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현 씨는 18년째 자연과의 공존을 모색하고 있다.
세상 사람들 눈으로 보기엔 없는 것투성이다. 하지만 그에겐 자신이 풍부하게 누리는 온갖 좋은 것들을 알아보는 밝은 눈이 있다. 결핍과 풍요는 결국 우리네 마음이 가리키는 방향이 어디인가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진다는 것을 그는 산에서 혼자 농사지으며 터득했다.
최성현(51) 씨가 충북 제천 천등산 박달재 근처 산으로 들어온 지 올해로 18년째. 동국대 철학과에서 동양철학을 전공하고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조교로 있던 어느 날, 홀연히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이곳으로 왔다. 인생을 갑자기 바꿔버린 결정적 계기는 한 권의 책과의 만남이었다.
“자연농법의 창시자인 후쿠오카 마사노부의 ‘짚 한 오라기의 혁명’이라는 책을 읽고 오래 감겨져 있던 눈이 번쩍 뜨이는 듯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가 말하는 자연농법이야말로 바람직한 삶이며, 생활이 곧 수행이고 큰 배움의 길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인생 바꾼 한 권의 책 … 자연농법 실천
제천시 백운면에 있는 경은사라는 절 뒷산에 가면 울창한 소나무 숲길이 끝나는 곳에 두 노인 내외가 사는 작은 집이 있는데 그곳이 명당자리라고 누군가 귀띔해줬다. 가보니 마침 노부부는 오랜 산 생활을 접고 마을로 내려가고 싶어하던 참이었다. 찾아간 그날로 계약을 하고, 다음 날 짐을 꾸려 이사 온 것이 방 두 칸에 부엌 한 칸, 작은 툇마루가 딸린 이 집이다.
최 씨는 땅을 갈지 않고, 비료와 농약을 쓰지 않으며, 김매기를 하지 않는다는 네 가지 원칙을 지키는 자연농법 농사를 시작했다. 처음 5년간은 온갖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자연과의 소통은 천천히, 새로운 언어를 배우듯 힘들게 익혀지는 것이었다. 자연농법의 선구자들이 이미 실천한 길이므로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긴긴 실험의 날들을 버티다 보니 호박, 상추, 오이 같은 ‘쉬운 작물’부터 하나 둘씩 자리가 잡혔다.
“이 생활에 대해 확신을 갖게 되고,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자연 속에서 하나가 되는 체험이 주는 놀라운 행복을 알게 된 건 한 10년 지나서였습니다. 하하, 제가 좀 더딘 사람이라서요.”
손바닥만한 텃밭이라도 가꿔본 사람이라면 농사가 다름 아닌 잡초와의 전쟁이라는 걸 알 것이다. 최 씨를 비롯한 자연농법 농부들은 “잡초는 자연의 일부이며 인간의 힘으로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더불어 사는 공존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1년에 한 가마 조금 넘는 수확을 올리는 그의 논에는 저절로 자란 돌미나리밭이 있고, 배추·고추·가지를 가꾸는 밭에는 날로 무치거나 고추장에 비벼 바로 밥상에 반찬으로 올리는 야생초들이 수북이 자라 있다.
벌레도 그에게는 사이좋게 살아가는 친구다. 그는 아예 배추흰나비 애벌레를 위한 배추밭을 따로 만들었다. 어느 해부터인가 산토끼도 자주 와서 배춧잎을 뭉텅뭉텅 잘라먹고 간다. 그는 “배추흰나비 애벌레는 덩치가 워낙 작아서, 산토끼는 배추 말고도 먹을 것이 많아서 괜찮다”고 말한다. 애벌레와 산토끼가 먹다 말아서 입자국이 남아 있는 배춧잎을 물에 씻고 소금에 절여 김장을 담그면 된다는 것이다.
“자연농법에서 많이 인용되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콩 세 알을 심을 때 한 알은 새를 위해, 한 알은 벌레를 위해, 나머지 한 알은 사람을 위해 심는다고요. 농약이나 총으로 벌레와 동물을 막지 않고 나둬도 사람 몫으로 3분의 1은 돌아옵니다.” 최 씨는 세 알 중 두 알은 흔쾌히 나눠주고 한 알에 만족하라고 권한다. 벌레만 죽이고 동물만 해치고 사람에게는 아무런 해를 입히지 않는 농업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잡초를 뿌리뽑겠다고, 벌레를 소탕하겠다고, 동물을 멀리 쫓겠다고 인간들이 고안해낸 모든 폭력은 결국 고스란히 인간에게 되돌아오는 게 자연의 섭리라고 그는 말한다.
요즘 최 씨의 하루는 곧 다가올 긴 겨울을 준비하느라, 많이 짧아진 하루 해가 빠듯하다. 곧 밤을 딸 철이므로 밤나무 아래의 풀을 베고, 고추를 따서 햇볕에 말리고, 내년에 뿌릴 씨앗을 받아둬야 한다. 가을엔 틈나는 대로 겨울용 푸성귀를 건조시켜 보관해둔다. 9월과 10월에 열리는 호박, 가지 중 먹고 남은 것을 썰어 말리는데, ‘습기는 없으나 눌러도 잘 부서지지 않는 상태’로 수분을 적당히 없애야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다. 산이 깊어 살아 있는 나무를 베지 않고 죽은 나무만 잘라와도 땔감은 충분하다.
나무를 구해 땔감을 손질할 때 그는 기계톱이 아닌 손톱으로 나무를 자르고, 지게로 져서 집 근처로 날라다가 틈틈이 도끼질을 한다. 기계를 쓰면 속도가 훨씬 빠르겠지만 그는 새 소리,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일할 수 있는 수동 도구를 택한다. 일터에서 집까지의 좁고 비탈진 산길을 지게 지고 걷자면 아무 생각 없이 오로지 걷는 데만 집중해야 한다. 명상이 따로 없다. 온몸에 땀이 흐르고 땀과 함께 복잡한 머릿속 찌꺼기가 빠져나가 마음도 몸도 개운하다.
마음과 몸을 상쾌하게 씻어주는 육체노동이 있는 삶. 한 포기 풀에서 자연의 섭리를 깨닫고, 벌레 한 마리에게서 우주의 진리를 배우는 삶. 시골로 올 때 꿈꾸었던 ‘농사가 곧 공부로 이어지는 나날, 죽는 날까지 딱딱해지지 않도록 풀 한 포기, 벌레 한 마리에게까지 늘 고개 숙이고 사는 삶’을 이루어서 그는 행복하다고 했다.
인간이 고안한 폭력 결국 인간에게 돌아와
그의 소박한 밥상.
풀과 벌레가 평화롭고 아름답게 함께 사는 논과 밭에 그는 ‘바보 이반 농장’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톨스토이의 중편소설 ‘바보 이반’에서 이반의 벙어리 여동생은 손바닥에 굳은살이 박힌 사람에게만 새로 지은 밥을 주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겐 먹다 남은 밥을 준다. 거친 손으로 꼭 필요한 일을 부지런히 하는 이들이 부끄러워하지 않고 행복하게 사는 나라를 꿈꾸는 마음에서다. 사람이 곧 한울(神 혹은 天)임도 톨스토이에게서 배웠다고 했다.
“만물 속에서, 살아 있는 것은 물론 바위나 공기, 바람이나 물 속에서 신을, 한울님을 뵙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산다”는 최 씨는 이날 취재 일행으로 ‘변장’하고 들른 한울님들을 멀리까지 전송해줬다. 포장도로까지는 온몸이 촉촉하게 땀에 젖을 만큼 걸어야 하는 이 길을 그는 오래오래 차가 아니라 발로 걸어서 다니길 바란다고 했다.
“맨몸이라야 쓸데없는 것을 덜 갖고 들어오기 때문이죠. 나갈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집에 두고 오지 못한 마음을 그 길에 두고 갈 수 있습니다.”
다 버리고 버려서 얻게 되는 더 큰 세계를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만이 해줄 수 있는 얘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