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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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름다운 겸손, 밀레의 ‘만종’

이미지로 논술 읽기 ⑩

  • 이주헌 미술평론가

    입력2006-05-29 13: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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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아름다운 겸손, 밀레의 ‘만종’

    밀레, ‘만종’, 1857~59, 캔버스에 유채, 55.5x66cm, 파리 오르세 미술관.

    “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심도록 나를 도와주소서/ … /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며/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고/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여/ 자기를 온전히 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이니/ 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가 드린 기도를 묵상하노라면 내 안의 비루한 욕심에 대해 부끄러운 마음이 들고 무엇이 올바르고 가치 있는 삶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위대한 영혼의 기도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기도는 일반적으로 초자연적인 신앙의 대상과 교감하는 행위로, 그 신앙의 대상에게 축복과 가호를 비는 일을 말한다. 개인의 현세적이고 기복적인 소망에서부터 국가와 사회 공동체의 안녕과 번영을 비는 일, 신에게 스스로를 바치고 헌신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기도는 그 내용과 범위가 매우 다양하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 눈에 보이는 대상세계를 넘어 초자연적인 존재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며, 그 존재로부터 응답을 얻는다는 사실이다. 초자연적인 존재와 응답에 대한 믿음이 전제되지 않고는 기도는 아무런 의미를 가질 수 없다.

    이렇듯 현실 너머의 세계와 잇닿아 있는 기도는 그 초월성과 스스로를 낮추는 겸손의 이미지로 오랜 세월 중요한 회화적 소재가 되어왔다. 서양 회화사에서 기도 이미지의 대표적인 걸작을 꼽으라면 아마도 밀레의 ‘만종’이 가장 윗자리에 위치할 것이다.

    초자연적 존재와 관계 맺는 기도, 서양회화 중요 소재



    밀레의 ‘만종’은 젊은 부부가 밭일을 마치고 교회 종소리에 맞춰 신에게 감사 기도를 드리는 그림이다. 젊은 부부의 행색을 보면 남루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그들의 얼굴 어디에도 슬퍼하거나 부끄러워하는 흔적이 없다. 그들은 주어진 모든 것에 대해 감사한다. 비록 힘든 노동이었지만 하루 일과를 무사히 마치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머리를 조아릴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부부는 행복하고 감사한 것이다. 이 이미지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진정으로 자신을 낮춰 자연과 우주를 관통하는 위대한 힘 앞에 머리를 숙일 때 인간은 비로소 자신보다 커진다는 사실이다. 누구도 기도하는 이 부부를 얕잡아보거나 값싸게 동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래된 거석처럼 지평선을 뚫고 서 있는 부부는 그 모습 그대로 영원한 기도의 기념비다.

    이 그림과 관련해 밀레는 다음과 같은 추억을 들려주었다.

    “‘만종’은 내가 옛날 일을 떠올리며 그린 그림이다. 옛날, 우리가 밭에서 일할 때 저녁종 소리가 들리면 나의 할머니는 한 번도 잊지 않고 우리로 하여금 일을 멈추게 한 뒤 꼬박꼬박 삼종기도(오전, 정오, 오후 종소리에 맞춰 하루 세 번 드리는 기도)의 마지막 기도를 드리게 하셨다.”

    ‘만종’에는 그렇게 기도를 통해 배운 밀레의 겸손과 삶에 대한 긍정이 잔잔히 배어 있다. 이 그림의 복제본이 한때 우리나라 이발소 대부분을 장식하곤 했던 것은, 그 아름다운 겸손의 미덕과 삶에 대한 긍정이 세상 어떤 가치보다 소중하게 다가왔기 때문이 아닐까.

    기도할 때 사람들은 주로 두 손을 모은다. 손바닥을 마주하고 가지런히 모은 손은 매우 정결하고 온화한 인상을 준다. 이런 기도의 이미지로 유명한 작품 가운데 하나가 17세기 이탈리아 화가 사소페라토의 ‘기도하는 동정녀’다.

    그 아름다운 겸손, 밀레의 ‘만종’

    사소페라토, ‘기도하는 동정녀’, 1640~50, 캔버스에 유채, 73x59cm, 런던 내셔널 갤러리.

    그림 속의 마리아는 영원한 침묵과 기도 속으로 침잠한 듯 미동도 하지 않는 모습이다. 마리아는 어찌 이리도 깊은 기도 속으로 스며들었을까? 이는 그가 인류를 위해 기도하는 중재자이자 모든 이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그의 기도가 끝날 수 없는 것은 인류를 향한 그의 진솔한 사랑이 잠시라도 마를 수 없기 때문이다. 사소페라토의 그림은 단순히 성모마리아를 그렸다기보다는 기도의 진정한 이미지, 기도의 가장 본질적이고 영적인 이미지를 그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소페라토는 베네딕투스 수도회와 매우 가까웠다. 베네딕투스 회칙을 따르는 은수자(隱修者)들이 수도원에 들어올 때 순명, 청빈, 정결을 서약한다는 사실과 이 회의 모토가 ‘일하는 것이 기도하는 것(laborare est orare)’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그림 속의 성모마리아가 어찌 저리도 순수하고 헌신적인지 또 그의 기도가 어찌 저리도 진지한 노동의 인상을 풍기는지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지극히 높은 작품의 완성도에서 우리는 또, 사소페라토가 이 그림을 그리느라 엄청난 시간을 들이고 땀을 흘렸을 것임을 확인할 수 있는데, 그 공력 자체가 이렇듯 고귀한 예술로 승화된 데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일하는 것이 기도하는 것’임을 절감하게 된다.

    그 아름다운 겸손, 밀레의 ‘만종’

    마스, ‘기도하는 노파’, 1655, 캔버스에 유채, 134x113cm,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합장 형식의 기도 이미지와 관련해 우리가 알아둘 필요가 있는 한 가지 사실은, 성모는 살아생전 결코 이런 자세로 기도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자세는 기독교 문명에서 중세 들어 나타난 풍습이다. 초기 기독교 시대까지만 해도 기독교인들은 양손을 위로 들어 기도했다. 서양미술사에서 합장 형식의 기도 이미지가 나오기 시작한 것은 1000년경부터인데, 이는 충성의 서약으로 신하가 영주에게 합장한 손을 내밀면 영주가 자신의 손으로 그 손을 감싸는 봉건 의식에서 나온 것이다. 합장한 손은 복종의 의미를, 감싼 손은 보호의 의미를 띠었다. 13세기에 이르면 성인들이나 교회의 기부자들, 사회의 유력인사들이 이처럼 손을 모은 채 기도하는 모습으로 무수히 그려지는데, 이로써 이 무렵 들어 이 이미지가 가장 대표적인 기도의 이미지로 확고히 정착됐음을 알 수 있다.

    기도를 주제로 한 그림은 서양미술사 내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으며 제작됐다. 이는 인생이라는 게 예측할 수 없는 사건의 연속이고, 때로 자신의 무능력과 불안정성, 불완전성을 확인할 수밖에 없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경건한 기도의 이미지가 그만큼 큰 위로가 됐음을 의미한다. 특히 오랜 풍상을 겪은 노인이 기도하는 모습은 삶에 관한 비할 나위 없이 따뜻한 성찰과 위로를 전해주는데,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니콜라스 마스가 그린 ‘기도하는 노파’가 그 대표적인 작품이다. 외로운 노파가 소박한 소찬 앞에서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다. 이 그림에서 우리는 천사가 날고 하늘이 열리는 요란한 광경을 보지는 못하지만 진정한 신앙, 진정으로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이 어떤 것인지 분명한 이미지로 보게 된다. “기도란 하느님을 변화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한 키에르케고르의 말을 떠올리게 하는 그림이 아닐 수 없다.

    논술 전문출판 ‘늘품 미디어’가 제공하는 ‘생각 넓히기’

    ①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간과 우주에 대한 비밀이 속속 밝혀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인간은 자연의 힘 앞에 너무도 무력한 존재다. 인간은 죽음을 비롯한 한계상황에 직면하면 자신의 무력함을 깨닫고 신을 찾게 된다. 인간은 절대자에게 의지함으로써 무력함과 한계상황을 극복하는 것이다.

    ② 종교와 인간의 관계에 대해서는 2000년 서강대 논술문제로 ‘인간이 죽음에 대해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해 논술하는 문제가 출제됐다. 그리고 이에서 유추해 ‘등장인물이 각각 역경에 대처하는 방식을 정리하고, 그들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자신의 인생관과 관련지어 비판적으로 논술’(2000년 서강대)하는 문제와 ‘세월이 흘러감과 욕망의 관계’(2005년 연세대)에 대해 논술하는 문제가 출제됐다.

    ③ 한계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본질과 특성, 인간과 종교의 관계 등은 가치관 형성 및 자아정체성과 관련되는 주요 사항이다. 특히 논술시험의 논제로 가치관 형성 및 자아정체성과 관련된 문제들이 많이 출제된다. 그러므로 올바른 가치관 형성을 위해 인간의 본질과 특성에 대한 이해 및 종교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종교적 삶의 실천의 중요성 등을 이해해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④ 인간과 종교, 인간의 본질, 올바른 가치관 형성 등의 문제는 깊은 배경 지식을 묻는 문제가 아니라, 삶과 인간의 본질 등에 대한 수험생의 올바른 태도와 견해를 얼마나 설득력 있게 표현하는가가 중요하다. 이런 문제의 경우 본인의 진실된 체험이 사실적이면서도 구체적으로 제시되면 효과적인 글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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