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와 관련된 논제가 대입 논술에 종종 출제된다. 제시문 (가)의 핵심 내용을 설명하고, 제시문 (나)의 ‘대중문화 논의’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가)의 관점에서 논술하는 2004년 숙명여대 문제, [나] 지문에 제시된 중심 개념을 도출·정리한 후, 이를 분석의 도구로 삼아 [가] 지문을 참조하여 [다] 지문의 ‘욘사마 현상’을 분석하는 2005년 한양대 문제, 대중문화와 고급문화를 사이에 둔 가치의 갈등관계와 이를 바탕으로 현실의 문화정책에 대한 학생의 판단을 요구한 2006년 서강대 수시 2학기 논술고사 등이 대표적인 예다.
대중문화와 관련된 문제의 경우 학생들은 ‘사회 문화’ 교과서 등 기존 학습자료를 바탕으로 대중문화 옹호론 내지 비판론을 피상적으로 나열하는 데 그치곤 한다. 특히 많은 경우 교과서의 중심 내용을 단순 요약하거나 학원에서 정리해준 대중문화의 긍정적, 부정적 측면에 대한 논의로 일관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러한 획일화되고 피상적인 대중문화 논의로는 대학 측이 요구하는 심층적, 창의적인 사고를 드러내기가 어렵다. 따라서 대중문화에 대한 심층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한 자신만의 논지 전개가 필요하다.
한 남자의 출생과 성장, 결혼, 사회생활을 포함한 ‘삶’이 리얼리티 쇼로 만들어져 전 세계로 방송되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 ‘트루먼 쇼’는 다양한 주제를 이끌어낼 수 있는 영화다. 먼저 영화의 주제라고 할 수 있는 미디어 권력의 폭력성과 그로 인해 유린당하는 개인의 인권문제를 논할 수 있고, 트루먼의 일상을 담아내는 방송국 카메라의 시선을 통해 감시와 통제로 이루어진 전체주의적 획일성을 비판할 수도 있다. 이와 함께 범위를 더 넓혀 트루먼의 삶을 조작·통제해 ‘리얼리티 쇼’를 만드는 방송사와 트루먼 쇼에 열광하는 시청자들의 모습을 통해 대중문화와 대중매체의 관계를 탐색해볼 수도 있다.
현대사회와 대중문화
E. B. 타일러(Tylor)의 말을 빌리면 ‘문화란 지식·신앙·예술·도덕·법률·관습 등 인간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획득한 능력 또는 습관의 총체’다. 그러나 대중문화, 고급문화를 논의하는 데 있어서 문화라는 용어는 좀더 구체적으로 규정될 필요가 있다. 즉, 문화란 그 사회의 지식, 가치관, 관습, 취향 등이 구체화돼 유통되는 지식과 예술(음악·문학·미술 등)로 정의할 수 있다.
현대 대중예술의 대표적 장르인 영화를 바탕으로 대중문화에 대한 논의를 진행해보자. 예술작품의 탄생에는 작가(생산자)의 예술적 능력과 열정 외에 다른 여러 요소가 필요하다. 그중에서도 예술작품 수용자(소비자)의 지지와 후원은 매우 중요한 구실을 한다. 14~16세기 유럽에서 화려한 인문주의의 꽃이 만개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당대를 풍미한 위대한 예술가들과 더불어 메디치 가(家) 같은 강력한 후원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 ‘오페라의 유령’에서 크리스틴이 뮤지컬의 주연을 맡을 수 있었던 것 역시 그녀를 적극적으로 지원한 팬텀과 극단의 후원자 라울 백작 덕분이었다. 이처럼 예술가를 후원해 예술작품이 탄생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사람을 일컬어 패트런(patron)이라고 한다. 패트런이 예술가를 후원하는 이유는 자신들의 예술적 요구와 취향에 맞는 작품을 얻기 위해서이기 때문에 패트런의 후원 아래 탄생한 작품들에는 그들의 요구 및 취향이 반영돼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현대사회의 대중예술의 패트런은 대중이다. 즉, 대중문화는 대중의 요구와 취향을 반영한 문화다. 영화 속의 ‘트루먼 쇼’가 대중문화의 한 장르라면 그것에 열광하는 시청자는 일종의 패트런이 되는 셈이다. 마찬가지로 댄스가수의 노래에 열광하는 소녀 팬들은 댄스가수의 패트런이며, 트로트에 열광하는 중년 남녀들은 트로트 가수의 패트런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가들을 패트런의 주문에 응하는 상품생산자로 격하시키지 않듯이 인기가수들 역시 상품생산자로 격하시킬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예술작품(문화)의 존재는 자족적인 미적 가치뿐 아니라 인간에 의해 향유될 것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의 가장 큰 특징은 가치의 다원화라고 말할 수 있다. 획일성보다는 개성이 중요시되고, 절대적인 지식이나 가치보다는 상대적인 가치와 지식이 존중받는다.
가치가 다원화되고 다양성이 존중받는 사회에서 대중의 다양한 취향과 욕구를 채워주는 문화의 존재는 그 사회와 문화의 건강성 및 풍요로움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대중문화가 정말 대중의 다양한 요구와 취향을 포괄한다면 대중문화는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 상찬의 대상이 돼야 할 것이다.
진짜 문제는 대중매체다
그럼에도 대중문화가 비판받는 이유는 대중문화가 대중의 다양한 취향과 욕구를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중매체를 통해서 생산되고 전파되는 대중문화는 대중의 다양한 취향을 획일화하고, 대중을 저속하고 상업적인 문화의 단순한 소비자로 전락시키고 만다.
다시 ‘트루먼 쇼’로 돌아가보자. 다른 사람의 삶을 엿보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와 그것을 충족시킬 수 있는 쇼를 만드는 프로그램 제작자의 의도가 만나 ‘트루먼 쇼’가 탄생한다. 그리고 이 쇼는 TV라는 대중매체에 의해 전파된다. 현대사회에서 TV는 가장 강력한 대중매체다. 문제는 시청률에 따라 광고 수익이 달라지고,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 정해진 시간 내에 최고의 시청률을 올려야 하는 TV라는 매체의 태생적 한계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내용을 위주로 대중의 취향을 몰아간다는 것이다. 즉, TV라는 대중매체의 상업주의에 의해 대중의 자발성과 개성은 상실되고 저급한 취향이 형성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최악의 경우 대중문화는 ‘대중의 취향을 백지화하고 전체주의화’할 위험성마저 갖게 된다.
TV라는 대중매체의 상업주의는 문화의 생산자를 ‘취향지향적’이기보다는 ‘시장지향적’으로 만든다. ‘트루먼 쇼’에 나타난 간접광고 전략인 - 예를 들어 트루먼의 부인이 트루먼에게 특정 회사의 맥주를 권하는 상황을 통해 맥주광고를 대신하는 것 - PPL은 관객을 수동적인 소비자로 인식하는 대중매체의 시장지향성의 결과다(PPL은 우리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자주 문제가 된 바 있다). 이런 지향점의 변화는 문화의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를 거래적 관계로 바꿔놓는다.
거래적 관계의 비인격성은 트루먼의 인생을 통째로 조작·통제하려는 방송제작자(방송국)의 비도덕성으로 드러난다. 이런 TV 방송제작자의 비도덕성은 영화 속에서뿐 아니라 현실세계에서도 광범위하게 확인된다. 청소년들의 일탈문제를 보도하면서 그들의 일탈적 생활을 그대로 노출시켜 선정성을 강조하는 보도 프로그램, 불륜으로 얼룩진 내용들로 구성되는 드라마들, 사실관계의 검증 없이 연예인들의 사생활을 보도하는 연예정보 프로그램, 광고 수익을 위해 과도한 비용을 치르며 월드컵 중계권을 사들이는 방송국의 행태 등은 대중의 취향과 요구를 반영하기보다는 대중의 취향을 볼모로 광고주의 이윤 창출을 대변함으로써 자신의 수익을 확보하고자 하는 대중매체의 비윤리성의 결과다.
결국 대중문화가 비판받는 이유의 근원에는 대중매체의 속성이 자리한다고 볼 수 있다. 다양한 주장과 취향을 대중에게 선보이고, 공익적 프로그램을 제작해 사회의 통합 및 발전을 도모해야 할 미디어의 사회적 책임을 잊고 상업주의에 압도된 대중매체의 폐해가 대중문화에 그대로 나타난 것이다.
이와 같이 ‘트루먼 쇼’를 통해 대중문화와 대중매체의 관련성을 탐색했다면, 이를 단서로 대중문화에 대한 학생의 생각을 대중매체와 관련시켜 제시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대중문화 비판론의 근원에는 대중매체의 시장지향성이 자리 잡고 있으며, ‘진정한 대중문화’는 대중문화 생산 보급자인 대중매체가 대중의 다양한 취향을 반영한 여러 가지 문화적 콘텐츠를 제공하는 취향지향적 태도를 견지함으로써 이뤄질 수 있다는 식의 논지 전개가 가능하다. 아울러 대중문화의 수용자인 개인의 자발성 및 개성의 확보와 대중문화를 향유하는 데 있어서 자기 성찰의 노력도 함께 포함시킬 수 있는 요소다.
더 생각해보기
정보화사회에서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매체가 세력을 넓히고 있다. 인터넷에서 누리꾼의 항의로 드라마의 내용이 바뀌기도 하고, 인터넷의 여론 형성 기능이 정부 정책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사례가 빈번해지고 있다. 한편, 인터넷서비스 업체는 포털에 기사를 게재함으로써 ‘인터넷 언론’으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음에도 언론의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한다. 위의 글을 바탕으로 대중매체로서 TV와 인터넷의 공통점 및 차이점을 검토하고, 인터넷이 바람직한 대중문화의 형성에 기여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자.
대중문화와 관련된 문제의 경우 학생들은 ‘사회 문화’ 교과서 등 기존 학습자료를 바탕으로 대중문화 옹호론 내지 비판론을 피상적으로 나열하는 데 그치곤 한다. 특히 많은 경우 교과서의 중심 내용을 단순 요약하거나 학원에서 정리해준 대중문화의 긍정적, 부정적 측면에 대한 논의로 일관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러한 획일화되고 피상적인 대중문화 논의로는 대학 측이 요구하는 심층적, 창의적인 사고를 드러내기가 어렵다. 따라서 대중문화에 대한 심층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한 자신만의 논지 전개가 필요하다.
한 남자의 출생과 성장, 결혼, 사회생활을 포함한 ‘삶’이 리얼리티 쇼로 만들어져 전 세계로 방송되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 ‘트루먼 쇼’는 다양한 주제를 이끌어낼 수 있는 영화다. 먼저 영화의 주제라고 할 수 있는 미디어 권력의 폭력성과 그로 인해 유린당하는 개인의 인권문제를 논할 수 있고, 트루먼의 일상을 담아내는 방송국 카메라의 시선을 통해 감시와 통제로 이루어진 전체주의적 획일성을 비판할 수도 있다. 이와 함께 범위를 더 넓혀 트루먼의 삶을 조작·통제해 ‘리얼리티 쇼’를 만드는 방송사와 트루먼 쇼에 열광하는 시청자들의 모습을 통해 대중문화와 대중매체의 관계를 탐색해볼 수도 있다.
현대사회와 대중문화
E. B. 타일러(Tylor)의 말을 빌리면 ‘문화란 지식·신앙·예술·도덕·법률·관습 등 인간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획득한 능력 또는 습관의 총체’다. 그러나 대중문화, 고급문화를 논의하는 데 있어서 문화라는 용어는 좀더 구체적으로 규정될 필요가 있다. 즉, 문화란 그 사회의 지식, 가치관, 관습, 취향 등이 구체화돼 유통되는 지식과 예술(음악·문학·미술 등)로 정의할 수 있다.
현대 대중예술의 대표적 장르인 영화를 바탕으로 대중문화에 대한 논의를 진행해보자. 예술작품의 탄생에는 작가(생산자)의 예술적 능력과 열정 외에 다른 여러 요소가 필요하다. 그중에서도 예술작품 수용자(소비자)의 지지와 후원은 매우 중요한 구실을 한다. 14~16세기 유럽에서 화려한 인문주의의 꽃이 만개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당대를 풍미한 위대한 예술가들과 더불어 메디치 가(家) 같은 강력한 후원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 ‘오페라의 유령’에서 크리스틴이 뮤지컬의 주연을 맡을 수 있었던 것 역시 그녀를 적극적으로 지원한 팬텀과 극단의 후원자 라울 백작 덕분이었다. 이처럼 예술가를 후원해 예술작품이 탄생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사람을 일컬어 패트런(patron)이라고 한다. 패트런이 예술가를 후원하는 이유는 자신들의 예술적 요구와 취향에 맞는 작품을 얻기 위해서이기 때문에 패트런의 후원 아래 탄생한 작품들에는 그들의 요구 및 취향이 반영돼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현대사회의 대중예술의 패트런은 대중이다. 즉, 대중문화는 대중의 요구와 취향을 반영한 문화다. 영화 속의 ‘트루먼 쇼’가 대중문화의 한 장르라면 그것에 열광하는 시청자는 일종의 패트런이 되는 셈이다. 마찬가지로 댄스가수의 노래에 열광하는 소녀 팬들은 댄스가수의 패트런이며, 트로트에 열광하는 중년 남녀들은 트로트 가수의 패트런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가들을 패트런의 주문에 응하는 상품생산자로 격하시키지 않듯이 인기가수들 역시 상품생산자로 격하시킬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예술작품(문화)의 존재는 자족적인 미적 가치뿐 아니라 인간에 의해 향유될 것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의 가장 큰 특징은 가치의 다원화라고 말할 수 있다. 획일성보다는 개성이 중요시되고, 절대적인 지식이나 가치보다는 상대적인 가치와 지식이 존중받는다.
가치가 다원화되고 다양성이 존중받는 사회에서 대중의 다양한 취향과 욕구를 채워주는 문화의 존재는 그 사회와 문화의 건강성 및 풍요로움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대중문화가 정말 대중의 다양한 요구와 취향을 포괄한다면 대중문화는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 상찬의 대상이 돼야 할 것이다.
진짜 문제는 대중매체다
그럼에도 대중문화가 비판받는 이유는 대중문화가 대중의 다양한 취향과 욕구를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중매체를 통해서 생산되고 전파되는 대중문화는 대중의 다양한 취향을 획일화하고, 대중을 저속하고 상업적인 문화의 단순한 소비자로 전락시키고 만다.
다시 ‘트루먼 쇼’로 돌아가보자. 다른 사람의 삶을 엿보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와 그것을 충족시킬 수 있는 쇼를 만드는 프로그램 제작자의 의도가 만나 ‘트루먼 쇼’가 탄생한다. 그리고 이 쇼는 TV라는 대중매체에 의해 전파된다. 현대사회에서 TV는 가장 강력한 대중매체다. 문제는 시청률에 따라 광고 수익이 달라지고,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 정해진 시간 내에 최고의 시청률을 올려야 하는 TV라는 매체의 태생적 한계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내용을 위주로 대중의 취향을 몰아간다는 것이다. 즉, TV라는 대중매체의 상업주의에 의해 대중의 자발성과 개성은 상실되고 저급한 취향이 형성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최악의 경우 대중문화는 ‘대중의 취향을 백지화하고 전체주의화’할 위험성마저 갖게 된다.
TV라는 대중매체의 상업주의는 문화의 생산자를 ‘취향지향적’이기보다는 ‘시장지향적’으로 만든다. ‘트루먼 쇼’에 나타난 간접광고 전략인 - 예를 들어 트루먼의 부인이 트루먼에게 특정 회사의 맥주를 권하는 상황을 통해 맥주광고를 대신하는 것 - PPL은 관객을 수동적인 소비자로 인식하는 대중매체의 시장지향성의 결과다(PPL은 우리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자주 문제가 된 바 있다). 이런 지향점의 변화는 문화의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를 거래적 관계로 바꿔놓는다.
거래적 관계의 비인격성은 트루먼의 인생을 통째로 조작·통제하려는 방송제작자(방송국)의 비도덕성으로 드러난다. 이런 TV 방송제작자의 비도덕성은 영화 속에서뿐 아니라 현실세계에서도 광범위하게 확인된다. 청소년들의 일탈문제를 보도하면서 그들의 일탈적 생활을 그대로 노출시켜 선정성을 강조하는 보도 프로그램, 불륜으로 얼룩진 내용들로 구성되는 드라마들, 사실관계의 검증 없이 연예인들의 사생활을 보도하는 연예정보 프로그램, 광고 수익을 위해 과도한 비용을 치르며 월드컵 중계권을 사들이는 방송국의 행태 등은 대중의 취향과 요구를 반영하기보다는 대중의 취향을 볼모로 광고주의 이윤 창출을 대변함으로써 자신의 수익을 확보하고자 하는 대중매체의 비윤리성의 결과다.
결국 대중문화가 비판받는 이유의 근원에는 대중매체의 속성이 자리한다고 볼 수 있다. 다양한 주장과 취향을 대중에게 선보이고, 공익적 프로그램을 제작해 사회의 통합 및 발전을 도모해야 할 미디어의 사회적 책임을 잊고 상업주의에 압도된 대중매체의 폐해가 대중문화에 그대로 나타난 것이다.
이와 같이 ‘트루먼 쇼’를 통해 대중문화와 대중매체의 관련성을 탐색했다면, 이를 단서로 대중문화에 대한 학생의 생각을 대중매체와 관련시켜 제시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대중문화 비판론의 근원에는 대중매체의 시장지향성이 자리 잡고 있으며, ‘진정한 대중문화’는 대중문화 생산 보급자인 대중매체가 대중의 다양한 취향을 반영한 여러 가지 문화적 콘텐츠를 제공하는 취향지향적 태도를 견지함으로써 이뤄질 수 있다는 식의 논지 전개가 가능하다. 아울러 대중문화의 수용자인 개인의 자발성 및 개성의 확보와 대중문화를 향유하는 데 있어서 자기 성찰의 노력도 함께 포함시킬 수 있는 요소다.
더 생각해보기
정보화사회에서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매체가 세력을 넓히고 있다. 인터넷에서 누리꾼의 항의로 드라마의 내용이 바뀌기도 하고, 인터넷의 여론 형성 기능이 정부 정책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사례가 빈번해지고 있다. 한편, 인터넷서비스 업체는 포털에 기사를 게재함으로써 ‘인터넷 언론’으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음에도 언론의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한다. 위의 글을 바탕으로 대중매체로서 TV와 인터넷의 공통점 및 차이점을 검토하고, 인터넷이 바람직한 대중문화의 형성에 기여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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