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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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논증을 도식화해라

  • 입력2008-06-11 11: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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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의 논증을 도식화해라
    1 강남 조 선생과의 세 번째 만남

    “용 과장! 듣자 하니 로스쿨을 준비한다고? 당신 제정신이야?”

    용만호 과장은 오늘 오전 직속 상사인 마장춘 부장에게 호된 꾸지람을 들었다. 헛된 꿈은 집어치우고 회사업무에나 집중하라는 마 부장의 한마디 한마디는 로스쿨을 향한 그의 열정에 찬물을 끼얹는 것만 같았다.

    ‘공부한다고 업무를 소홀히 하진 않았는데….’

    용 과장은 조금 억울한 기분이 들었지만 애써 잊으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그는 마음을 가다듬으며 강남 조 선생이 있는 H학원으로 향했다.



    “선생님, 저 왔습니다. 용만호입니다.”

    그때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여유로운 표정의 강남 조선생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 자네 왔나? 근데 오늘은 어째 힘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구먼. 무슨 일 있었는가?”

    “선생님은 눈치도 빠르시네요. 실은 오늘 회사에서 부장님한테 싫은 소릴 들었거든요.”

    “허허, 직장생활이란 게 참 힘든 거지. 담배 한 대 피우겠나?”

    “괜찮습니다. 담배 끊었거든요. 저에겐 담배보다 소중한 꿈이 있습니다….”

    “수업이나 하세.”

    2 말 속에 숨겨진 것

    “우리는 이전 시간까지 LEET 추리논증 영역의 절반에 해당하는 추리 부분을 배웠네. 그럼 이번 시간부터는 나머지 절반에 해당하는 논증 부분을 배워볼까 하네. 논증 부분은 추리 부분보다 문제 수도 많을뿐더러 로스쿨 수험생들이 대체적으로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이라네. 그러니 잘 공부해둔다면 LEET 고득점을 얻는 데 유용할 게야. 그럼 그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논증에서 암묵적인 전제를 찾는 법부터 배워보도록 하세.”

    “선생님, 뭔가 굉장히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아니야. 그렇지 않아. 알고 보면 쉽다네. 그럼 내가 질문을 하나 해보지. 자넨 평소에 실수를 하나?”

    “실수요? 물론이죠. 가끔씩, 아니 자주 하죠.”

    “그래? 왜 실수를 하나?”

    “음…, 저도 사람이니까요.”

    “자네도 사람이니까 실수를 한다고? 자네의 말 속엔 뭔가 숨겨진 게 있는 것 같구먼.”

    “숨겨진 것이라뇨? 전 아무것도 숨기지 않았어요.”

    “그러면 어째서 자네가 사람이니까 실수를 한다는 것이지?”

    “음, 글쎄요.”

    “좀더 깊이 생각해보게. 어째서 자네가 사람이니까 실수를 한다는 것인지.”

    “그냥, 사람들은 누구나 실수를 하게 마련이잖아요.”

    “그래, 바로 그것이네. 아까 자네는 그 말을 암묵적으로 전제하고 있었던 것이네. 그럼 자네의 말을 알기 쉽게 도식화해 설명해볼까?”

    강남 조 선생의 LEET 잠깐만

    문제의 논증을 도식화해라
    알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자네가 방금 한 말은 “나는 사람이다. 따라서 나는 실수를 한다”라는 논증이라네. 논증이란 별게 아니야. 전제가 있고 그에 따른 결론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논증이지. 즉, 자네의 말은 “나는 사람이다”라는 전제와 “나는 실수를 한다”라는 결론으로 이루어진 논증이네.

    그런데 엄밀히 따져보면, 사실 자네의 논증은 위의 그림과 같이 두 개의 전제와 하나의 결론으로 이루어져 있다네. 하지만 자네는 그중 하나의 전제만으로 결론을 이끌어냈어. 그렇다고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네의 논증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거야. 그 이유는 숨겨진 다른 하나의 전제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이 너무 당연한 말이었기 때문이지. 바로 이렇게 겉으로 드러나 있진 않지만, 속에 숨어서 전제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을 ‘암묵적 전제’라고 한다네.


    “그렇다면 평소 우리의 말 속에는 엄청나게 많은 암묵적 전제들이 있겠군요.”

    “그렇지. 굳이 따지자면 사소한 말 하나하나에도 수십, 수백 개의 암묵적 전제가 들어 있을 거야. 아무튼 암묵적 전제에 대한 더 자세한 얘기는 내 친구 하 선생에게 부탁해두겠네. 그 친구에게서 잘 배우도록 하게.”

    “네, 알겠습니다.”

    “그럼 자네, 내가 만든 진짜 문제를 한번 풀어보겠나?”

    3 강남 조 선생의 LEET 추리논증 - 암묵적 전제 찾기

    강남 조 선생의 진짜 LEET

    다음의 논증이 암묵적으로 전제하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의 형법 제241조는 “배우자 있는 자가 간통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라고 하여 이른바 ‘간통죄’를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세계적으로 간통죄에 관한 법규정은 폐지되거나 사문화돼가는 추세며, 최근 우리 사회에서도 간통죄 존폐에 대해 첨예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간통죄 존속을 주장하는 쪽에선 사회 구성의 밑바탕이 되는 가정을 보호하고 사회 기강을 확립하기 위해 간통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혼을 전제로 하여 성립하는 간통죄는 가정을 보호하기보다는 간통한 배우자에 대한 보복 수단으로 사용돼 애초의 입법취지를 무색게 한다. 또한 간통죄로 인해 구속 기소되는 경우는 간통과 관련한 전체 고소 건수의 10%에도 못 미쳐 사실상 간통죄에 관한 규정은 법적 실효성을 잃었다고 봐야 한다. 그러므로 이제는 간통죄를 폐지하는 것이 마땅하다.

    ① 실효성을 잃은 법규정은 폐지돼야 한다.

    ② 간통죄의 입법취지는 국민의 뜻에 어긋난다.

    ③ 어떤 법규정도 현실적 적용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④ 간통죄 존폐 여부는 세계적인 추세에 따라 결정돼야 한다.

    ⑤ 간통죄 외에도 사회 기강을 확립하기 위한 많은 대안이 존재한다.


    “자, 문제를 잘 풀어보았는가? 내가 앞서 했던 것과 같이 문제에 주어진 논증을 도식화해보면 이런 문제도 쉽게 풀 수 있다네. 그럼 나의 풀이를 보게나.”

    강남 조 선생의 진짜 LEET 쉽게 풀기

    문제의 논증을 도식화해라
    문제의 논증을 간단히 도식화하면 옆의 그림과 같다. 여기에서 과 에는 암묵적 전제가 들어가는데 에는 “애초의 입법취지에 어긋나는 법규정은 폐지돼야 한다”는 암묵적 전제가, 에는 “실효성을 잃은 법규정은 폐지돼야 한다”는 암묵적 전제가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내용의 진술을 선택지에서 고르면 답은 ①이다.


    “어때, 내 말을 잘 이해할 수 있겠는가? 이런 문제를 푸는 핵심은 아까 말한 대로 문제의 논증을 도식화해보는 것이네. 그러면 어떤 곳에 암묵적 전제가 들어 있는지 금방 눈에 들어올 것이네. 자네도 그리했는가?”

    “네, 선생님. 그런데 막상 선택지에서 답을 고르려고 하니 ①과 ⑤ 사이에서 고민이 좀 있었습니다.”

    “그래, LEET 문제를 풀다 보면 그렇게 두 개의 선택지 사이에서 무엇이 정답인지 고민하게 되는 때가 많지. 그럴 때 대처하는 법에 대해선 차차 알려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게. 다만 지금은 이것 하나만 마음에 새기게. 아무리 헷갈려도 결국 답은 하나라는 것!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

    수업을 듣고 나니 마 부장 때문에 상했던 기분도 한결 나아져 있었다. ‘선생님께서 결국 답은 하나라고 하셨지. 그래, 내 꿈도 하나다! 용만호 기죽지 말자!’ 용 과장은 다시 힘이 샘솟았다. 그러나 시련은 그를 향해 한 발짝 더 다가오고 있었다.(합격의 법학원 ‘논리와비판 연구소’ 제공, 다음 호에 계속)

    척척박사 하 선생의 LEET 돋보기

    수리추리, 패턴을 찾아 쉽고 빠르게!


    지난주의 ‘강남 조 선생의 LEET 퀴즈’ 기억나시는지요? 그 문제에서 근무일수를 총 20일이 아니라 총 1000일로 한다면 이 대리와 박 대리가 함께 지각한 날은 모두 며칠이 될까요? 이 경우에도 ‘두 대리가 첫 번째 근무일에 함께 지각하고, 이 대리는 3일마다 박 대리는 2일마다 지각하니까 일곱 번째 근무일에 함께 지각하고…’ 식으로 용 과장처럼 차근차근 따지다가는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아무도 모를 거예요.

    이에 대해 조 선생은 ‘규칙성’을 찾으라고 했었죠? 수리적 사고 이론에서는 이를 흔히 ‘패턴’ 중심으로 사고하라고 하죠. 이 퀴즈의 핵심 패턴은, 두 대리가 함께 지각한 날이 6일마다 한 번씩 돌아온다는 점이죠. 그리고 이 패턴이 총 1000일이라는 기간에 반복된다는 점이 문제 해결의 열쇠이고요. 적지 않은 수리추리 문제가 핵심 패턴을 파악하면 굳이 복잡한 계산을 하지 않고도 쉽게 풀린답니다.그럼, 같이 한번 풀어볼까요? 먼저 자연수 1부터 1000까지 눈금이 쳐진 자를 마음속에 떠올려보세요. 퀴즈 문제 해결의 핵심 패턴은 첫날에 함께 지각하고 6일 지나 7번째 날에 다시 함께 지각한다는 점이었어요. 첫째 날부터 6번째 날까지를 한 세트로 묶어 생각해보죠. (그러면 두 번째 세트는 7번째 날부터 시작하고, 각 세트의 첫 번째 날이 함께 지각하는 날이 될 거예요.) 이 세트를 10번 반복하면 함께 지각한 횟수는 10회가 되고, 그 마지막 날이 60일째가 되겠군요. 그렇다면 이 세트를 100번 반복하면 마지막 날은 600일째가 되고 60번 더 반복하면 960일째가 되며, 6번 더 반복하면 996일째가 되고 997일째에 두 대리가 한 번 더 함께 지각을 할 테니, 함께 지각하는 총 횟수는 167번이겠군요. 어때요? 정말 쉽죠?

    많은 수리추리 문제가 어렵게 여겨지는 이유는 문제를 이루는 요소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순서대로 풀어내기가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LEET의 수리추리 문제에 나타난 많은 요소들은 질서 있는 구조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에요. 지난주의 ‘진짜 LEET’ 문제 역시 기본적 패턴이 순서대로 질서 있게 모여 전체 구조를 이루고 있었죠. 이와 같은 유형의 문제라면 국소 영역의 사례들에서 기본 패턴을 찾아 그것이 전체 영역으로 일반화될 수 있는지 살펴본 후, 그 국소적 패턴을 전체 영역에 확대 적용하여 정답을 찾는 전략이 유효할 거예요. ‘패턴 전략’은 수리적 사고 전략 중 가장 기본적이지만 매우 강력한 것이죠. LEET 수리추리 문제에서도 통할 것임은 두말하면 잔소리고요.

    그럼 百聞不如一見. 아니, 百見不如一解!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출제한 LEET 문제를 함께 살펴볼까요? 혹시 자연수 1부터 10까지 칠판에 적혀 있는데, 칠판에 적혀 있는 세 수 a, b, c를 택해 지우고, 지운 세 수의 합에서 1을 뺀 수(a + b + c - 1)를 칠판에 쓰는 조작을 반복할 것을 요구하는 문제를 보신 적 있나요? 이 문제의 경우, 문제의 지시에 따라 구체적으로 조작해보면서 1회 조작할 때마다 칠판에 적힌 수의 개수가 2개씩 줄어들고 어디에선가 -1이 추가된다는 패턴이 반복된다는 점만 찾는다면 어렵지 않게 풀 수 있어요. 그 밖에 한 변의 길이가 3인 정삼각형의 둘레를 한 변의 길이가 1인 정사각형을 817번 굴렸을 때 나타나는 모양을 추론할 것을 요구하는 문제 등도 ‘패턴 전략’을 적용하면 쉽게 해결되니 시간을 내어 한번 풀어보시기 바랍니다.

    이와 같은 ‘패턴 전략’은 비단 ‘수리 연산’과 ‘도형’ 범주의 문제뿐 아니라, ‘대수’ ‘기하’ ‘게임 이론’ ‘이산수학’ ‘자료 해석’ 등 다른 범주의 문제에도 널리 적용될 수 있으니 반드시 마음에 새겨두셔야 한답니다.
    하상용 논리와비판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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