은 로미오와 줄리엣(나무생각)중년의 위기, 갱년기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사이에 다가와 중년들을 당혹스럽게 만든다. 브리기테 히로니무스가 쓴 이 책은 한 여성의 생생하고 흥미로운 갱년기 보고서다. 저자는 길들여지는 것과 안정감, 감정적 욕구와 분출, 그리고 분노와 변화 등 갱년기 여성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나아가 사랑과 배반에 대해, 우정과 적대관계에 대해, 투쟁과 노력에 관해, 붙듦과 놓아줌에 대해 묻고 생각해본다. 물론 이는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는 변화를 위한 것이다.

    서드 에이지, 마흔 이후 30년(사이) 하버드대학 성인발달연구소에서 임상실험을 통해 중년의 삶을 연구해온 윌리엄 새들러 박사가 쓴 인생 안내서. 그는 마흔 살이 넘은 남녀 200여 명을 인터뷰한 후 그중 50여 명을 12년간 추적하여 ‘마흔 이후 30년’을 조망했다. 저자는 이 시기를 인생의 2차 성장을 통해 자기실현을 추구하는 시기라는 뜻에서 ‘서드 에이지(third age)’라고 명명하고, ‘중년 정체성 확립하기’ 등 ‘인생의 새로운 성장을 위한 6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인생 전반기에 ‘청춘의 성장’이 있다면 인생 후반기에는 ‘중년의 성장’이 있다. 저자는 나이 듦을 부정하려 드는 것도 문제지만, 사회와 문화가 강요하는 ‘나이 역할 놀이’에 빠져 인생의 후반기를 무기력하게 보내는 삶의 방식에도 문제가 있다며 일침을 놓는다.

    순조롭게 나이를 먹는 좋은 습관(함께) 일본의 정신과 전문의로 올해 90세(1916년생)를 넘어선 사이토 시게타 박사의 ‘좋은 습관론’. 저자가 말하는 ‘좋은 습관’은 물론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상투적이지는 않다. ‘어떤 일에도 100%를 바라지 않는다’ ‘ 암에 걸리지 않는 열두 가지 습관’ ‘ 멋을 부리면 뇌도 건강해진다’ ‘사회에 무관심해지면 빨리 늙는다’ ‘화초를 재배함으로써 마음을 치료한다’ ‘스트레스는 인생의 자극이다’ ‘여행은 기분 좋은 스트레스의 연속’ 등의 주제를 이야기하면서 저자는 이것들이 왜 인생에서 중요한지 자신의 인생을 통해 이야기한다. 정신과 전문의로서의 조언도 빠뜨리지 않는다.

    어른으로 산다는 것(갤리온)‘나는 정말 너를 사랑하는 걸까?’란 책으로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정신분석 전문의 김혜남의 신작. 병마와 힘겹게 싸우고 있는 저자는 “누구나 마음속에 상처 입은 어린아이가 살고 있다”고 말하면서 어른으로 사는 게 두려운 사람들에게 따뜻한 카운슬링을 해준다. 몸은 어른이지만 마음은 아이인 사람들, 나이 드는 게 두려운 사람들, 떠올리기 싫은 과거를 가진 사람들, 중년 이후의 삶에 고민이 많은 사람들, 행복해지고 싶은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책이다.

    인생 수업(이레)‘타임’이 선정한 ‘20세기 100대 사상가’ 중 한 명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죽음 직전의 사람들을 만나고 쓴 ‘인생에서 꼭 배워야 할 것들’에 관한 기록이다. 죽음을 앞두고서 삶을 더욱 분명하게 볼 수 있게 된 사람들이 전하는 삶의 진실과 교훈이 담겨 있다. 마지막으로 바다를 본 것이 언제였는가? 아침의 냄새를 맡아본 기억은? 죽음을 앞둔 사람들은 한 번 더 별을 보고 싶다고, 바다를 보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은 마지막 순간에 간절히 원하게 될 것, 그것을 지금 하라고 말한다. 삶의 가장 큰 상실은 죽음이 아니다. 그것은 살아 있는 동안 우리 안에서 어떤 것이 죽어버리는 일이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과 저자가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은 삶이 우리에게 사랑하고, 일하고, 놀고, 별들을 바라볼 기회를 주었다는 점이다. 지금 이 순간을 더욱 충실하게 살라는 단순한 메시지가 단순하게만 들리지 않는 까닭은, 그것이 죽어가는 사람들의 진심에서 나온 말이기 때문이다. 잔잔한 문체와 감동적인 이야기가 오랜 여운을 남긴다. 류연옥 문화컨텐츠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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