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은 내면을 간직한, 그러나 외면상으로는 거친 남성적 매력을 풍기는 모순적 캐릭터로 1980년대 동남아시아 여성들의 마음을 뒤흔든 유덕화. 1982년 ‘채군곡 1982’로 데뷔했으니 벌써 25년이 흘렀지만 그는 변함없이 젊은 오빠이며 곽부성, 장학우, 여명과 함께 홍콩 연예계를 대표하는 사대천왕 중 한 사람이다.
2006년 12월 말 신작 ‘묵공’의 첫 한국 시사회 참석을 위해 내한한 그는 검은색 고등학교 교복 스타일의 옷을 입고 있었다. 조금 떨어져서 보면, 과장이 아니라 정말 고등학생처럼 보일 만큼 그는 여전히 멋있고 늙지 않았으며 해맑았다. 이렇게 그를 젊고 건강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배우들은 배역을 통해 자신의 실제 인생과는 다른 수많은 인생을 살아간다. 역할을 맡아 연기하는 동안 유덕화는 현실에서도 극중 인물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고 한다. 감독의 사인과 함께 극중 인물로 몰입하는 것은 너무 늦기 때문이다. 유덕화는 살아 있는 청춘이다. 그는 청춘의 대표 아이콘으로서의 지위를 극중에서 오랫동안 누려왔다.
기자 시사회인데도 유덕화의 열혈 국내 팬들이 전자 피켓을 들고 찾아왔다. 여성 팬인 그들은 유덕화가 무대인사를 하는 동안 객석에서 조용히 응원을 했다. 그들은 다른 팬클럽들과 달리 대부분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으로 보였다. ‘묵공’의 또 다른 주인공인 안성기 최시원 등이 무대인사를 마치고 객석으로 가 자리에 앉는 동안 유덕화가 극장 뒷문으로 빠져나가자 팬들도 조용히 사라져버렸다. 그야말로 스타와 함께 움직이는 팬들이었다.
88년 ‘열혈남아’ 이후 스타 반열 … 성실과 겸손 ‘정평’
영화가 끝난 뒤 다시 나타난 유덕화는 함께 공연한 안성기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안성기 선생은 자기 연기에 대한 만족도나 기준이 매우 높다. 손동작을 비롯한 미세한 동작들을 보면 그의 노력과 내공이 상당함을 엿볼 수 있다. 영화를 같이 찍는 동안 왜 안성기 선생이 국민배우인지 알 수 있었다. 정말 존경스럽다.”
유덕화의 80년대가 처음부터 빛났던 것은 아니다. ‘칠복성’ ‘최가손우’ 등의 작품이 80년대 전반기에 있었지만 오늘의 유덕화를 만든 것은 왕가위 감독의 데뷔작 ‘열혈남아’(1988)다. 그 후 홍콩의 중국 반환으로 불안해진 홍콩 내 공기를 절묘하게 형상화한 홍콩 누아르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상처받은 내면을 지닌 유덕화의 이미지와 매우 흡사해서 ‘정전자’(1989) ‘지존무상’(1989)을 거쳐 ‘천장지구’(1990) ‘아비정전’(1990)에서 정점에 이르렀다. 90년대 중반 ‘열화전차’ ‘용등사해’를 거쳐 2000년대 들어서도 유덕화는 홍콩 누아르의 부활을 알린 ‘무간도’(2002)와 한-중-일 합작영화 ‘묵공’의 혁리 역으로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뛰어난 지략으로 대군 물리치는 ‘혁리’역 열연
유덕화는 지난 25년 동안 배우와 가수로 대중적 인기를 얻었지만 영화 관계자와 비평가들에게서 높은 점수를 받은 것은 아니다. 2004년 중국어권의 아카데미상이라고 할 수 있는 대만의 금마장상 시상식에서 유덕화는 ‘무간도3’으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그때 그는 수상 소감에서 “내가 연기를 못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앞으로 진짜 연기를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흥행에 성공했고 할리우드에서는 마틴 스코시즈 감독이 ‘디파티드’로 리메이크하기도 했던 ‘무간도’에서 유덕화는 경찰에 잠입한 조직의 스파이로 냉혹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유덕화는 겸손하다. 25년 동안 한결같이 정상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성실함이다. ‘묵공’의 제작발표회 때도 그는 다른 배우들보다 먼저 현장에 도착해 스태프들이 자리 정리하는 일을 도왔다. 이런 모습은 스타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믿음을 갖게 한다. 어떤 자리에서든 그는 절대로 늦는 법이 없다. 2006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그는 ‘올해의 아시아 영화인상’을 받기도 했다.
‘묵공’은 범아시아 프로젝트다. 기원전 5세기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를 배경으로 제자백가 중 묵가의 일원인 혁리가 조나라 10만 대군에 함락될 위험에 처한 작은 성 ‘양성’을 구해내는 과정을 일본의 만화가 모리 히데키가 만화 ‘묵공’으로 만들었다. 그 원작만화를 한국과 일본의 제작자가 홍콩의 장지량 감독을 영입해 한-중-일 3국의 스태프들과 함께 영화로 제작한 것이 ‘묵공’이다.
160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이 영화에서 유덕화는 혈혈단신으로 10만 대군이 둘러싸고 있는 성안으로 들어가 오직 지략만으로 대군을 물리치는 혁리 역을 맡았다. 도움을 청하면 어디든지 달려가는 혁리는 뛰어난 지략을 발휘함으로써 10만 대군에 포위된 양성 주민들의 신망을 받는다. 한때 청춘의 심벌이었던 유덕화는 도포를 휘날리며 사극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묵공’은 대규모 성곽 세트에서 벌어지는 장대한 스케일이라든지 성을 사이에 두고 양 진영에서 펼쳐지는 공방전에 많은 물량이 동원됐다. 조나라 장수 항엄중(안성기 분)과 양성을 지키려는 혁리의 머리 싸움이 가장 중요한 대목이다.
영화 120편 출연, 가수로서도 대성공
그러나 원작만화를 압축한 대본은 조금 산만하다. 이야기의 얼개는 살아 있지만 각각의 에피소드가 힘있게 연결돼 있지 못하다. 기술적 오류도 많이 눈에 띈다. 시제가 일치하지 않는다든지 동작이 연결되지 않는 등 편집의 기본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거슬린다. 이것은 전적으로 감독의 책임이다. 아직 거대한 스케일을 책임질 수 있을 만큼 내공이 쌓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인공 혁리에게는 내부의 적이 있다. 양성을 다스리는 왕과 심복들은 양성이 위기에 처하자 일시적으로 병권을 혁리에게 넘기지만 백성들이 점차 혁리를 따르자 역모 혐의를 씌워 그를 제거하려 한다. 즉, 혁리는 외부의 적인 조나라 군대의 항엄중과 싸우고 내부의 적인 왕 일파와도 싸워야 한다. 혈혈단신인 그는 힘이 부족하다. 가진 것은 지략뿐이다. 여기에 혁리를 사랑하는 양성 기병대 책임자 일열(판빙빙 분)과의 멜로가 끼어들어 이야기는 복잡해진다.
혁리를 사랑하는 일열, 혁리를 따르는 궁수부대 장군 자단(오기륭 분) 등이 혁리 휘하의 장수들이라면 반대편에는 왕에게 충성하는 우 장군과 간신들이 있다. 혁리는 오히려 적인 항엄중보다, 백성들의 안위는 나 몰라라 하고 자신들의 권력 지키기에만 급급한 양성 내부의 적들에게 큰 위협을 받는다.
영화 속에서 내부의 적과는 선명하게 힘의 대립이 서 있지만 항엄중과의 지략 싸움은 상대적으로 미약하다. 이것이 거대한 스케일의 ‘묵공’을 왜소하게 만드는 이유다.
1961년생인 유덕화는 올해 47세. 지금까지 12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고 대만과 홍콩에서 수많은 상을 받았으며 가수로서도 300여 개 상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스크린 속에서는 여전히 청춘의 심벌이다. 사극의 주인공이 된 그에게서 청춘의 싱싱한 냄새가 나는 이유는 항상 깨어 있으려는 무서운 노력 때문이라는 것을 나는 뒤늦게 알았다. 나이 들수록 더 멋있어지는 남자의 모습을 우리는 유덕화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2006년 12월 말 신작 ‘묵공’의 첫 한국 시사회 참석을 위해 내한한 그는 검은색 고등학교 교복 스타일의 옷을 입고 있었다. 조금 떨어져서 보면, 과장이 아니라 정말 고등학생처럼 보일 만큼 그는 여전히 멋있고 늙지 않았으며 해맑았다. 이렇게 그를 젊고 건강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배우들은 배역을 통해 자신의 실제 인생과는 다른 수많은 인생을 살아간다. 역할을 맡아 연기하는 동안 유덕화는 현실에서도 극중 인물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고 한다. 감독의 사인과 함께 극중 인물로 몰입하는 것은 너무 늦기 때문이다. 유덕화는 살아 있는 청춘이다. 그는 청춘의 대표 아이콘으로서의 지위를 극중에서 오랫동안 누려왔다.
기자 시사회인데도 유덕화의 열혈 국내 팬들이 전자 피켓을 들고 찾아왔다. 여성 팬인 그들은 유덕화가 무대인사를 하는 동안 객석에서 조용히 응원을 했다. 그들은 다른 팬클럽들과 달리 대부분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으로 보였다. ‘묵공’의 또 다른 주인공인 안성기 최시원 등이 무대인사를 마치고 객석으로 가 자리에 앉는 동안 유덕화가 극장 뒷문으로 빠져나가자 팬들도 조용히 사라져버렸다. 그야말로 스타와 함께 움직이는 팬들이었다.
88년 ‘열혈남아’ 이후 스타 반열 … 성실과 겸손 ‘정평’
영화가 끝난 뒤 다시 나타난 유덕화는 함께 공연한 안성기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안성기 선생은 자기 연기에 대한 만족도나 기준이 매우 높다. 손동작을 비롯한 미세한 동작들을 보면 그의 노력과 내공이 상당함을 엿볼 수 있다. 영화를 같이 찍는 동안 왜 안성기 선생이 국민배우인지 알 수 있었다. 정말 존경스럽다.”
유덕화의 80년대가 처음부터 빛났던 것은 아니다. ‘칠복성’ ‘최가손우’ 등의 작품이 80년대 전반기에 있었지만 오늘의 유덕화를 만든 것은 왕가위 감독의 데뷔작 ‘열혈남아’(1988)다. 그 후 홍콩의 중국 반환으로 불안해진 홍콩 내 공기를 절묘하게 형상화한 홍콩 누아르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상처받은 내면을 지닌 유덕화의 이미지와 매우 흡사해서 ‘정전자’(1989) ‘지존무상’(1989)을 거쳐 ‘천장지구’(1990) ‘아비정전’(1990)에서 정점에 이르렀다. 90년대 중반 ‘열화전차’ ‘용등사해’를 거쳐 2000년대 들어서도 유덕화는 홍콩 누아르의 부활을 알린 ‘무간도’(2002)와 한-중-일 합작영화 ‘묵공’의 혁리 역으로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뛰어난 지략으로 대군 물리치는 ‘혁리’역 열연
유덕화는 지난 25년 동안 배우와 가수로 대중적 인기를 얻었지만 영화 관계자와 비평가들에게서 높은 점수를 받은 것은 아니다. 2004년 중국어권의 아카데미상이라고 할 수 있는 대만의 금마장상 시상식에서 유덕화는 ‘무간도3’으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그때 그는 수상 소감에서 “내가 연기를 못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앞으로 진짜 연기를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흥행에 성공했고 할리우드에서는 마틴 스코시즈 감독이 ‘디파티드’로 리메이크하기도 했던 ‘무간도’에서 유덕화는 경찰에 잠입한 조직의 스파이로 냉혹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유덕화는 겸손하다. 25년 동안 한결같이 정상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성실함이다. ‘묵공’의 제작발표회 때도 그는 다른 배우들보다 먼저 현장에 도착해 스태프들이 자리 정리하는 일을 도왔다. 이런 모습은 스타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믿음을 갖게 한다. 어떤 자리에서든 그는 절대로 늦는 법이 없다. 2006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그는 ‘올해의 아시아 영화인상’을 받기도 했다.
‘묵공’은 범아시아 프로젝트다. 기원전 5세기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를 배경으로 제자백가 중 묵가의 일원인 혁리가 조나라 10만 대군에 함락될 위험에 처한 작은 성 ‘양성’을 구해내는 과정을 일본의 만화가 모리 히데키가 만화 ‘묵공’으로 만들었다. 그 원작만화를 한국과 일본의 제작자가 홍콩의 장지량 감독을 영입해 한-중-일 3국의 스태프들과 함께 영화로 제작한 것이 ‘묵공’이다.
160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이 영화에서 유덕화는 혈혈단신으로 10만 대군이 둘러싸고 있는 성안으로 들어가 오직 지략만으로 대군을 물리치는 혁리 역을 맡았다. 도움을 청하면 어디든지 달려가는 혁리는 뛰어난 지략을 발휘함으로써 10만 대군에 포위된 양성 주민들의 신망을 받는다. 한때 청춘의 심벌이었던 유덕화는 도포를 휘날리며 사극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묵공’은 대규모 성곽 세트에서 벌어지는 장대한 스케일이라든지 성을 사이에 두고 양 진영에서 펼쳐지는 공방전에 많은 물량이 동원됐다. 조나라 장수 항엄중(안성기 분)과 양성을 지키려는 혁리의 머리 싸움이 가장 중요한 대목이다.
영화 120편 출연, 가수로서도 대성공
그러나 원작만화를 압축한 대본은 조금 산만하다. 이야기의 얼개는 살아 있지만 각각의 에피소드가 힘있게 연결돼 있지 못하다. 기술적 오류도 많이 눈에 띈다. 시제가 일치하지 않는다든지 동작이 연결되지 않는 등 편집의 기본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거슬린다. 이것은 전적으로 감독의 책임이다. 아직 거대한 스케일을 책임질 수 있을 만큼 내공이 쌓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인공 혁리에게는 내부의 적이 있다. 양성을 다스리는 왕과 심복들은 양성이 위기에 처하자 일시적으로 병권을 혁리에게 넘기지만 백성들이 점차 혁리를 따르자 역모 혐의를 씌워 그를 제거하려 한다. 즉, 혁리는 외부의 적인 조나라 군대의 항엄중과 싸우고 내부의 적인 왕 일파와도 싸워야 한다. 혈혈단신인 그는 힘이 부족하다. 가진 것은 지략뿐이다. 여기에 혁리를 사랑하는 양성 기병대 책임자 일열(판빙빙 분)과의 멜로가 끼어들어 이야기는 복잡해진다.
혁리를 사랑하는 일열, 혁리를 따르는 궁수부대 장군 자단(오기륭 분) 등이 혁리 휘하의 장수들이라면 반대편에는 왕에게 충성하는 우 장군과 간신들이 있다. 혁리는 오히려 적인 항엄중보다, 백성들의 안위는 나 몰라라 하고 자신들의 권력 지키기에만 급급한 양성 내부의 적들에게 큰 위협을 받는다.
영화 속에서 내부의 적과는 선명하게 힘의 대립이 서 있지만 항엄중과의 지략 싸움은 상대적으로 미약하다. 이것이 거대한 스케일의 ‘묵공’을 왜소하게 만드는 이유다.
1961년생인 유덕화는 올해 47세. 지금까지 12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고 대만과 홍콩에서 수많은 상을 받았으며 가수로서도 300여 개 상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스크린 속에서는 여전히 청춘의 심벌이다. 사극의 주인공이 된 그에게서 청춘의 싱싱한 냄새가 나는 이유는 항상 깨어 있으려는 무서운 노력 때문이라는 것을 나는 뒤늦게 알았다. 나이 들수록 더 멋있어지는 남자의 모습을 우리는 유덕화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