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2월 열린우리당 소속 의원들이 본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불씨는 민주당이 당겼다. 7·26 재보선에서 조순형 의원의 당선이 도화선이 되었다. 열성 친노세력을 제외한 범여권과 민주당, 고건 전 총리 측과 중도세력까지를 포괄하는 모양새다. 이른바 ‘범민주 세력의 결집’으로 제3지대에 공간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들은 과연 정치세력화할 수 있을까?
생존을 위한 꿈틀거림이 이어질 것이다.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실존의 정치세력 때문이다. 민주당이 그렇고, 고 전 총리가 그렇고, 국민중심당과 이인제 의원 등을 포함한 여타 이탈 세력이 그렇다. 특히 차기 대통령 취임 후 2개월 만인 2008년 4월 총선을 치러야 하는 ‘수도권과 호남의 열린우리당’ 의원들에겐 더욱 절박한 문제다. 만일 열린우리당이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다면 수도권은 한나라당으로부터, 호남권은 민주당으로부터 공격받아 다음 총선에서 살아남기가 만만치 않다. 이 같은 정치세력이 모여 ‘비노반한’을 꿈꿔볼 것이다.
그러나 ‘비노반한’ 세력이 결집한다고 해도 그 세력이나 정치적 영향력은 생각보다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몇 가지 한계 상황이 그들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노무현 대통령이 정계개편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이 시나리오가 성공하려면 노 대통령을 반대하는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대거 탈당해 신당에 참여해야 한다. 그러나 그만한 용기를 낼 의원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결집해도 영향력 크지 않을 것 ‘전망’
현재 열린우리당은 의원 141명 중 탄핵 역풍에 힘입어 손쉽게 당선된 인사들이 100여 명에 이른다. 그들은 역풍 덕분에 손쉽게 배지를 달았다는 지적에 반론을 제기하기 힘들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많은 인사들은 노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하자 앞장서서 노를 비난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오죽하면 이부영 전 당의장에게 과격 상업주의라는 비난까지 들었을까.
그렇다고 탈당을 감행하기도 어렵다. 정치적 세몰이를 하기엔 역량도 부족하고 바깥세상도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유력 대권 주자가 없는 것도 문제다. ‘비노반한’의 배에 승선할 주자라면 기껏해야 고 전 총리 정도다. 그러나 그 역시 한나라당 후보를 이기기엔 역부족이다.
특히 한나라당-친노-비노반한으로 3파전을 치를 경우 상황은 더욱 치명적이다. 필패(必敗) 구도다. 결국 ‘비노반한’은 동력이 떨어지고 구심점이 없다는 것이 이 시나리오의 치명적 결함이다.
비노반한은 일시적으로 모인다고 해도 오월동주로서의 한계를 안고 갈 수밖에 없다. 각자 계산이 다르다는 말이다. 18대 총선에서 ‘배지 달기’에 유리한 쪽으로 붙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차기 대통령의 위상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다음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 이후 가장 강력한 대통령이 될 것이다. 재임 기간에 두 번의 국회의원 공천권을 행사하는 데다, 공천 시기도 절묘하다.하려고만 한다면 개헌도 시도할 수 있다.
이는 역으로 정권을 잡지 못한 쪽은 생존의 기로에 선다는 뜻이다. 이 같은 ‘절박한 선택’ 앞에서 배지를 달려고 하는 사람들은 섣불리 움직일 수가 없다. 그래서 잠재적 비노반한 세력들은 정교한 계산뿐 아니라 시간이 더 필요하다. 확실한 세를 모으지 못하면 영영 세를 잃게 될 우려가 높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