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
“이 카페를 통해 미국 대사관과 한국민 사이에서 이뤄지는 활발한 대화에 참여할 수 있게 돼 기쁘다. 한국 문화에 대해 가능한 한 많이 배웠으면 한다.”
그런 그가 요즘 한국 누리꾼에게 뭇매를 맞고 있다. 한국의 문화를 덜 이해한 탓일까? 6월3일 그는 한국민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재협상 필요성을 못 느낀다. 미국산 쇠고기에 관한 과학적 사실을 한국인들이 좀더 배우기를 바란다.”
그의 발언 가운데 ‘좀더 배우기를’이란 표현이 누리꾼들을 자극했다. 그를 지탄하는 댓글이 웹을 ‘도배’했다. 촛불집회의 배후격인 ‘웹2.0’은 온·오프라인으로 ‘비난’을 퍼날랐다.
그의 임기는 이르면 9월 말까지다. 만 3년을 채우고 한국을 떠난다. 외교가에서는 그를 미국 부시 행정부의 신임을 받는 인물로 평가하고 있다. 그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예일대 동문이기도 하다.
그는 1977년 외교관에 첫발을 디뎌 미·소 전략무기감축협상(START) 때 미 대표단의 자문관 등으로 일한 뒤 옛 소련이 해체되기 직전인 1980년대 말 국무부 소련과장으로 재직했다. 이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대통령 특별보좌관 겸 유럽담당 선임국장,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대사와 러시아 대사 등을 지내면서 미 국무부 내에 유럽과 러시아 전문가로 자리잡았다. 반면 아시아 지역에 근무한 경험은 전무하다.
그런 그가 주한 미국대사로 임명됐을 때 북한의 정권 변화를 염두에 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그는 대북 강경파에 속한다. 2005년 북한 인권문제를 지목하면서 북한을 ‘범죄정권’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그래서 대북 온건 노선을 편 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차관보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
주한 미국대사로 부임한 이후 그는 줄곧 굵직한 사안을 다뤄왔다. 북한 핵실험과 2·13, 10·3 합의 등을 도출한 6자 회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대표적이다. 이 과정에서 그는 미 백악관은 물론 미 정부의 강경한 입장을 대변했다. 그런 그가 한미 쇠고기 협상과 같은 민감한 문제에 대해 사견을 표출했을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그의 발언이 주목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