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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이들 상담해보니, 집안 잔소리가 학교 ‘왕따’보다 위험”

  • 강병훈 정신건강의학과전문의 shirts0818@naver.com

“요즘 아이들 상담해보니, 집안 잔소리가 학교 ‘왕따’보다 위험”

코로나19 확산으로 집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늘면서 무기력함과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집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늘면서 무기력함과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우리의 삶 앞에 나타난 지 어느덧 반년이 됐다. 내가 일하는 소아정신과 진료실 풍경도 코로나19 사태로 많이 바뀌었다. 코로나19 사태 초기에는 두려움과 공포, 불안감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았다. 매일 온라인 뉴스와 방송 등을 통해 코로나19 확진자가 늘었나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발열 등 명확한 증상이 없음에도 ‘나도 걸린 것 아닐까’ 하는 신경증적 반응을 호소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생전 처음 경험해보는 개학 연기, 온라인 수업, 재택근무 등 아이나 부모나 갑자기 바뀐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초기의 막연한 불안감이나 공포는 점점 옅어지는 분위기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게 새삼 실감나는 요즘이다. 

그렇다고 안심할 건 아니다. 불안 혹은 공포 심리가 잠시 소강기를 맞은 것일 뿐, 코로나19 부작용이 사라졌다고는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초기와 달리 요즘은 무기력감과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흔히 말하는 ‘사는 게 재미없다’고 느끼는 그런 감정이다. 인간을 두렵게 만드는 가장 큰 요소는 미래에 대한 예측 불가능이다. 코로나19 사태 역시 언제 끝날 알 수 있다면 이렇게 힘들지 않을 것이다. 마스크 착용에 대한 불편함은 둘째고, 예전처럼 가족, 친구들과 어울려 신나게 놀 수 없는 상황이 많은 이를 우울하게 만든다.

아이나 부모나 ‘생지옥’

특히 거의 집 안에서만 생활하는 아이들의 답답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서울·경기권 초등생의 경우 일주일에 고작 한두 번 등교하고, 학교에 간다 해도 친구들과 몸을 부딪치며 노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보니 가슴이 꽉 막힌 듯한 불편함이 계속 누적되고 있다. 중고교생도 마찬가지다. 청소년들이 자주 가던 코인노래방이나, PC방, 영화관 등 위락시설 방문이 최근 어려워지면서 집에서 공부 말고 뭘 하며 지내야 할지 모르겠다고 호소하는 학생이 많다. 평소 교우관계가 좋고 학교생활을 잘해온 학생일수록 현 상황을 더욱 힘겹게 느낀다. 안타깝지만, 앞으로 코로나19 사태가 1년 이상 장기화할 경우 우울증 환자 또한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상담실을 방문하는 이들 중에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부모와 갈등이 더욱 커졌다고 말하는 아이도 많다. 이유는 예상대로다. 아이들이 집에 있으면서 보이는 행동들이 부모의 심기를 거스르기 때문이다. 스마트폰과 컴퓨터 사용이 늘어나는 건 기본이고, 취침·기상시간도 부모와 아이의 기준이 다르다 보니 잔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남자아이들이 주로 게임이나 동영상에 빠져 있다면, 여자아이들은 카카오톡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문제다. 



평소 아이와 관계가 좋지 않아 상담을 하러 오던 부모들도 코로나19 사태가 불러온 현 상황에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아이 상담차 병원을 찾았다 부모가 자신의 상담을 신청하는 경우도 많다. 아이나 부모나 생지옥이긴 마찬가지인 것이다. “머리로는 ‘현 상황을 받아들이자’ 하면서도 막상 눈앞에서 빈둥대는 아이를 보면 나도 모르게 울화가 치민다”고 호소하는 부모가 많다.

따돌림, 학교 폭력 사라져 웃는 아이들

코로나19로 학교폭력, 따돌림 현상 등은 잠시 소강기를 맞았다.

코로나19로 학교폭력, 따돌림 현상 등은 잠시 소강기를 맞았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확찐자’(코로나19로 집 안에서 생활하다 보니 체중이 급격히 늘었다는 뜻)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졌다. 누가 만든 말인지, 참 기발하다는 생각에 웃음이 절로 난다. 하지만 확찐자 문제는 결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특히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쓰는 청소년일수록 비만은 자존감 저하와 무기력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감정의 종착역이 우울증이 되지 않도록 부모의 각별한 관리가 필요하다. 

활동량이 줄어들면 살이 찌는 건 당연하다. 사람들이 많이 활동하지 않는 늦은 저녁 시간과 장소를 골라 아이와 함께 가볍게 운동하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19 사태가 오히려 삶에 안정감을 주는 경우도 있다. 평소 학교생활이나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던 아이들이 특히 그렇다. 사회성이 부족해 학교나 단체생활을 힘들어하던 학생들 가운데 온라인 수업 이후 마음이 많이 편해졌다고 말하는 아이가 제법 있다. 

실제로 해마다 학기 초만 되면 대인기피와 불안증을 호소하며 병원을 찾는 아이들이 있는데, 올해는 아직까지 그런 아이를 만나지 못했다. 학교가 정상 개학하면 다시 상담실 문을 두드릴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현 상황을 더없는 ‘평화’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 밖에 거짓말이나 가출, 도둑질, 폭력 등 품행 문제로 내원하는 아이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학교 폭력, 따돌림 같은 문제가 사라진 덕분이다. 

코로나 시대를 살면서 정신과 의사들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새로운 기준을 잡는다는 뜻으로 지금을 ‘뉴노멀 시대’라고 칭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는 바꿔 말하면 보편적 기준이 아직 정립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코로나 시대 이후 우리 인간은 과연 어떤 새로운 스트레스와 공포를 만나게 될까. 코로나19 백신 개발도 중요하지만, 정신건강의학 분야도 일찌감치 준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주간동아 1247호 (p30~31)

강병훈 정신건강의학과전문의 shirts081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