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안국동의 사비나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는 안창홍의 말처럼 얼굴이 얼이 드나드는 굴이라면, 그 출입구는 바로 눈이 아닐까 싶다. 안창홍의 작품은 모두 얼굴들이다. 얼굴들의 눈은 편안한 휴식을 취하는 것처럼, 혹은 죽은 것처럼 감겨 있다. 어떤 얼굴은 고장 난 사이보그처럼 눈이 인형의 동그란 안구로 채워지고, 얼굴과 목 사이사이 전선이 삐져나와 있다. 또 어떤 얼굴은 갈라지고, 찢기고, 으스러지고, 짓이겨져 있다. 그 형상은 기묘하다. 나를 비추던 거울이 내 앞에서 깨지면서 나의 얼굴이 산산조각 나는 그 순간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누군가의 얼굴이 나의 얼굴에 중첩된 것 같기도 하다. 마치 다른 누군가의 얼이 나의 얼에 들어온 것처럼.
안창홍의 얼굴들 사이로 나비가 날아간다. 이승과 저승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을 것만 같은 나비는 과거와 현재를, 그리고 죽음과 삶 사이를 떠다니는 듯하다. 그 나비들은 마치 영매(靈媒)처럼, 얼 자체인 것처럼 이 얼굴과 저 얼굴 사이를, 죽은 사람과 산 사람 사이를, 기억과 현재를 오고 간다. 빛바랜 사진 속 얼굴들은 수많은 얼들이, 수많은 나비들이 드나드는 통로가 되어 있다.
우리는 죽음과 기억을 암시하는 안창홍의 얼굴들을 보면서 개인과 사회의 비극적 트라우마를 떠올리기도 하고, 알 수 없는 멜랑콜리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 얼굴들은 우리에게 무한히 깊은 명상과 휴식을 제안한다. 무념무상의 상태에 있는 듯, 얼굴들은 육체로부터 벗어난 유령(얼)처럼 공간에 떠 있다. 그 얼굴들은 우리가 트라우마와 멜랑콜리라는 감당하기 힘든 죽음의 늪을 통과함으로써 나비와 같은 새로운 존재로 거듭난다는 것을 알려준다. 6월7일까지, 사비나미술관, 02-736-43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