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슨홍 ‘톱의자(Saw Chair)’
디자인 이론가 빅터 파파넥이 1971년 발표한 저서 ‘현실세계를 위한 디자인(Design For Real World)’은 1983년 ‘인간을 위한 디자인’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돼 88서울올림픽 등으로 양적 성장만을 이룬 한국 디자인업계에 경종을 울렸던 적이 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잭슨홍은 동명의 전시를 통해 제도권 안에서 스스로 팽창하고 있는 디자인을 다시 공격하려 한다.
잭슨홍이라는 작가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을 뿐만 아니라, 졸업 후에도 국내외 대기업의 디자인을 맡아왔던 사람이다. 그러나 디자인의 길을 걸으면서 험난했던 그의 개인사 때문인지, 아니면 천성이 원래 삐딱하기 때문인지 그는 언젠가부터 이상한 디자인을 하기 시작했다. 그의 본명은 홍승표다. 디자이너 홍승표는 편리함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자동차나 가전제품을 디자인하지만, 작가 잭슨홍은 사람이 다가서면 칼날이 돋아나는 의자나 표정을 이모티콘으로 감추는 기계가면 등 불편한 상품을 만든다.
칼날 돋은 의자 등 불편한 상품들 선보여
잭슨홍 ‘unset 2’(위)와 잭슨홍 ‘의자도’.
잭슨홍은 늘 이렇게 ‘사용자’를 감안한다. 그러나 2005년 김진혜갤러리에서 첫 번째 개인전 당시 주변인들에게 시연을 맡겨 일종의 퍼포먼스를 벌였던 것과 달리, 잭슨홍은 이번에 열리는 네 번째 개인전에서 과거와는 상이한 접근을 하고 있다. ‘유사시 유리를 깨고 사용하시오(Break Glass in Case of Emergency)’라는 지시문 아래 봉인한 일련의 작업들에서 말이다. 야구방망이, 도끼, 숟가락 등 일상적 물건을 변용해 만든 도구들을 한번 깨뜨리면 두 번 다시 복원할 수 없는 케이스에 감금시켜 넣음으로써, 잭슨홍은 ‘유사시’라는 단서를 붙인 채 일상적 물건들을 일상의 사용가치에서 떨어뜨려 놓았다.
너무나도 안정돼 고루하기까지 한 갤러리라는 공간에서 ‘유사시’란 도대체 언제를 말하는 것일까? ‘유사시…’ 시리즈 중 하나인 ‘상식(Common Sense)’은 ‘COMMON SENSE’란 문자가 조각된 야구방망이를 케이스에 넣어놓았는데, 과연 그 케이스 안에서 야구방망이를 꺼내 누군가를 흠씬 두들겨 패야 하는 상황이 생길까? 그럴 리 만무하다. 다시 말해 쓸모없는 물건이라는 것이다. 케이스 안에 있는 물품들은 그동안 잭슨홍이 만든 ‘괴물’들에 비해 상식적인 모습을 하고 있지만, 실은 더욱 비상식적이다. 얼마 전 서울시에 발표한 ‘서울을 상징하는 600색’과 비등할 만큼 쓸모없다. 전시는 7월5일까지 갤러리2에서 열린다.(문의 02-3448-2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