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34

2006.05.09

‘바람 불어 좋은 날’ 또 찾아올까

오세훈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클린 이미지 비해 콘텐츠 열세 ‘최대 약점’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입력2006-05-03 16: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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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 불어 좋은 날’ 또 찾아올까

    4월25일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서 승리한 오세훈 후보가 당원들에게 두 손을 들어 답례하고 있다.

    2004년 1월 잘나가던 초선 오세훈 의원(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이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모두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혈안이던 시기여서 그의 결단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참회록에서 밝힌 통한의 고백도 새로웠다.

    “정치 현실에 정통하지 못하면서 정치를 바꿔보겠다고 덤벼든 무모함이 부끄럽고, 잘못된 길을 가는 모습을 보고도 아직 때가 아니라며 묵인한 무력함이 부끄럽고….”

    불출마 선언과 고백성사는 평범한 정치인이었던 오 후보를 일약 스타 정치인으로 부각시켰다. 억측도 있었다. 서울시장 출마를 위한 수순 밟기라는 비아냥이다. 이런 의혹에 그는 단호하게 대처했다.

    “(불출마 선언으로) 호감을 얻었지만 이를 밑천으로 정치적 도약을 노릴 만큼 미련치 않다.”

    그는 그 말을 남기고 ‘여의도’를 떠났다. 아름다운 퇴장 문화를 만든 그에게 언론과 국민은 찬사를 보냈다.



    그렇게 정치판을 떠난 그가 정계로 복귀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드물었다. 그러나 오 후보는 1년여 후 정계를 다시 노크했다.

    지난해 부시장 노렸다가 당내 반발로 수포

    2005년 3월, 오 후보가 이명박 서울시장을 찾았다. “서울 (정무)부시장직을 맡아 역할을 하고 싶다”는 뜻을 전달했다. 이 시장은 ‘맺고 끊는’ 것이 분명한 오 후보의 제의를 긍정적으로 검토했다. 그러나 이 사실이 바깥으로 알려지면서 사달이 생겼다.

    먼저 한나라당 내 일부 정치인이 반발하고 나섰다. 맹형규 전 의원과 홍준표 의원 등 이른바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려는 예비주자들이 그 주인공. 그들은 이심(李心·이 시장의 속마음)과 후계자론으로 오 후보의 발탁을 가로막고 나섰다.

    “오 후보를 부시장으로 발탁하면 오 후보는 이 시장의 정치적 후계자가 된다. 그런 상황에서 공정한 서울시장 경선은 불가능하다.”

    오 후보의 발탁을 차기 서울시장 후보로 지명하는 정치적 행위로 해석해 이 시장을 압박한 것. 비서실에서도 경보음이 터져나왔다.

    “오 후보를 발탁하면 이 시장이 조기에 레임덕에 빠질 것이다.”

    ‘바람 불어 좋은 날’ 또 찾아올까

    4월10일 오세훈 후보가 국회 한나라당 대표실에서 박근혜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위). 4월12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뉴라이트 문화체육연합 창립대회장에서 대화를 나누는 오세훈 후보와 이명박 시장(아래 오른쪽).

    오 후보의 부시장 발탁문제는 곤경에 처했다. 그때 시장 비서실에서 해법을 제시했다.

    “오 후보가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공개하는 것이 어떻겠느냐.”

    당내 인사들의 반발을 잠재울 수 있고, 이 시장의 레임덕도 방지할 수 있는 묘책이었다. 오 후보 진영으로 공이 넘어갔다. 그렇지만 오 후보 측에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그사이 정치권의 압박 수위가 시장실 문턱을 넘어섰다. 이 시장으로서는 더 이상 지체하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결국 오 후보의 부시장 발탁은 없었던 일로 끝났다.

    시정 파트너로 연을 맺지 못했지만 그 이후에도 이 시장의 일정표에는 수시로 오 후보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오 후보가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로 당선된 직후인 4월 말, 이 시장은 오 후보의 콘텐츠 및 준비 부족을 지적하는 측근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 후보가 준비한 게 없다고…. 그건 그를 몰라서 하는 말이다. 사실상 가장 오랫동안 서울시장 선거를 준비한 사람이 오 후보다.”

    오 후보의 등장과 경선 승리를 바람과 이미지로 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오 후보의 서울시장 출마론이 처음 거론된 것은 2002년 서울시장 선거 때였다. 당시 오 후보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캠프의 대변인이었다. 민주당 김민석 후보보다 두 살이 많던 그는 참모들에게서 “나이도 더 많고 대중적 인기도 더 많으니 다음에 꼭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라”는 덕담을 들었다. 이 말에 웃기만 하던 오 후보는 4년여 만에 이를 현실로 만들어낸 셈이다.

    정책·공약이 吳風 생명력 좌우

    오 후보의 강점은 대중성에 있다. 경선 도전 17일 만에 서울시장 본선행 티켓을 거머쥔 것도 대중성이 뒷받침됐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는 한나라당의 전통적 색깔보다 좀더 왼쪽에 서 있다. 한나라당 소장파는 그를 ‘제3의 영역에 선 인물’로 평가한다.

    그의 대중성은 ‘클린’이라는 깨끗한 이미지가 바탕에 깔려 있다. 30여 일 남은 본선에서도 오 후보 측은 클린 이미지에 큰 기대를 건다. 한나라당 서울시장 선거대책본부장 후보인 원희룡 의원의 한 측근은 “이미지에서 출발한 바람의 생명력을 부정하는 사람도 있지만 앞으로 몇 가지 부분만 보강하면 오풍(吳風)의 생명력은 무한대로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본선에서도 오풍이 위력을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상대방의 공세는 치열해지고, 언론의 검증작업은 더욱 날카로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오 후보의 클린 이미지는 경우에 따라 심한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이런 약점은 이미 당 지도부에서 오래전부터 인지했다.

    ‘바람 불어 좋은 날’ 또 찾아올까


    ‘바람 불어 좋은 날’ 또 찾아올까

    2004년 5월 단축 철인3종경기에 도전한 오세훈 후보.

    3월 중순 한나라당은 정몽준 의원을 물밑에서 접촉했다. 한나라당이 서울시장 후보로 영입하려는 5명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정 의원이었다. 정 의원과 박 대표는 한때 깊숙한 얘기를 주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막판에 내민 계산서가 서로 맞지 않았고 영입 제의는 없던 일로 끝났다.

    당은 대안을 찾아나설 수밖에 없었다. 한사코 싫다는 정운찬 서울대 총장 이름이 다시 나왔고, 박세일 전 의원 이름도 언론에 오르내렸다. 그렇지만 박 대표와 당 지도부는 오 후보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이방호 정책위의장은 직설적으로 오 후보의 파괴력에 의문을 표했다.

    “오 후보는 현재 당내 예비후보들과 견줘도 중량감의 차이가 크지 않다. 당에서 영입 노력을 했던 정운찬 서울대 총장, 어윤대 고려대 총장, MJ(정몽준 의원)에 비해 파괴력이 떨어진다.”

    박 대표 쪽도 비슷한 분위기였다. 박 대표의 한 측근 의원은 “오 후보의 경선 참여에 반대하지는 않지만 그가 경선을 통과할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당이 오 후보를 외면한 가장 큰 이유는 콘텐츠에 대한 믿음 부족이다. 서울시장은 5만여 공무원을 지휘하며 1000만 시민의 안전과 재산을 지키는 자리다. 이에 대한 비전과 전략을 갖고 있느냐에 대해 오 후보 측은 시원한 답을 내놓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여당은 이미 이런 약점을 잘 알고 있다. 선거전이 본격화하면 여당은 오 후보의 아킬레스건을 물고 늘어질 전망이다. 경선 때에는 불과 한두 차례의 정책토론회로 끝났지만 본선은 상황이 다르다. 수시로 TV 토론을 해야 한다. 한순간 실수가 오풍의 추락을 부를 수 있다. 그러나 오 후보 측은 콘텐츠 부족을 부인한다. 오 후보 측의 설명이다.

    “16대 국회를 끝으로 정치에서 물러난 지난 2년 4개월 동안 국가경쟁력을 화두로 치열하게 연구했고, 그 과정에서 ‘지방정부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상당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상당한 자료도 축적됐고 서울시정에 대한 철학과 구상도 정립됐다.”

    오 후보 측은 선거전이 본격화하기 전 ‘오세훈 정책과 공약’을 마련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당에서는 맹형규, 홍준표 후보가 만들어놓은 공약과 이 시장의 정책을 융합해 오세훈 정책을 만들어 지원할 계획이다. 당과 오 후보가 어떤 정책과 공약을 내놓느냐에 따라 오풍의 생명력이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오 후보의 등장은 한나라당의 지방선거 및 전당대회 기상도에 변화를 몰고 왔다. 여야를 막론하고 역대 서울시장 출마자는 차기 대선주자 1순위에 꼽혀왔다. 그는 경선 승리와 동시에 박근혜, 이명박, 손학규 등 당내 `빅3`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정치적 위상을 확보했다. 단기필마였던 그가 앞으로 세(勢)를 형성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 과정을 거치려면 그는 기존 질서를 일부 허물어야 한다. 박 대표와 이 시장, 그리고 손학규 지사와 소장파 인사들을 오가며 고도의 줄타기를 해야 한다. 균형이 깨지면 당내 일부 세력으로부터 공격을 받을 수 있다. 그 경우 당의 일사불란한 지원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명박 시장은 경선에서 승리한 오 후보를 후계자로 보는 분위기다. 오 후보도 `윈-윈 전략`을 구사할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박 대표 측이다. 경선 때 박 대표는 맹형규 후보를 지원했다는 말을 공공연하게 들었다.

    오 후보는 “네거티브 캠페인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젠 유권자들이 폭로정치에 대해 부정적이라는 점을 반영한 전략이다. 오 후보 측 한 인사는 “경기도 김문수 후보와 패키지 선거운동을 벌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오 후보는 김 후보의 추진력과 당찬 이미지를 차용하고, 김 후보는 오 후보의 클린 이미지로 인한 반사효과를 볼 수 있다.

    오 후보 측은 기존 선거방식을 과감히 탈피해 ‘열린 선거’ 전략을 펼 계획이다. 개혁적 외부인사를 선대위원장으로 영입하기 위해 물밑 접촉을 벌이고 있다. 시민단체와의 정책 연대도 거론된다. 과연 오 후보는 5월31일 밤 환하게 웃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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