캥거루 사살은 갖가지 화제와 찬반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캥거루 사살을 슬퍼하는 동물애호가들, 캥거루 사체들과 캥거루 사살에 나선 사냥꾼(왼쪽부터).
캥거루는 호주를 상징하는 동물이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 출전한 호주 축구팀의 별명이 축구와 캥거루의 합성어인 ‘사커루’일 정도로 국민적 사랑을 받고 있는 캥거루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안락사를 당하고 있는 것일까?
“호주는 야생동물을 사랑하는 나라지만, 캥거루는 그 수가 너무 많아 일부를 사살해야 한다. 캥거루가 숲 속 풀을 모두 먹어치워 다른 야생동물의 생존마저 위협받고 있다.”
언뜻 호주 국립공원 관리담당자의 말처럼 들리지만, 이 말을 한 사람은 피터 가렛 환경장관이다. 가렛 장관은 한때 세계적인 인기를 모았던 록밴드 ‘미드나잇오일’의 리드싱어였다.
록밴드 출신 환경장관 “야생동물 생존 위협”
그는 가수활동과 함께 환경운동가로도 이름 높았던 인물로 1년 전 “다른 차원의 환경운동을 펼치기 위해 정치인이 되기로 했다”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그는 대중적 인기를 바탕으로 2007년 11월 총선에 당선돼 환경장관에 오르는 출세가도를 걷다가 캥거루 사살이라는 난제에 부딪힌 것이다.
2005년 호주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호주에 서식하고 있는 캥거루 수는 5700만 마리에 이른다. 특히 최근 10년 동안 캥거루의 수가 급증했는데, 캥거루의 불임성 질병인 크레미디아 병균이 항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코알라 역시 사정이 비슷해서 수년 전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2만 마리에 이르는 코알라를 총으로 사살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여기에 더해 지난 10년간 이어진 가뭄은 캥거루의 먹이를 부족하게 한 대신 생식욕구를 강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특히 캔버라 일대는 1km2당 450~500마리의 캥거루가 서식하고 있어 호주 전역에서 캥거루 밀집도가 가장 높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캔버라 지역의 캥거루 사살 논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동안 다양한 캥거루 대책 아이디어들이 나왔다. △총으로 사살하는 방법 △수컷 캥거루를 정관수술하는 방법 △암컷 캥거루에게 피임약을 먹이는 방법 △캥거루의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 일단 기절시킨 다음 안락사를 시행하는 법 등등.
그러나 캔버라행정자치구는 이 같은 아이디어를 모두 실천에 옮겼지만 별다른 효과를 얻지 못했다. 2006년에는 행정자치구 예산으로 캥거루를 위한 경구용 피임약 개발에 성공해 큰 기대를 모았으나 이도 큰 효과가 없었다. 결국 잔혹한 총살과 비효율적인 피임방법을 피해 이번에는 안락사 방식을 택했다.
4주간 400여 마리 처리… 사살 반대 목소리도 고조
5월19일부터 캔버라 지역 캥거루 사살작전이 본격적으로 개시됐다. 캔버라행정자치구의 하청을 받은 회사 직원들이 400여 마리의 동부 회색캥거루(Eastern Gray Kangaroos)를 안락사시키기 시작했다. 이번 작전은 4주 동안 이어질 예정이다.
캥거루 안락사 작전이 개시되면서 이를 반대하는 시위대의 움직임도 활발해졌다. 동물애호가들의 시위가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5월21일에는 호주 원주민(애보리진)들이 색다른 구호를 외쳤다. 이들은 “캥거루는 애보리진의 영적인 존재인데, 이들을 사살하는 것은 결국 우리의 동족을 살육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외쳤다. 또 호주 캥거루 보호 전국연합의 패트 오브라이언 회장은 “만약 당신들이 캥거루를 총으로 학살한다면 우리는 그 총구 앞에 설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와 함께 캥거루 안락사 현장에 몰려온 일본 기자들은 엉뚱하게도 호주가 일본의 고래사냥을 비난해왔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이들은 “국가 상징인 캥거루도 사살하는 호주가 일본의 고래사냥을 비난할 자격이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나 호주 국영 ABC-TV에 출연한 캐빈 러드 총리는 “생태계를 보존하기 위해 부득이 캥거루를 사살하는 호주와 공해상에서 상업용으로 고래를 사냥하며 과학연구용이라고 주장하는 일본은 처지가 다르다”면서 “위선적 행태라는 일본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못박았다. 스티븐 스미스 외무장관도 “캥거루 사살로 호주가 국제적으로 이미지 손상을 입을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
호주 대륙에 백인이 이주하기 시작한 1788년 무렵, 시드니 근처에서 이상하게 생긴 동물을 발견한 백인이 애보리진에게 “저 동물의 이름이 뭐냐?”고 물었다. 그러나 그 질문 자체를 알아들을 수 없었던 애보리진은 “난 모른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그 발음이 백인에게 ‘캥거루’로 들렸고 이 ‘이상한 동물’의 이름은 캥거루가 되고 말았다.
캥거루는 그 이름의 뜻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탓인지 눈치 없이 새끼를 너무 많이 낳아 수난을 당하고 있다. 호주를 찾는 관광객들이 가장 만나보고 싶어하는 캥거루들이 순한 눈빛처럼 평화롭게 살아갈 방도는 없을까? “캥거루(I don’t k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