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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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란드 편입’ 야심 트럼프, ‘팽창적 미국 우선주의’ 드러내

중국·러시아 견제하고 1경 원 가치 천연자원 노려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25-01-20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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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로 독트린, 트럼프의 서반구를 위한 비전’, 미국 보수 성향 일간지 ‘뉴욕포스트’ 1월 8일자 1면 기사 제목이다. 당시 이 신문은 1면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지시봉으로 북미대륙(미국·캐나다·중남미) 지도를 가리키는 합성 사진을 게재하고, 캐나다를 ‘51번째 주’, 그린란드를 ‘우리 영토’, 멕시코만을 ‘아메리카만’, 파나마 운하를 ‘파나-마가(PANA-MAGA) 운하’라고 각각 표기했다. 마가(MAGA)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트럼프 당선인의 구호다.

    미국 보수 성향 일간지 ‘뉴욕포스트’ 1월 8일자 1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자신의 전략을 간파한 이 신문 1면을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 올렸다. [뉴욕포스트 홈페이지]

    미국 보수 성향 일간지 ‘뉴욕포스트’ 1월 8일자 1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자신의 전략을 간파한 이 신문 1면을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 올렸다. [뉴욕포스트 홈페이지]

    ‌뉴욕포스트가 이런 합성 사진과 지도를 게재한 것은 트럼프가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로 편입하겠다고 얘기하는가 하면 파나마 운하 통제권 회복과 덴마크령 그린란드 매입 등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트럼프는 1월 7일 대통령 당선 이후 두 번째로 가진 기자회견에서 “파나마와 그린란드를 확보하기 위해 군사력 사용을 배제하지 않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뉴욕포스트는 트럼프의 이런 의도를 2쪽에 걸친 기사로 상세히 다뤘다.

    ‘돈로 독트린’ 부활하는 팽창주의

    특히 주목할 점은 이 신문이 1면 제목에서 언급한 ‘돈로 독트린(Donroe Doctrine)’이다. 돈로는 도널드(Donald)와 먼로(Monroe)의 합성어로, 먼로는 제5대 미국 대통령인 제임스 먼로(1817~1825년 재임)를 가리킨다. 먼로 독트린은 먼로 전 대통령이 1823년 연두교서에서 밝힌 미국 외교정책 원칙으로, 유럽 등 외부 세력의 아메리카 대륙 간섭을 거부하고 이 지역에 대한 미국 패권을 주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뉴욕포스트가 먼로 독트린에 빗대 돈로 독트린이라는 신조어를 사용한 것은 트럼프가 아메리카 대륙과 인근 국가에 적극 개입하려는 ‘팽창적 미국 우선주의’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트럼프가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우면서 신(新)고립주의 정책을 추진하되 영토 확장이라는 팽창주의를 통해 자국 이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추진하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자신의 전략을 간파한 이 신문 1면을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 계정에 올리기도 했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는 토머스 우드로 윌슨(1913~1921년 재임) 전 대통령이 사용했던 말이다. 윌슨 전 대통령은 미국을 유럽에서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겠다며 ‘고립주의’를 표방했다. 고립주의란 국익을 위해 미국 이외 다른 나라 사정에는 관여하지 않겠다는 외교 노선이다. 반면 트럼프의 ‘신고립주의’는 국익에 도움이 되는 경우로 한정해 압박을 통해 최대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다. 최대 이익에는 경제적 이득은 물론, 영토 확장도 포함돼 있다.

    코펜하겐보다 뉴욕 가까운 전략적 요충지

    그린란드의 지정학적 위치. 북미대륙 북동부의 대서양과 북극해 사이에 있다. [위키피디아]

    그린란드의 지정학적 위치. 북미대륙 북동부의 대서양과 북극해 사이에 있다. [위키피디아]

    돈로 독트린은 트럼프 2기 정부가 앞으로 추진할 새로운 외교·안보 전략으로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 사례로는 트럼프가 과거부터 호시탐탐 야심을 드러냈던 그린란드가 있다. 트럼프는 서반구에서 패권 강화를 추진할 계획인데, 서반구는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를 지나는 본초 자오선을 기준으로 서쪽 반구를 가리킨다. 아메리카대륙을 비롯해 유럽과 아프리카 서쪽 일부, 러시아 동쪽 끝, 오세아니아의 일부 섬나라가 여기에 있다. 그린란드 또한 서반구에 포함된다.

    그린란드는 북미대륙 북동부의 대서양과 북극해 사이에 있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섬이다. 남북 2670㎞, 동서 1200㎞ 길이이며 면적은 217만㎢로 한반도의 10배나 된다. 현재 주민 5만7000명이 살고 있는데, 이들은 대부분 이누이트족이다. 1721년부터 덴마크의 식민 지배를 받아온 그린란드 주민들은 1979년 자치권을 획득해 자치정부를 구성했다. 이후 2009년 주민투표를 실시해 자치정부법을 제정하고 외교·국방을 제외한 모든 정책 결정에 대한 자치권을 덴마크로부터 이양받았다.

    그린란드는 지정학적으로 북극 항로와 가까운 전략 요충지이자 자원의 보고다. 트럼프는 그린란드의 미국 편입이 필요한 이유로 국가 안보를 내세웠다. 실제로 미국과 유럽 사이에 위치한 그린란드 수도 누크는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보다 오히려 뉴욕에 더 가까워 미국 안보에 중요한 곳이다. 특히 그린란드와 아이슬란드, 영국을 잇는 이른바 대서양 요충지(GIUK Gap)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냉전시대 러시아의 대서양 진출을 차단하는 중추 역할을 했다. 또 그린란드에서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까지는 3600㎞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중거리탄도미사일과 전략폭격기 운용에 최적지다.

    미국은 1951년 덴마크와 군사방위조약을 맺고 이곳에 공군기지를 만들어 운영해오다 현재는 피투픽이라는 우주기지로 확대 개편했다. 이 기지에는 고성능 레이더를 비롯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조기 경보 체계 등이 배치됐다. 게다가 기후변화로 북극해 빙하가 빠르게 녹으면서 이곳을 지나는 북극 항로가 활성화되고 있다. 로버트 오브라이언 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 보좌관은 “그린란드는 북극과 북미를 잇는 고속도로”라며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로 북극해가 해빙되면 파나마 운하 의존을 크게 줄일 수 있는 교통 요충지”라고 지적했다. 북극항로는 북극해를 통과해 러시아 북부 태평양과 대서양을 연결하는 북동항로를 지칭한다. 러시아와 중국은 2010년대부터 북극항로 개설 및 북극 지역의 군사적 협력 강화에 나서면서 쇄빙선 함대 훈련을 매년 공동으로 실시하고 있다.

    특히 그린란드의 80%를 덮고 있던 빙하가 녹으면서 지하에 매장된 각종 천연자원을 개발할 수 있게 됐다. 미국지리학협회(AGS) 조사에 따르면 그린란드는 석유와 천연가스, 철, 구리, 우라늄, 니켈, 텅스텐, 티타늄, 코발트, 금, 백금 등 각종 지하자원이 풍부하다. 네오디뮴과 디스프로슘 등 전기차 제조에 필수적인 희토류 50종 중 43종이 매장돼 있으며, 가치는 10조 달러(1경4500조 원)가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중국의 희토류 매장량은 4400만t으로 세계 희토류 공급량의 9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미국이 그린란드의 희토류를 확보할 경우 세계 희토류 판도를 바꿀 수 있다. 클라우스 도즈 영국 런던대 지정학 교수는 “트럼프 정부는 희토류 확보와 안보 강화를 통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그린란드를 매입하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장남 그린란드 보낸 트럼프

    1월 7일(현지 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장남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오른쪽)가 그린란드 누크에 도착했다. [AP 뉴시스]

    1월 7일(현지 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장남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오른쪽)가 그린란드 누크에 도착했다. [AP 뉴시스]

    트럼프는 장남인 트럼프 주니어를 그린란드에 보내는 등 노골적으로 야심을 드러내고 있다. 트럼프 주니어는 1월 7일(현지 시간) 부친의 개인 전용기를 타고 누트에 도착해 주민들에게 “아버지가 그린란드의 모두에게 인사를 전해달라고 했다”고 인사하기도 했다. 주민 중 일부는 마가라는 글이 새겨진 모자를 쓰고 트럼프 주니어를 환영했다. 하지만 덴마크 정부는 트럼프의 그린란드 매입 의사에 거부 뜻을 분명히 했다.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는 “그린란드는 그린란드 사람들의 것”이라며 “그린란드는 매매 대상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무테 에게데 그린란드 자치정부 총리도 “트럼프 정부와 방위·자원 분야에서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도 “그린란드 영토 문제는 그린란드의 일”이라고 밝혔다. 주민도 대부분 독립 국가 건설을 희망하고 있다. 그린란드 의회의 쿠노 펜커 의원은 “우리는 그린란드라는 주권 국가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면서 독립을 강조했다. 그린란드는 자치정부법에 따라 주민투표를 통해 독립을 선언할 수 있다.



    1월 9일(현지 시간)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가운데)가 코펜하겐 총리실에서 그린란드와 관련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P 뉴시스]

    1월 9일(현지 시간)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가운데)가 코펜하겐 총리실에서 그린란드와 관련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P 뉴시스]

    ‌그린란드 주민들의 이런 여론을 감안할 때 트럼프 의도대로 그린란드가 미국에 편입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미국 하원 공화당 의원들은 트럼프 정부가 그린란드 매입 협상에 나설 수 있도록 승인하는 내용의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반면 국제사회에선 트럼프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국경 불가침 원칙은 모든 국가에 동일하게 적용된다”면서 “이는 국제법의 기본 원칙이자 우리가 서구적 가치라고 부르는 것의 핵심 구성 요소”라고 지적했다.

    지역 개발권 얻는 협정 맺을 가능성도

    국제 문제 전문가들은 그린란드가 독립할 경우 미국이 팔라우 같은 남태평양 섬나라처럼 그린란드와 ‘자유연합협정(Compact of Free Association)’을 맺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미국이 그린란드 재정 지원과 안보를 책임지고 자원 개발권을 갖는 방식이다. 트럼프 정부가 그린란드를 강제 편입할 경우 국제사회로부터 ‘21세기판 신식민주의’라는 비판을 받을 것이 분명하고 자칫하면 중국과 러시아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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