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39

2018.05.23

풋볼 인사이트

신태용호 무리수, 고도의 전술일까

대표팀 최종 소집에 이승우, 문선민, 오반석 등 새 선수 낙점 이례적

  • 입력2018-05-22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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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 러시아월드컵에 나설 
신태용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동아DB]

    2018 러시아월드컵에 나설 신태용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동아DB]

    5월 14일 오전 서울시청 다목적홀이 붐볐다. 신태용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사회자 소개에 따라 단상에 섰다. 객석에는 차두리, 김남일 코치 등이 비장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김판곤 대한축구협회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장, 최영일 대한축구협회 부회장도 출동했을 만큼 보통 자리가 아니었다. 한국 축구 명운을 가를 대장정의 시작. 신 감독이 짧은 인사와 함께 본론으로 들어갔다. 대한축구협회가 미리 제작한 영상에 맞춰 2018 국제축구연맹(FIFA) 러시아월드컵에 나설 선수를 일일이 호명했다. 

    수비수 부문부터 장내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김영권, 장현수, 정승현 등에 이어 오반석이 불렸다. K리그에서 인정받은 수비수이지만, 그간 대표팀과는 연이 없었다. 미드필더진에서는 더욱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이승우, 문선민의 사진이 연달아 대형 스크린을 채웠다. “오?”였던 현장 반응이 어느새 “와!”가 됐다. 깜짝 발탁을 넘어 얼떨떨할 만큼 파격적이었다. 성인 대표팀에서 시험해볼 선수일 수는 있어도, 그 시기가 월드컵 직전일 줄이야. 개막까지 남은 시간은 한 달뿐이다. 축구를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 수도 없는 노릇이다.

    파격은 어쩔 수 없는 선택

    이번에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에 새로 발탁된 헬라스 베로나 FC 이승우(왼쪽)와 인천유나이티드 문선민. [동아일보, 스포츠동아]

    이번에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에 새로 발탁된 헬라스 베로나 FC 이승우(왼쪽)와 인천유나이티드 문선민. [동아일보, 스포츠동아]

    신 감독은 총 28명을 뽑았다. 이 중 최종 엔트리에 이름 올릴 선수는 23명이다. 새 대표팀은 5월 21일 집결해 내달 1일 출정식을 갖는다. 이 과정에서 온두라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 대결해 5명을 제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는 과거에도 활용하던 방식이다.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월드컵 당시 허정무 감독은 26명을 데려갔다. 오스트리아 전지훈련을 통해 이근호, 구자철, 신형민을 뺐다. 2014 브라질월드컵을 맡았던 홍명보 전 감독은 처음부터 23명만 추렸지만, 이번에는 다시 추가 인원을 품었다. 마지막까지 경쟁구도를 이어가겠다는 심산이 깔려 있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은 ‘부상’이다. 3월 FIFA A매치 북아일랜드전에서 김진수가 주저앉았다. 표정에서부터 불길한 기운이 묻어났다. 검진 결과 왼쪽 무릎 내측 인대 파열. 수술은 피했으나, 재활기간이 꽤 길었다. 산술적으로 월드컵 전 복귀는 가능해도 정상적인 몸 상태를 장담할 수 없다. 5월 들어서도 악령이 덮쳤다. 김민재가 2일 대구FC와 경기에서, 염기훈이 9일 울산현대축구단과 경기에서 차례로 쓰러졌다. 각각 복사뼈와 갈비뼈가 골절됐다. 모든 수단을 동원해 몸 상태를 돌려놓으려 했으나, 신 감독은 이들을 제외할 수밖에 없었다. 3명 가운데 유일하게 이름을 올린 김진수도 불확실하다. 가벼운 조깅만 가능한 상태로 신 감독이 직접 차도를 확인할 전망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선수 명단 변경은 불가피했다. 사실 대규모 소집에는 장단점이 따르기 마련이다. 경쟁 유도란 명분 뒤에 어수선함이란 불청객도 감수해야 한다. 정예로 담금질하기도 빠듯한데, 선수를 더 관찰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신 감독 역시 “28인은 많다. 원래는 23인으로 가려 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일단 많은 카드를 확보해 시간을 벌어야 하는 것이 현 대표팀의 처지다. 



    게다가 선수 면면이 당초 예상한 경계를 넘어섰다. 소속팀에서 얼마 못 뛴 이청용은 사전에 합류 가능성을 50 대 50으로 견준 바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도 “형평성 논란이 일지 않겠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신 감독은 “필요한 선수라 포기할 수 없었다”며 정면 돌파했다. 하지만 오반석, 이승우, 문선민 등 처음 대표팀에 발탁된 3명은 어느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최종 소집에 새로운 얼굴의 등장은 월드컵 9회 연속 진출 동안 딱 두 번 있었던 일이다. 그마저도 1954 스위스월드컵 1명, 1986 멕시코월드컵 1명 등 꽤 오래전이다. 이번에도 부상 이탈에 따른 공백을 기존 인물로 메웠다. 하지만 줄곧 고민거리이던 수비는 주축 세력 이탈로 검토할 시간이 더 필요하다 해도, 공격 쪽은 판이 어느 정도 갖춰진 상태였다. 

    오반석은 김민재를 대신한다. 신 감독이 줄곧 써온 중앙 수비수가 장현수밖에 남지 않은 상황. 조합을 원점부터 논의하겠다는 의지가 녹아 있었다. 스리백 등을 겸한다는 가정 아래 계획보다 많은 중앙 수비수가 필요할 수도 있다. 전방의 사정은 조금 다르다. 신 감독은 기성용, 정우영 등이 포진한 중앙 미드필더 수를 최소화하는 대신 공격에 무게를 실었다. 그 결과가 이승우, 문선민이란 색다른 카드다. 대표팀은 선제 실점을 끊임없이 경계했다. 이 경우 수비 공헌도가 높은 최전방·측면 공격수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승우나 문선민이 대표팀 템포에 얼마나 잘 맞출 수 있을지 아직은 모른다. 신 감독이 언급했듯 후반에 투입해 크고 둔한 상대 수비진을 휘젓는 쓰임새 정도다. 아무리 조커라도 3월 A매치쯤에는 불러 합을 구상했어야 한다는 아쉬움도 있다.

    이번 선발은 고도의 심리전

    추가로 떠오른 의문은 기존 판에 얼마나 손을 대느냐는 것. 신 감독은 선수 구성과 관련해 “4-4-2가 플랜 A가 아닐 수도 있다”는 파격 예고를 내놨다. 평소 우리 측 정보가 기사화돼 상대국에 유출되는 것을 엄격히 통제하던 신 감독이라면 이런 심리전을 벌일 가능성도 있다. 

    신 감독은 이번 국내 평가전을 두고 “유럽파 선수들이 힘든 여정을 달려왔기에 피로를 풀어주는 쪽으로 갈 것”이라면서 “새로운 선수들과 기존 선수들을 조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말대로라면 월드컵을 위한 최정예 라인업은 오스트리아 전지훈련 중에나 나올 전망이다. 현재 월드컵 직전 볼리비아전, 세네갈전(비공개)을 잡아뒀다. 

    이번 명단은 상대국마저 혼돈에 빠뜨렸다. 같은 조에 속한 독일과 스웨덴 현지 매체는 ‘28명 중 수비수를 12명이나 선발했다’ ‘이승우, 문선민 등을 새로 발탁한 게 매우 놀랍다’는 반응을 내놨다. 예상 밖 선택이 ‘분위기 환기용’인지, 아니면 ‘즉시 전력용’인지에 대한 답은 내달 2일 최종 23인 라인업에서 나온다. 월드컵 조별리그 일정을 마칠 6월 말까지는 “우리의 생각을 구현해보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다. 3전 전패가 아닌 전승할 수 있도록 응원해달라”던 신 감독에 대한 지지가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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