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나토 라티가 만드는 바롤로 콘카 2004.
프랑스 보르도는 보르도 나름대로 건축물이 웅장하고, 부르고뉴는 시골 정취가 고풍스러우며, 독일 라인가우는 아기자기하게 굽이치는 강물이 보기 좋고, 오스트리아 바하우는 다뉴브의 바람을 맞아 출렁이는 체리나무의 소리가 정겹다.
이탈리아는 어떤가. 팔색조처럼 다양한 지방색을 지닌 이탈리아 중에서도 오래 묵힐 만한 와인으로 손꼽히는 바롤로 마을과 바르바레스코 마을은 애호가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굽이굽이 이어지는 높고 낮은 능선을 타고 사방으로 펼쳐진 이 마을은 굳이 와인 애호가가 아니라도 많은 관광객이 찾는 명소다. 자전거 경주족이나 드라이브를 즐기는 이들, 트레킹을 나서는 사람들에게도 인기가 있다. 이 두 마을의 중심에 알바라는 작은 도시가 있다.
매년 알바 와인 전시회장은 장미꽃밭
알바에서는 사시사철 초콜릿 향기가 진동한다. 이탈리아에서 처음으로 재벌 반열에 오른 사업가 페레로가 이곳에 자신의 이름을 딴 초콜릿 공장을 세워 지역사회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밀크초콜릿 향기로 가득 찬 오후를 보내다 해가 기울면 이번엔 헤이즐넛 향취에 마을이 취한다. 상업적으로야 알바의 초콜릿 공장이 자랑거리겠지만, 지역인의 자존심은 공장이 아니라 양조장에 있다. 바로 바롤로에.
벽돌집처럼 단단한 와인 바롤로는 알바의 자존심이다. 바롤로는 11개 마을에서 생산되는데, 라 모라도 그중 하나다. 라 모라의 바롤로는 향기가 뛰어난 것이 특징이다. 이곳보다 남쪽에 자리한 마을, 이를테면 몬포르테나 세라룽가의 바롤로는 구조감이나 강건함이 특성인 반면, 여기는 방향(芳香)이나 아로마가 특징이다. 장미꽃잎이 자연스럽게 향을 뿜어내, 시음하는 동안 순수한 꽃향기에 숲 속을 거니는 기분마저 든다. 매년 열리는 알바 와인 전시회(Alba Wines Exhibition)는 그래서 행사장이 장미꽃밭 같다.
라 모라의 양조장 레나토 라티(Renato Ratti)는 산 중턱 동남향의 비탈진 곳에 자리한 포도밭을 중심으로 조성된 유서 깊은 양조장이다. 지금은 고인이 된 레나토는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의 여러 밭 중 해마다 좋은 포도가 여무는 구역을 지정해 책을 편찬했다. 이른바 ‘크뤼’의 분석 책이다. 크뤼는 특정 구역을 뜻하며 개성 있는 와인이 나온다. 프랑스 부르고뉴의 크뤼처럼 바롤로 역시 크뤼로 구분된다. 크뤼 와인은 해당 포도밭의 독특한 토양적 성질을 담은 단일 포도밭 와인이며, 여러 곳의 포도를 섞어 만드는 일반 와인과 품질이 구분된다. 레나토는 평생 동안 바롤로를 생산하는 모든 마을의 포도밭을 누비며 세밀하게 토양들을 살펴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의 개성을 활자화했다.
레나토 라티의 2004년도 바롤로 콘카는 라 모라의 장밋빛 향취를 와인에 담아냈다. 입 안을 감미롭게 적시는 풍부한 질감 속에 맑게 피어오르는 꽃향기는 섬세하고 진하다. 상당한 타닌의 강도는 긴 여운을 남겨 훗날 제대로 익는다면 어떤 맛일까 궁금하게 한다.
㈜비노킴즈 대표이사·와인경매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