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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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고 발명품 에어컨

[궤도 밖의 과학] 오래전부터 무더위를 잊고자 했던 인류의 염원

  • 과학 커뮤니케이터 궤도 nasabolt@gmail.com

    입력2022-08-24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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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어컨은 효율적인 냉각 시스템을 통해 낮은 온도의 실내에서 높은 온도의 실외로 열을 이동시킨다. [GettyImages]

    에어컨은 효율적인 냉각 시스템을 통해 낮은 온도의 실내에서 높은 온도의 실외로 열을 이동시킨다. [GettyImages]

    무더운 한여름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예부터 사계절이 뚜렷하던 한국은 이제 마치 여름과 겨울만 존재하는 지역처럼 날씨가 극단적 패턴을 보인다. 특히 여름은 가혹한 계절이라 우리 조상조차도 함부로 여기지 않았고, 무덥고 습한 날씨를 이겨내는 데 큰 노력을 기울였다.

    물리학에서 열은 에너지가 전달되는 방식의 하나로, 시원해지기 위해서는 몸이나 주변의 열을 빠르게 다른 곳으로 넘기는 것이 중요하다. 바람 부는 야외에 설치돼 앉거나 누워서 쉴 수 있는 나무 평상은 바닥에서 적당히 떠 있고, 일정한 간격으로 틈도 벌어져 있어 사방으로 바람이 통한다. 마치 뜨거운 노트북을 식히려고 사용하는 거치대처럼 말이다. 대나무로 성기게 만들어 비슷한 원리로 열을 방출하는 죽부인도 요긴하게 사용됐다. 대나무 자체가 시원한 측면도 있고, 엮은 대나무는 속이 빈 채로 사방이 뚫린 구조라 공기와 닿는 표면적이 넓은 데다 통풍도 굉장히 잘된다. 보통은 잠들기 전까지 뭔가를 끌어안고 있으면 땀이 많이 나는데, 삼베 홑이불을 덮고 죽부인과 함께 누우면 정반대로 땀이 증발해 시원하고 편안한 한여름 밤을 맞을 수 있다. 더위를 날리기 위한 가장 흔한 도구인 부채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지금이야 부채를 만드는 데 쓰이는 재료가 다양하지만, 과거에는 주로 대를 쪼개어 가늘게 깎은 토막에 종이나 헝겊을 부착해 완성했다.

    전기 발명 이후 가장 널리 사용된 여름용 발명품은 선풍기라고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누가 처음 발명했는지조차 모르는 선풍기 역시 놀랍게도 처음에는 전기 없이 만들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1600년대 처음 등장한 선풍기는 천장에 매달아놓은 추가 무게 때문에 아래로 떨어지면서 묶인 기둥을 회전시키고, 회전축은 커다란 부채를 흔들어 바람을 보냈다. 이후 회전하는 날개를 통해 바람을 한 방향으로 보내던 선풍기는 태엽을 감아서 사용하는 방식으로 바뀌었고, 드디어 에디슨이 전기를 이용하는 선풍기를 발명하면서 지금 형태가 됐다.

    고대 로마인은 집 안 온도를 낮추기 위해 벽 뒤로 찬물이 순환되는 수도관을 설치했다. 또한 이집트 투탕카멘 무덤에서도 황금봉에 타조 깃털이 붙은 대형 부채가 나왔다고 한다. 2세기 무렵 중국에서는 3m 넘는 거대한 바퀴가 회전하는 팬을 설치해 찬 공기를 집 안으로 유입시키기도 했다. 예전부터 이러한 발명품들은 전부 공기를 빠르게 순환시키고 주변 기온을 떨어뜨리려는 노력의 결과였다. 너무 덥고 또 피할 수 없을 때는 문화적으로 받아들이는 방식도 있었다. 스페인에서는 점심식사 후 잠깐 자는 낮잠을 시에스타(Siesta)라고 부르는데, 이 시간에는 높은 기온을 이기기 위해 업무를 중단하고 그늘에서 달콤한 휴식을 취한다.

    인간이 느끼는 더위보다 심각했던 인쇄업체 상황

    현대식 에어컨을 최초로 발명한 윌리스 캐리어. [캐리어 홈페이지]

    현대식 에어컨을 최초로 발명한 윌리스 캐리어. [캐리어 홈페이지]

    전국적으로 폭염주의보가 발효되는 여름에는 더위를 피하고자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아이디어가 끊임없이 나온다. 더위 때문이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과학자들 역시 열을 흡수하거나 방출하는 실험에 관심이 많았다. 1758년 미국 과학자이자 계몽사상가 벤저민 프랭클린과 영국 화학자 존 해들리는 온도계에 알코올을 묻힌 다음 센 바람을 풀무질로 계속 불어주면 온도가 영하 14도까지 떨어진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피부에 상처가 났을 때 소독약을 바르면 시원한 느낌이 드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주변 온도가 18도 정도인 상황에서 온도계를 어디까지 냉각시킬 수 있는지를 정량적으로 실험한 건 대단한 일이었다. 액체인 알코올이 기체 상태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필요한 에너지를 얻기 위해 주변 열을 흡수해 온도가 내려가는 원리를 보여준 것이다. 프랭클린은 이 원리를 이용하면 무더운 한여름에도 어딘가는 추울 정도로 온도를 낮추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1820년에는 영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실험물리학자 마이클 패러데이가 압축된 액화 암모니아가 다시 기체로 변할 때 공기가 매우 차갑게 변하는 현상을 발견했다. 알코올과 비슷한 원리였는데, 독성이 문제이긴 했으나 냉각제로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의 실험이었다. 이때부터 현대의 모든 냉각기술은 패러데이의 발견을 기반으로 만들어진다. 특별히 상용화에 시급한 상황이 아니었기에 그로부터 22년이 흘렀고, 미국 과학자 존 고리 박사에게 기가 막힌 기회가 왔다. 당시 열대기후인 개척지로 파견된 수많은 노동자가 말라리아로 고열에 시달렸는데, 열을 내리려고 병원 천장에 얼음덩어리를 매달기도 했다. 아직 말라리아가 어떻게 확산하는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던 시기라 습지에서 발생하는 수증기가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됐다. 때마침 뉴잉글랜드에서 출발한 수송선이 조난돼 얼음 보급이 지연됐고, 부족한 얼음을 만들면서 환자 병동의 수증기도 제거하는 목적으로 패러데이의 발견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차가운 공기가 유입되자 일부 환자의 열이 내렸으며, 더운 여름날 창문을 닫고 생활할 수 있게 되자 모기가 들어오지 못해 말라리아 발병률도 감소했다. 제대로 된 인과관계가 만들어진 건 아니었지만, 신기하게도 멋진 아이디어와 해결책이었다. 그리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드디어 윌리스 캐리어라는 전기공학자가 에어컨을 개발하게 된다.

    에어컨은 인류 최고 발명품 중 하나로 손꼽힌다. 하지만 에어컨이 최초로 개발된 당시에는 원래 사람을 위한 가전제품이 아니었다. 1902년 미국 뉴욕 브루클린의 한 출판사가 가장 고민하던 문제는 고온다습한 날씨였다. 환경적 요인으로 용지가 변형되고 잉크가 쉽게 번져 인쇄물이 깨끗하게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1876년 뉴욕에서 태어난 캐리어는 코넬대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고, 졸업 후 바로 기계설비를 만드는 회사에 입사했다. 언제나 문제를 해결하는 습관이 있던 그는 어느 날 안개가 자욱한 피츠버그 기차 승강장에서 공기 중의 습도를 조절할 수 있는 장치를 떠올렸다. 마침 뉴욕의 출판사가 모두 인쇄하기 쉽지 않은 환경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암모니아를 냉각제로 사용하는 공기 조절 설비를 개발했다. 초기형 에어컨의 등장이었다. 이후 수년 동안 출판사들은 기계를 냉각하는 용도로 에어컨을 사용했고, 이후 직물 제조공장에 있는 방적기의 마찰열을 줄이는 냉각장치까지 개발되면서 1915년 세계 최초의 전기 에어컨 생산업체 캐리어 엔지니어링이 설립됐다.

    물리법칙 거스르는 것처럼 보이는 에어컨

    어느 날 캐리어는 혹시 에어컨을 활용하면 사람이 느끼는 더위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후 그는 기존 에어컨을 놓고 지속적인 연구와 실험을 거쳐 공간에 존재하는 공기 상태를 효율적으로 조절하는 현대식 에어컨을 최초로 발명하게 된다. 1922년 개발된 에어컨은 우선 사람이 모이는 극장과 백화점 등에 설치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호텔이나 병원 등을 거쳐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에어컨이 보급되면서 인류가 살 수 없었던 지역까지 거주지가 확장됐으며, 불볕더위로 누구도 살 수 없을 것으로 여겨지던 장소에 대도시가 들어섰다. 1930년대부터는 자동차와 비행기에도 에어컨이 장착돼 사람들의 쾌적한 이동을 도왔다. 이후 지금까지 쭉 이어진 역사상 최고 발명품 덕분에 비록 1950년 생을 마감하긴 했지만, 1998년 미국 ‘타임’은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100인에 캐리어를 선정하기도 했다.

    과도한 사용은 지구온난화 초래

    에어컨이 점점 발전하면서 인류는 거주지가 확장되고 쾌적하게 이동할 수 있게 됐다. [GettyImages]

    에어컨이 점점 발전하면서 인류는 거주지가 확장되고 쾌적하게 이동할 수 있게 됐다. [GettyImages]

    다시 말하면 에어컨의 원리는 기화열에 의한 냉각이다. 액체는 기체로 변할 때 열을 흡수하고, 이렇게 기화할 때 흡수하는 열을 기화열이라고 한다. 아주 간단한 원리지만 마법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우리가 체험하는 결과가 상식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에어컨은 실외기 속 압축기로 내부 압력을 변화시켜 기체 상태의 냉각제를 높은 온도와 압력 상태로 만든다. 이후 압축기에서 나온 고온고압의 기체는 외부에서 빨려 들어온 공기를 만나서 식어 액체로 응축되고, 이때 방출되는 열 때문에 실외기로 더운 공기가 나간다. 응축된 액체는 이어서 팽창밸브를 지나고, 좁은 곳을 통과하느라 유체의 속도는 빨라지면서 고압 상태였던 압력도 낮아진다. 압력이 낮아진 액체 상태의 냉각제가 다시 증기로 기화하는 순간 주위의 더운 공기로부터 열을 빼앗는 원리 덕분에 온도가 빠르게 낮아진다. 또 차가워진 주변 공기는 선풍기 역할을 하는 팬에 의해 실내에서 우리가 원하는 장소로 보내진다. 여기서 완전히 증발된 기체는 다시 압축기로 돌아가게 되고, 이러한 냉각 시스템의 순환이 멈추지 않고 계속 반복되면서 에어컨을 틀어놓은 공간은 점점 시원해진다.

    당연히 열은 높은 온도에서 낮은 온도로 이동한다. 하지만 에어컨은 효율적인 냉각 시스템을 통해 낮은 온도의 실내에서 높은 온도의 실외로 열을 이동시킨다. 에어컨에선 계속 찬바람이 나오고 실외기에서는 무한한 더운 바람이 나오게 된다. 뜨거운 물에 차가운 손을 넣으면 당연히 물은 점차 식고 손은 따뜻해져야 하는데, 오히려 물은 더 펄펄 끓고 손은 얼어붙는 상황이다. 이게 과연 물리학적으로 말이 되는 걸까.

    열역학 제2법칙은 엔트로피의 법칙이다. 고립된 계(또는 우주)에서는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현상만 일어나고 감소하지 않아야 정상이다. 모든 에너지는 열로 쉽게 변환되며, 에너지 흐름은 방향성이 있다는 것이다. 보통 열에너지는 고온에서 저온으로 이동하는 것과 달리, 에어컨은 저온에서 고온으로 열에너지가 이동한다. 이건 마치 에어컨이 열역학 제2법칙을 위반하는 것 같지만 사실 전기에너지를 소모하면서 열에너지를 이동시키는 상황으로, 여기선 당연히 회수할 수 없는 에너지 손실이 나타날 수 있다. 즉 실내는 시원해지지만 실외는 더 뜨거워지는 것이다. 에어컨을 필요 이상으로 과도하게 사용한다면 내 방은 시원해지지만, 지구는 훨씬 뜨거워질 수 있다.

    물론 에어컨의 장점은 막대하다. 더위와 관련된 질병으로 인한 사망률을 최대 40%까지 감소시키고, 일의 능률도 기하급수적으로 올려 인류 전체에 공헌한 바를 감히 계산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모든 과학기술엔 양면이 존재하고, 우리는 모든 것을 고려하면서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 에어컨이 마법의 발명품이 될 수 있다.

    궤도는… 연세대 천문우주학과 학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천문연구원 우주감시센터와 연세대 우주비행제어연구실에서 근무했다. ‘궤도’라는 예명으로 팟캐스트 ‘과장창’, 유튜브 ‘안될과학’과 ‘투머치사이언스’를 진행 중이며, 저서로는 ‘궤도의 과학 허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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