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불법 주식 리딩방이 시세조종, 사기 등 금융범죄 온상이 되면서 검찰과 금융감독원 등 관계 당국이 대대적인 단속에 나섰다. [GETTYIMAGES]
온라인 ‘주식 리딩(leading)방’을 취재하기 위해 투자자로 가장한 기자에게 한 유사투자자문업체 관계자가 한 말이다. 일대일 카카오톡(카톡) 대화방에서 기자에게 “주식시장이 개장하면 주가가 급등할 것”이라며 특정 종목 투자를 추천한 이 관계자는 직접 전화를 걸어 수백만 원을 내고 유료 리딩방 회원으로 가입하라고 권했다. 실제로 그가 추천한 종목에 투자하거나 유료회원이 되지는 않았지만, 최근 금융당국이 경고음을 낸 불법 리딩방 운영자들의 수법과 유사한 영업 방식이었다.
“초전도체·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테마株 추천”
유사투자자문업은 불특정 다수에게 간행물, 방송 등을 통해 투자에 관해 조언하고 일정 대가를 받는 사업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비대면 양방향 소통이 쉬워진 데다, 주식투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2019년 말 861개였던 유사투자자문업체 수는 올해 상반기 2100개를 넘어섰다. 유사투자자문업은 정식 투자자문업과 달리 신고만 하면 이렇다 할 전문성이 없어도 쉽게 개업할 수 있다. 관련 업체가 난립하면서 법적으로 금지된 투자자와 일대일 개별상담 등 각종 사기 및 시장 교란 행위의 온상이 되고 있다. 최근 테마주를 중심으로 한 ‘묻지 마’ 식 투자 광풍에 주식 리딩방을 매개로 한 ‘세력’이 관여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접수된 불법 주식 리딩 피해 민원은 2018년 905건에서 2021년 3442건으로 급증했고 지난해에는 3070건에 달했다. 불법 리딩방 세력의 시세조종에 이용당해 투자금을 날리거나, 회원 가입비 반환을 거절당하는 등 피해 사례도 다양하다.유사투자자문업체 관계자가 일대일 카카오톡 대화방을 통해 보낸 ‘추천주’(왼쪽)와 투자 관련 문답. [김우정 기자]
이런 유튜브 채널에서 운영자가 이른바 ‘종목 분석’ 외에 강조하는 부분은 자신이 SNS ‘소통방’ ‘정보방’ ‘리딩방’에서 미리 투자를 권한 종목의 주가가 올랐다는 것이다. “요즘 투자자들 상대로 사기 치는 사람이 너무 많아 내가 유튜브에서 안내할 수 있는 정보는 제한적”이라며 “큰 세력이 들어올 것으로 예상되는데, 우리도 거기에 대비하자”는 식이다. 그러면서 “내가 찍어주는 시점에 주식을 사고팔면서 편하게 수익만 누리라”며 리딩방 입장을 유도한다. 동영상 화면에 나온 휴대전화번호로 특정 문구나 숫자를 적어 보내면 리딩방에 들어갈 수 있다는 설명도 한다. 기자가 유튜브 채널 등에 게시된 각 휴대전화번호로 이들이 요구하는 문구를 보내자 몇 시간 후 다른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 팀장’이라는 그는 자신에게 휴대전화번호 뒤 네 자리를 알려주면 일대일 카카오톡 대화방을 열겠다고 했다. 주식투자 방법과 최근 주목할 테마주를 묻자 “지금 같은 시장에서 개인투자자는 돈을 잃기 십상이니 전문가 조언이 필요하다”며 “초전도체나 맥신과 관련된 종목,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와 관련된 테마주를 주목하라”고 즉석에서 답하기도 했다. 다른 유사투자자문업체들도 유튜브 채널을 통한 홍보, 일대일 카톡방 개설, 종목 추천 등 방식과 ‘레퍼토리’가 대동소이했다.
150만~350만 원 조건 걸고 유료 리딩방 가입 권유
이튿날 오전 9시 주식시장이 열리기 약 5분 전 ‘팀장’이라는 이들은 SNS로 추천 종목 3개를 각각 보내왔다. 최근 초전도체 테마주로 묶인 기업,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출로 수혜주로 언급되는 업체 등이었다. 실제로 이들 업체 주가는 이날 장 초반 급등했다. 20~30분이 지나자 해당 종목 주가가 뛴 원인을 2~3줄로 짧게 요약한 메시지와 함께 다른 회원의 ‘수익 인증’이라면서 카톡 대화방 캡처 이미지를 보내왔다. 유사투자자문업체 관계자들이 자주 쓰는 표현은 “실력으로 보여주겠다” “수익률로 입증하겠다” 등이다. 자신들이 급등을 예측했던 종목 주가가 장이 열린 후 실제로 급등한 것을 확인하라는 뜻이다. 그러면서 “유료회원이 되면 급등할 주식을 미리 사둘 수 있다”며 은근히 ‘파트너십 가입’을 권유했다. 유료회원 가입비는 3개월 150만 원, 6개월 250만 원, 12개월 350만 원이었다.일대일 카톡 리딩방 운영자에게 “불법 리딩방은 아니냐”고 묻자 그는 “우리는 금융감독원, 공정거래위원회에 등록된 합법적인 투자자문사”라면서 홈페이지 링크를 보내왔다. 하지만 해당 홈페이지에 기재된 사업자등록번호를 금감원 금융소비자 정보포털에 조회한 결과 이 업체는 정식 투자자문업체가 아닌, 유사투자자문업체였다. 또 다른 리딩방 운영자가 ‘파트너 회원’과 나눈 카톡 대화 내용이라며 보내온 이미지 파일에는 일대일 투자 자문으로 보이는 정황이 여럿 보였다. 가령 “주식을 들고 있으면 되냐” “주식 들고 있을 테니까 신호를 달라”는 회원의 말에 유사투자자문업체 직원이 일일이 답변하는 양상이었다. 여기서 ‘신호’란 이른바 ‘타점’(주식 매수 타이밍)을 알려주는 것으로, 구체적인 투자자문 행위에 해당할 소지가 크다. 자본시장법에 따라 금지되는 미등록 투자자문 행위로 보였다.
검경·금융위·금감원, 불법 리딩방과 ‘전면전’
실제로 리딩방을 매개로 한 유사투자자문업체 활동이 사기와 투자자 피해로 이어지기도 한다. 금감원 관계자는 8월 23일 기자와 통화에서 “취재차 접촉한 유사투자자문업체들의 활동에 불법 소지가 있느냐”는 질문에 “일대일 카톡방에서 투자와 관련해 구체적인 문답을 주고받는 것은 자본시장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답했다. 이 관계자는 “최근 금감원 직원들이 주식 리딩방에 가입해 실태를 파악하는 ‘암행’ 단속을 실시하고 있다”며 “불공정거래로 의심되는 사례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일부 유사투자자문업체가 유튜브 채널이나 공개된 SNS를 통해 언론 보도를 짜깁기한 내용을 내보내고, 유료 리딩방에서 허위 정보를 흘리거나 시세조종을 유도하는 경우가 적잖다”면서 “불법 리딩방에서 종목을 추천받아 실제로 주가를 매수하는 경우 자칫 불법 행위에 일조할 수도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불법 리딩방을 통한 불공정거래의 가장 대표적 유형은 시세조종이다. 종목 추천을 명목으로 리딩방 회원들을 끌어모아 ‘세력’을 이룬 후 주가를 비정상적으로 부양하는 것이다. 검찰 수사로 주식 리딩을 앞세운 사기 사건의 전모가 드러난 사례도 있다. 서울남부지검은 주식 리딩을 악용한 부정거래 사건을 집중 수사해 6월 22일 ‘슈퍼개미’로 불리던 한 유사투자자문업체 및 유튜브 채널 운영자를 불구속기소했다. 자신이 운영하던 주식 리딩방에서 회원들에게 특정 종목 투자를 권유한 후 주가가 오르자 사전에 사둔 해당 주식을 팔아 수익을 올리는 ‘선행매매’를 한 것이다. 이처럼 대다수 투자자를 주식 ‘물량받이’로 악용한 것은 5월 무더기 주가 폭락을 초래한 라덕연 일당의 수법과 유사하다. 이외에 유사투자자문업자가 특정 종목에 대한 허위사실과 미공개 정보를 유포하거나, 유명 인사를 사칭해 회원을 끌어들이는 등 불법 리딩 수법도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다.
리딩방이 투자 사기의 온상이 되자 관계 당국도 칼을 뽑아 들었다. 이복현 금감원장과 우종수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은 8월 16일 불법 리딩방 수사 공조를 뼈대로 한 ‘자본시장 불법행위 대응·협력 강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날 이 원장은 “금감원은 6월 리딩방 단속반을 설치해 암행 점검을 확대 실시했다”면서 “기회가 되면 3개 기관(금감원, 검찰, 경찰)이 ‘플러스알파’로 (조사하는) 장이 진행될 것”이라며 엄단 의지를 밝혔다. 이튿날인 17일에는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이 기자간담회를 열고 “불공정거래, 시장 교란, 리딩방, 허위 풍문 등을 특별 단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검찰과 경찰은 물론 금융위, 금감원까지 불법 리딩방 단속에 대대적으로 나선 것이다.
이에 대해 구태언 법무법인 린 변호사는 “주식 리딩방 수가 늘고 규모가 커지면서 각종 사기나 불공정거래 행위에 악용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며 “검찰과 금융당국의 수사 및 단속은 개별 리딩방 운영자를 적발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상호 연계된 세력이 조직적으로 시장 질서를 교란하는지 여부를 규명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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