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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창|‘오프사이드’

축구장 가고 싶은 이란 여학생들

  • 이명재 자유기고가

축구장 가고 싶은 이란 여학생들

축구장 가고 싶은 이란 여학생들

‘오프사이드’

2006 독일월드컵에서 가장 실망스런 팀을 꼽으라면 사우디아라비아를 빼놓기 어려울 것이다. 지역 예선에서 한국을 두 차례나 꺾은 아시아의 맹주지만 사우디는 월드컵에만 나가면 영 맥을 못 춘다. 2002 한일월드컵에서도 독일에 8대 0이라는 기록적인 점수 차로 지더니 이번에도 연패하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세계 강호들과의 실력 차이도 있겠지만 이렇게까지 밀리는 팀은 아닌데…. 아무래도 경험, 특히 세계무대에 대한 적응력 부족이 원인인 듯하다.

사우디는 본선 진출 32개국 가운데 23명의 출전 엔트리 모두가 자국 리그 출신으로 구성된 유이한 나라다(또 한 나라는 이탈리아지만 자국 세리에 리그 자체가 빅리그라는 점에서 경우가 다르다). 뛰어난 선수가 없어서가 아니다. 자국 선수들의 해외 진출을 제한하는 정책 때문이다. 선수 전원이 외국 리그에서 뛰는 나라도 있는 이 ‘국경 없는 그라운드’의 시대에 걸맞지 않는 폐쇄성이다.

최근 세계 축구의 흐름 가운데 하나가 남미와 유럽 축구의 접목 및 수렴 등 축구 컬러의 동질화다. 이는 각국 선수들이 유럽 리그에 진출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사우디는 이런 ‘학습’ 기회를 스스로 차버린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셈이다.

사우디 축구의 ‘쇄국주의’는 아랍 세계의 폐쇄성의 한 단면이다. 격동과 수난의 현대사에서 비롯된 방어주의적 기제의 작동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전근대적인 불합리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란의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이 여성의 축구 경기장 출입을 허용하겠다고 밝히자 이를 둘러싼 반발이 거셌던 것에서도 이런 사정을 읽을 수 있다.

월드컵 기간에 개봉된 이란 영화 ‘오프사이드’가 바로 이 금지된 축구경기 관람을 하려는 여학생들의 얘기를 소재로 하고 있다. 여학생들의 ‘축구 경기장 진입 작전’이라고 할 만하다. 이런 영화가 나오게 된 이유는 1979년 회교혁명 이후 여성의 스포츠 경기장 출입이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란의 여학생뿐만 아니라 아랍 국민들도 정말 축구가 필요한 사람들인지 모른다. 술과 도박이 금지되는 등 별다른 오락거리가 없는 이 나라들에서 축구야말로 국민들에게 허용된 많지 않은 ‘서커스’ 중 하나다.



이란 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도 축구와 관련된 것이었다. 이란 북부지역에서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자신의 영화에 출연했던 꼬마들을 찾아나서는 과정을 다룬 이 작품에서 감독은 이재민 캠프에 갔다가 선뜻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을 목격한다. 비탄과 절망의 난리통에서 한 남자가 축구 경기를 보기 위해 잘 잡히지 않는 전파를 맞추려고 안테나를 애써 조정하는 것이었다.

감독은 남자에게 묻는다. “이런 상황에서도 축구를 보고 싶냐”고.

남자는 웃으며 대답한다. “저도 이번 지진으로 많은 사람을 잃었어요. 하지만 그래도 축구는 봐야죠.”

어떤 재난과 비극 속에서도 삶은 계속되듯이 ‘축구는 계속되는’ 것일까. 그리고 이슬람 세계의 이 복잡한 현실도.



주간동아 2006.07.04 542호 (p79~79)

이명재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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