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45

2006.07.25

풀만 먹으면 고지혈증 안 걸린다고?

음식 통해 흡수되는 콜레스테롤 30% 불과 … ‘가족력’ 물려받았을 땐 약물치료 필요

  • 이해영 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 hylee612@snu.ac.kr

    입력2006-07-19 18:49: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풀만 먹으면 고지혈증 안 걸린다고?
    일본계 컴퓨터 회사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는 장모(36) 씨는 1년 전 부친을 잃었다. 사인은 고지혈증으로 인한 심근경색. 생전에 아버지가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기 위해 나름대로 식사 조절을 했던 터라, 장 씨는 콜레스테롤 노이로제에 걸려버렸다.

    고지혈증을 피하기 위해 장 씨가 꺼낸 비장의 카드는 채식. 직장 회식에서조차 상추쌈만 고집할 정도로 철저한 채식을 하고, 새벽시간을 쪼개 운동도 하고 있다. 친구들에게서 ‘독한 놈’ 소리를 들으면서도 그의 채식 건강법은 이어지고 있다.

    장 씨처럼 성인병과 비만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채식주의자가 증가하고 있다. 덩달아 채식 식당들도 성업 중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채식 인구는 약 45만명. 전체 인구의 3∼4%가 채식주의자인 선진국에 비하면 낮은 편이지만, 채식 열풍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단백질·칼슘 등 영양 부족 십상

    채식주의자들은 채식만큼 오래 사는 데 효과적인 것은 없으며, 채식만이 성인병이나 암에 대한 완전한 예방법이라고 자부한다. 실제로 장수 비결들엔 채식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한 조사에 따르면 특정 종교에 속한 미국인 3만4000여 명 중 채식주의자들은 평균적인 미국인보다 7년 정도, 여성들은 4.4년 더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살을 빼고 싶은 사람들에게도 채식은 좋은 대안이다. 채식을 지지하는 의사들의 모임인 ‘책임감 있는 의사들의 단체(Physicians Committee for Responsible Medicine)’의 수전 버코 박사와 닐 버나드 박사가 87편의 논문을 분석해 ‘영양 저널(Nutrition Journals)’ 2006년 4월호에 발표한 바에 따르면, 채식주의자는 비만이 될 가능성이 적으며, 채식 위주의 식단은 체중 감량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여러 연구에서 채식주의자 가운데 비만인 사람은 6%에 불과했지만, 채식주의자가 아닌 사람들의 경우 최대 45%가 비만이었다.

    하지만 채식을 하면 단백질이나 철분, 칼슘 같은 영양소가 부족해지기 쉽다. 미국 터프츠대학의 크리스티나 에코노모스 박사는 4년간 대학생의 식생활을 조사한 결과, 채식을 하는 학생들 중 상당수에서 단백질과 비타민 B12가 부족해 영양 불균형 상태를 보였다고 발표했다. 많은 영양소가 필요한 임산부나 수유부, 성장기 어린이와 청소년은 채식만으로는 충분한 영양 섭취가 어려울 수 있다. 술과 담배를 많이 하는 성인, 특히 간 기능이 저하된 사람도 단백질 섭취가 충분해야 하므로 채식이 바람직하지 않다.

    식물성 음식은 영양소 흡수율이 낮아 같은 양의 영양소를 섭취하기 위해서는 동물성 음식보다 3∼4 배 이상 많이 먹어야 한다. 따라서 음식을 많이 먹지 못하는 노인들도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하다 보면 영양 결핍이 오기 쉽다. 영양 전문가들은 단백질의 3분의 1은 동물성 단백질로 섭취할 것을 권한다.

    ‘음식으로 치유할 수 없는 병은 치유할 수 없다.’ 이는 ‘채식주의자’라는 말이 생기기 전, ‘피타고라스 식단’이라는 말이 쓰였을 정도로 채식을 강조했던 수학자 피타고라스가 한 말이다.

    풀만 먹으면 고지혈증 안 걸린다고?

    고지혈증은 채식으로 예방하기 어려우므로 식생활의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정말 채식만으로 질병을 예방하거나 치료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부족하기 쉬운 영양소까지 꼼꼼히 점검해가며 ‘완전식’을 하는 채식주의자라 하더라도 피해갈 수 없는 질병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고지혈증이다. 고지혈증은 체내 콜레스테롤이 과다하게 많은 상태를 일컫는 질병인 만큼, 콜레스테롤이 많은 육류나 지방질의 섭취를 피하면 고지혈증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조물주가 만들어놓은 인간의 몸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콜레스테롤이 생명 유지에 필수 성분인 만큼, 우리 몸은 콜레스테롤을 외부에서 섭취함과 동시에 자체 생산하는 능력도 갖추고 있다. 음식을 통해 흡수되는 콜레스테롤은 우리 몸에서 필요로 하는 콜레스테롤의 30%에 불과하다. 나머지 70%는 간에서 합성된다.

    이 때문에 당신이 채식주의자라고 할지라도, 또 장 씨의 부친이 식사 조절을 까다롭게 했음에도 고지혈증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우리 몸 안의 문제에 있는 것이다. 바로 간에서 콜레스테롤이 과다하게 합성되는 경우다. 간에서 콜레스테롤을 만드는 능력은 유전적으로 결정된다. 따라서 장 씨는 채식만 하더라도 고지혈증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 그의 아버지로부터 고지혈증에 대한 ‘가족력’을 물려받았다면 말이다.

    장 씨의 경우 식사 조절을 하는데도 고지혈증 판정을 받는다면, 간에서 콜레스테롤 합성이 되지 않도록 하는 약물치료가 불가피하다. 이러한 목적으로 현재 가장 많이 사용되는 약물은 스타틴 제제다. 그러나 스타틴은 간에서의 콜레스테롤 합성을 차단할 뿐, 음식에서 흡수되는 콜레스테롤은 막지 못한다. 게다가 우리 몸은 간에서 콜레스테롤 합성이 감소하면, 이를 보충하기 위해 위장관에서 콜레스테롤을 더 많이 흡수한다. 따라서 고지혈증 치료를 위해서는 콜레스테롤이 많이 함유된 육류와 지방질의 섭취를 자제해야 한다.

    그러나 음식 조절은 말처럼 쉽지 않다. 외국계 외식 프랜차이즈 업체의 임원 최모(48) 씨는 고지혈증 진단을 받은 뒤 스타틴 제제를 복용했으나, 콜레스테롤 조절이 목표치만큼 되지 않았다. 직업적으로 고콜레스테롤 음식을 섭취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원인이었다. 그의 말이다.

    “식이요법의 중요성이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신메뉴 개발이나 매장을 평가하는 업무 때문에 고기나 치즈를 자주 먹을 수밖에 없다. 또 마음대로 식사 메뉴를 정할 수 없을 때가 많아 음식 조절에 대한 압박은 심하지만 막상 실천하기는 쉽지 않아 이중으로 힘이 든다.”

    ‘균형’ 잡힌 식생활 무엇보다 중요

    6개월 후, 최 씨는 간에서의 콜레스테롤 합성을 막을 뿐 아니라 음식물에 들어 있는 콜레스테롤의 흡수도 저해하는 이중억제 약물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이는 콜레스테롤이 생기는 두 가지 경로를 동시에 차단하는 유일한 약물로, 스타틴 제제에 비해 콜레스테롤 수치를 더 효과적으로 낮추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최 씨는 물론 직업적으로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콜레스테롤이 많이 함유된 음식은 피하고 있다.

    채식주의자를 뜻하는 ‘베지태리언(vegetarian)’은 채소의 영어 단어 베지터블(vegetable)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베지태리언은 본래 라틴어의 ‘완전한(perfect)’을 뜻하는 ‘베게투스(vegetus)’에서 파생했다. 즉 ‘완전식’을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인간 세상에 ‘완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채식 역시 우리를 모든 질병에서 해방시켜주지 못한다. 질병 치료에서는 ‘완전’보다 ‘균형’이 중요하다. 영양의 균형이 잡힌 식생활, 에너지의 섭취와 소비가 균형 잡힌 생활습관, 콜레스테롤 수치의 균형이 그러한 것들이다. 어떤 것에도 치우침이 없을 때 우리 몸은 건강해진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