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대 캘리포니아 주지사로 취임한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슈워제네거는 지난해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 출마 당시 라디오, 텔레비전 등 미디어에 끊임없이 얼굴을 내비치면서 영화배우 스타라는 자신의 위치를 충분히 활용했다. 하지만 자신이 제안한 150억 달러 공채발행안의 3월 주민투표 회부를 앞두고, 또다시 미디어의 도움을 기대했던 슈워제네거에게 이번 상황은 그리 만만치 않다. 아동 성추행 혐의로 기소된 팝 스타 마이클 잭슨, 성추행 혐의로 기소된 LA레이커스의 스타 코비 브라이언트, 자신의 집에서 B급 영화 여배우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전설적인 프로듀서 필 스펙터,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배우 로버트 블레이크, 임신한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스콧 패터슨 등 그동안 미디어의 집중 조명을 받았던 사건들의 재판이 줄줄이 열릴 예정이어서 방송 출연 스케줄을 잡기가 쉽지 않게 된 것이다.
선거 땐 출연 요청 쇄도 ‘격세지감’
슈워제네거는 취임 직후 캘리포니아 재정위기 타개를 위해 150억 달러 공채발행안 등을 내놓고 주 전역을 돌며 유권자들에게 경제회생안 지지를 호소해왔다. 민주당이 장악한 의회에서 의원들과 협상하는 데 시간을 들이기보다는 주민들에게 주의회에 전화와 이메일을 보내 자신을 지지해달라고 촉구하는 등 유권자들을 통한 의회 압박작전을 펼친 것. 이런 작전은 의원들의 분노를 사 한때 의회에서 그의 경제회생안이 부결되기도 했다. 의회에서 하는 정치 협상보다는 주민들을 직접 상대해 승부를 내겠다는 자신감의 바탕에는 주지사 선거를 치르면서 미디어의 덕을 톡톡히 봤던 과거의 경험이 자리잡고 있다.
아동 성추행 혐의로 기소된 마이클 잭슨.
지난해 11월20일 샌 퍼낸도 밸리에서 열렸던 주지사로서의 첫 대중집회는 스펙터의 기소와 잭슨의 검찰 출두에 자리를 내준 채 미디어의 조명을 거의 받지 못했다. 비틀스의 명반 ‘렛 잇 비’ 등을 제작하며 1960~70년대 팝계의 ‘미다스의 손’으로 군림했던 음반 제작자 스펙터는 알함브라에 있는 자택에서 발생한 여배우 살인사건의 피의자로 경찰에 체포됐다. 보석금 100만 달러를 내고 풀려난 뒤 기소됐다. 크리스마스트리 점화식 때 수십 대의 카메라를 불러 모았던 슈워제네거도 이날만큼은 두 사건에 가려 6대의 카메라에 단 한 명의 텔레비전 기자밖에 동원할 수 없었던 것. 슈워제네거의 언론담당 비서관들은 이제 유명인사들의 재판날짜를 피해 슈워제네거의 동정거리를 만들어내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할리우드 연예 프로그램 관계자들은 “슈워제네거를 이제는 더 이상 엔터테이너로 여기지 않는다”면서 “그가 주지사로서 할리우드와 관련된 어떤 일을 하거나, 또는 공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거나 그레이 데이비스 전 캘리포니아 주지사와 같이 헤쳐 나오기 힘든 수렁에 빠져 위기를 맞기 전에는 예전과 같은 미디어의 집중세례를 받기는 힘들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150억 달러 공채발행안 등 주 재정위기 타개책의 주민투표 통과를 위해 갈 길이 바쁜 슈워제네거가 뜻밖에 만난 복병 유명인사들과의 경쟁을 물리치고 미디어를 통한 주민들의 시선 끌기에 성공할 수 있을지, 아니면 아이로니컬하게도 정치생명의 위기를 맞아 다시 미디어의 집중조명을 받게 될지, 앞으로 2개월이 슈워제네거에겐 정치적 성공 여부를 결정하는 시험대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