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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다른 가락~ ‘신세대 국악’ 좋을씨고

젊은 국악인들 쿨한 연주 뜨거운 반응 … 개방성과 실험정신 문화계 판도 바꿔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색다른 가락~ ‘신세대 국악’ 좋을씨고

색다른 가락~ ‘신세대 국악’ 좋을씨고

신세대 국악 스타로 떠오른 꽃별. 꽃별과 함께 신세대 국악을 연주하는 멤버들은 한국인과 일본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입심 좋은 한 국악인이 이렇게 말했다.“클래식은 ‘후카시’(‘허세’란 뜻의 일본말) 그만 잡고, 대중음악은 부황 빼고, 국악은 궁상기를 없애야 우리 문화가 발전한다니께.”

그의 말 속에는 수백 년 동안 전통 전수와 이수에만 매달려온 국악인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담겨 있다. 국악의 ‘궁상기’는 시대 변화를 외면한 채 퇴화해버린 국악인들이 자초한 결과라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국악계에 불고 있는 신세대 바람은 클래식과 대중음악을 포함해 우리 문화계 전체의 지형을 바꿔놓을 만큼 강력하고 풍요롭다. 신세대 국악은 전통 한복과 한(恨)의 정서, 혹은 80년대 운동권의 민중의식 대신 재즈와 제3세계 민속음악을 포용하는 개방성과 실험정신을 가졌다. 신세대 국악은 새로운 문화 콘텐츠에 대한 수요, 서구 중심 문화에 대한 싫증과 맞아떨어져 ‘포스트모던’한 유행으로 떠올랐다.

해금의 요정 ‘꽃별’ 국악계 스타

2004년부터 서울 대치동 ‘한국문화의 집(KOUS)’에서 ‘우리 시대의 국악’ 공연을 기획해온 박명우 씨는 “2005년엔 좌석의 90%, 올해는 100% 모두 채웠을 정도로 ‘컨템포러리’ 국악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 말한다.



지난 2년 동안 신세대 국악인들을 꾸준히 무대에 올려온 EBS ‘스페이스 공감’의 진세현 작가 역시 “신세대 국악인이 출연하면 다른 어떤 장르의 뮤지션보다 시청자들의 반응이 뜨겁다”고 말한다.

“인기요? TV에 출연한 뒤 인터넷 검색 순위에서 6위에 올랐을 때 좀 실감이 났어요. ‘꽃별’이 누굴까, 신세대 국악이 무엇일까 궁금해서 검색했다고 생각하니, 국악인으로서 뿌듯하더라고요.”

요즘 가장 빛을 발하는 신세대 국악 스타가 꽃별이다. 1980년생, 이꽃별이 본명인 전형적인 신세대로 ‘해금의 요정’이라 불리며 국악계의 스타가 됐다. 가냘픈 체구지만 무대 위에서는 큰 체구의 남자 뮤지션들이나 드럼 같은 서양악기를 압도한다.

“어려서부터 꿈이 음악을 하는 것이었고, 그때는 당연히 서양음악이었죠. 그러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국악을 처음 접했고, ‘왜 내가 서양음악을 해야 하나’ 고민한 끝에 국악으로 진로를 결정했어요.”

신세대 국악인들이라고 해서 모든 일이 쉽게 이뤄진 것은 결코 아니다. 대학에서 국악을 공부하며 의기소침하던 꽃별은 일본에서 먼저 인정을 받아 두 장의 앨범을 냈다. 지금 그녀의 매니저도 일본인이다. 그녀는 우리의 해금이 개량된 다른 전통악기들과는 달리 원형을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모든 현대음악과 잘 어울려 중국의 얼후(二胡)보다 더 큰 매력을 가진 현악기라고 자신한다.

‘가야금의 반란’을 꿈꾸는 신세대 국악 여성 앙상블 ‘사계’와 ‘여울’도 인기다. 모두 20대 여성 4인조 그룹으로 ‘사계’는 서울대에서, ‘여울’은 이화여대에서 함께 가야금을 공부한 선후배들이 결성했다. 가야금은 맑은 음색과 농현(vibration)의 멋을 가져 1900년대 중반부터 독주곡과 관현악곡 등 창작곡들이 만들어졌고, 러시아 음악을 추종한 북한에서 12현을 개량해 다현 가야금을 만드는 등 일찌감치 다양한 시도가 이뤄졌다.

색다른 가락~ ‘신세대 국악’ 좋을씨고

서울대 선후배들로 이루어진 신세대 가야금 앙상블 ‘사계’. 개량 가야금 한 대를 세 명이 연주하고 있는 ‘아우라’. 전통을 제대로 연주하려는 신세대 국악 그룹 ‘정가악회’(왼쪽부터).

‘사계’는 17·21·25현 개량 가야금과 직접 개발한 저음 22현 가야금 등 공연장마다 가야금을 바꿔 들고 다니며 비발디의 ‘사계’와 김순남의 ‘자장가’ 등을 연주해 청중의 찬사를 받았다. ‘사계’는 4월10일 노숙여성 쉼터 마련을 위한 열린여성센터의 자선무대에 아우라, 바이날로그, 정가악회 등 신세대 국악 그룹들과 함께 참여했는데, 20회째인 열린여성센터 공연이 신세대 국악으로 채워진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여울’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가야금에 앰프를 연결한 ‘일렉트릭 가야금’을 연주해 국악계의 ‘본드’로 불리기도 한다(본드는 전자악기로 서구 클래식 음악계에 선풍을 일으키고 있는 미녀 현악 4중주 그룹).

“야외 공연을 하면서 드럼이나 콘트라베이스에 가야금 소리가 묻히지 않게 하려고 앰프를 연결했어요. 전자 가야금의 또 다른 장점은 악기 소리를 ‘소스’로 자유로운 변주가 가능하다는 것이죠.”

‘여울’의 리더인 기숙희 씨는 가야금의 거장 황병기 씨의 제자다. 그녀는 “국악 대중화 시도 측면에서 가장 앞서 있는 황병기 선생께 가야금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다는 고민을 털어놓았다. 겁먹지 말라고 용기를 주셨다”고 말한다.

‘여울’ 등 신세대 국악의 특징 중 하나는 ‘비주얼’을 소리 못지않게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 ‘여울’처럼 화려한 무대 매너로 청중을 사로잡기도 하고, 미술 작가들과 함께 전위적인 무대를 연출하는 젊은 국악인들도 있다. ‘여울’은 “국악이 촌스럽다는 편견을 없애겠다. 정말로 보여줄 것이 많은 음악”이라고 자신한다.

소리 못지 않게 ‘비주얼’ 중요시

‘The 林’(그림)의 콘서트는 신세대 국악과 관객이 함께 떠나는 몽환적인 한 편의 여행으로 유명하다. 타악기 연주와 작곡을 하는 신창렬 씨를 리더로 20대에서 30대 초반에 이르는 남녀 9명의 멤버로 구성되었다. 서울 양재동의 지하 연습실에서 만난 이들은 마치 록밴드 같았다. 이들이 알려지기 시작했을 무렵 이들을 ‘국악계의 H.O.T’라고 부른 사람도 있었다. 드럼과 기타, 해금, 거문고, 가야금 등과 라틴 퍼커션 같은 ‘그 외 여러 나라 악기들’이 사이좋게 섞여 있다는 점이 보통의 밴드와 다르다. ‘그림’처럼 우리 국악기가 서구 악기보다는 제3세계 악기의 색감과 잘 어울린다고 느끼는 신세대 국악인들이 적지 않다.

“신세대 국악인들은 서양음악을 들으며 컸지만, 대학에서는 국악을 공부했어요. 인간문화재로 상징되는 국악의 이수, 전수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 있죠. 시도도 해보지 않고 국악은 경쟁력이 떨어진다고들 하는데, 국악을 월드뮤직화하고 상업적 가능성을 증명해 보이고 싶습니다.”(신창렬)

‘그림’보다 작은 규모로 4인조 남성 국악밴드인 ‘바이날로그’가 있고, ‘그림’보다 국악의 전통적인 소리에 가까운 실내악단으로 ‘풍경이 있는 소리’가 있다. ‘풍경이 있는 소리’는 멤버 10명이 활동하는데, 신서사이저를 빼면 아쟁과 소금·대금·가야금 등 모두 국악기로 구성되어 있다.

신세대 국악인들을 ‘크로스오버 국악’ ‘퓨전 국악’으로 부르기도 한다. 국악과 서양음악, 과거와 현재, 전통과 혁신의 경계를 없애고 융합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들이 국악과 서양음악을 과연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가에 대한 반성이 없을 수 없다. 한 공연기획자는 “국악 현대화에 대한 치열한 고민에서 퓨전 국악이 시작됐다기보다는 국악기로 대중이 좋아하는 서양음악을 연주하다가 하나의 장르로 발전했다고 본다. 신세대 국악에 대한 고민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말했다.

색다른 가락~ ‘신세대 국악’ 좋을씨고

록밴드 같은 모습의 국악 그룹 ‘The 林’.

이 같은 고민을 그룹 이름에 반영한 신세대 5인조 국악 그룹이 ‘정가악회’다. ‘정격음악’을 연상시키는 이름에 대해 리더 천재현 씨는 “‘바를 정(正)’이 아니라 ‘뜻 정(情)’을 쓰는 따뜻한 그룹”이라고 말한다.

“국악 대중화를 외친 지 30년이 됐습니다. 그런데도 별다른 성과가 없다면 국악 대중화가 옳은 것인지 반성해봐야죠. ‘정가악회’는 전통을 제대로 연주하려는 신세대 국악 그룹입니다. ‘퓨전’하다가 나이 들면 저절로 전통을 알게 될까요? 국악 대중화가 아니라 국악의 ‘네이티브 스피커’가 되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그러나 천 씨는 “다른 국악인들의 노력을 존중한다. 나름대로 의미 있는 발전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고민은 이제부터”

꽃별과 ‘여울’ 등 20대 신세대 국악인들에 앞서 국악 대중화에서 뚜렷한 성과를 이룬 국악인들로, 1985년 청소년을 위한 음악회에서 처음 선보인 국악 그룹 ‘슬기둥’(1993년에 새롭게 바뀜), 소리꾼 김용우 씨, ‘해금의 디바’ 강은일 씨 등을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은 신세대 국악의 가능성을 열었고 국악으로도 스타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해 보였다.

색다른 가락~ ‘신세대 국악’ 좋을씨고

국악계의 ‘본드’로 불리는 ‘여울’.

10년 남짓 신세대 국악인들의 새로운 시도가 이어지고 층이 두터워지면서 신세대 국악 안에서도 춘추전국이라 할 만큼 서양음악과의 퓨전, 전통 국악과 창작 국악에 대한 태도, 대중성과 상업성 등에서 많은 차이가 생겨났다. ‘정가악회’처럼 국악 대중화에 회의적인 이들도 있고 일과성 유행에 휩쓸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지만, 새로운 국악을 모색한다는 점에서는 대부분의 국악인들이 반기는 분위기다.

무엇보다 신세대 국악인들은 국악이 지루하고, 촌스럽고, 대중적이지 않다는 편견과 싸워 이긴 것이다. 신세대 국악 작곡가이자 프로듀서인 류형선 씨는 “신세대 국악인들의 근본적 고민도 국악의 가치를 당대 사람들에게 얼마나 설득력 있게 만들 수 있는가다”라고 말한다.

신세대 국악 음반을 기획하는 음반사 ‘악당’의 김영일 대표는 “하늘 같은 스승과 전통 이수자들에게 둘러싸인 젊은 국악인들에게 신세대 국악은 하나의 해방구”라고 말한다. 그는 최근 ‘사계’ ‘공명’ 등 신세대 국악인 12팀이 참여한 ‘대한민국 국악 응원가’의 녹음을 끝냈다. 월드컵은 신세대 국악인들에게도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세대 국악인 역시 먹고살아야 하는 생활인이고, 국악도 ‘쇼 비즈니스’ 산업이다. 국악이 궁상기를 면해야 한다는 말에는 이런 연민도 들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신세대 국악인들은 소비자층이 얇은 국내에 머물기보다 해외시장 진출을 꿈꾼다. 해외시장이 없으면 신세대 국악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이런 현실적 고민들이 그들의 음악에 담겨 있다.

“나는 내 음악에서 어떤 부분도 서양 것을 따르지 않는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청량음료를 마셔도 몇몇은 샘물을 찾는다고 믿는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국악의 대중화이고 국악의 세계화다. 그러나 내 방식을 제자들에게 강요하지는 않는다. 제자에게 ‘여울’이란 이름을 지어주고, 전자 가야금처럼 새로운 물길을 내보라고 했다. 완성도를 높이면 그곳에 또 새 길이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황병기)



주간동아 533호 (p48~50)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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