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郞).’
외무장관을 지내면서 1980년대 일본 외교를 좌지우지했고, 자민당 간사장으로 총리 등극을 눈앞에 두었다가 1991년 세상을 등진 아베 장관의 아버지다. 이 한 표는 ‘가문의 후광’을 빼놓고는 아베 장관의 출세를 설명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단적인 상징물이다.
아베 장관은 9월26일 일본 총리에 취임하면 역대 최연소 총리라는 기록과 함께 일본 역사상 첫 조손(祖孫) 총리라는 기록을 보태게 된다. 그의 외할아버지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도조 히데키(東條英樹) 내각에서 상공장관과 군수차관을 지내 A급 전범 혐의로 기소까지 됐던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총리다. 아베 장관은 외할아버지에게 강경보수적인 정책 유전자를, 아버지에게 온화한 성격을 물려받았다는 것이 세 남자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아베 장관 어머니의 평가다.
아베 장관이 최대 정권공약으로 내세운 평화헌법과 교육기본법의 개정은 기시 전 총리가 못다 이룬 숙원 사업이다. 패전 후 일본이 걸어온 평화 노선의 주춧돌을 뽑아내려는 그의 시도는 군국주의 전쟁의 피해자인 한국 및 중국과 마찰을 빚을 소지가 클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북한과의 관계는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오늘의 아베 장관을 만든 두 기둥이 ‘가문의 후광’과 ‘대북 강경론자 아베’라는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한-일 관계 역시 야스쿠니(靖國)신사에 적극 참배하고 역사교과서 왜곡을 지원해온 그의 전력을 감안한다면 악화될 소지가 크다.
하지만 극적인 반전 가능성도 존재한다. 일반 국민은 물론, 자민당 안에서도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로 최악의 상황에 빠진 대한(對韓) 및 대중(對中)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기 때문이다. 모든 일본 국민이 다 알 정도로 열렬한 한류 팬인 부인 아키에(昭惠·44) 여사의 영향으로 아베 장관도 정서적으로는 한국을 좋아한다는 점이 한-일 관계 개선의 작은 불씨가 될 가능성이 있다.
고이즈미 총리는 캐러멜로 유명한 모리나가제과 오너 집안의 딸인 아키에 여사에게 “총리 자리가 캐러멜처럼 단 게 아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아베 장관이 고이즈미 총리의 유일한 아킬레스건이던 대한 및 대중 관계 개선에 성공한다면 캐러멜보다 달콤한 권력의 맛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