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거인’
그런 점에서 키는 작지만 연기세계는 누구보다 큰 호프먼을 ‘작은 거인’이라 부를 수 있을 법하다. 그리고 재밌게도 호프먼은 같은 제목의 영화에도 출연했다. 이른바 수정주의 서부극의 걸작 가운데 하나인 아서 펜 감독의 ‘작은 거인’이다. 인디언 포니족의 습격으로 부모를 잃은 소년 잭은 평화를 사랑하는 샤이엔족에게 구출돼 그들 속에서 성장한다. 그에게도 인디언 이름이 붙는데, 덩치가 조그마한 그를 샤이엔족은 ‘작은 거인’이라 부른다. 캠프를 습격한 기병대에 의해 백인들의 세계로 돌아간 잭은 갖은 일을 겪다가 서부로 가게 되고, 거기에서 자신을 키워준 샤이엔족 할아버지와 재회한다. 그는 이제 진정한 인디언으로 살아가려 하지만, 다시 시련이 닥친다. 백인 우월주의자 커스터 장군이 인디언 몰살작전을 편 것이다. 잭은 커스터의 이런 기도에 맞서는데, 제목인 ‘작은 거인’이 시사하는 바가 있다면 바로 이 대목일 듯하다.
영화가 아닌 현실의 작은 거인들로는 흔히 나폴레옹, 덩샤오핑 등을 꼽는다. 나는 그 목록에 한 명을 추가하고 싶다. 미국의 전 노동부 장관인 로버트 라이시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예일대 동창인 그는 클린턴이 집권한 뒤 첫 내각의 각료로 발탁됐는데, 클린턴 정부 정책의 밑그림은 그에게서 나왔다고 할 수 있다. 클린턴은 자서전에서 라이시에 대해 동창생 중에서도 특출한 친구로 기억한다고 밝혔다. 라이시의 키가 150cm 안팎의 단신이었다는 것에 대해 클린턴이 언급한 부분은 라이시의 탁월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클린턴은 “우리 친구 중 누구도 그를 작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그만큼 높은 지적, 정신적 경지를 보여줬다는 것이다.
라이시의 저서 중에 ‘국가의 일(The Work of Nations)’이라는 책이 있다. 21세기의 자본주의와 국가, 그리고 개인의 관계를 조명한 현대판 ‘국부론’이라는 격찬을 받았던 책이다. 라이시는 여기에서 균형 잡힌 사회의 조건과 삶의 질에 대해 진지하게 탐색한다. 그리고 그 같은 사회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역설한다.
지적, 정신적 성찰이 느껴지는 라이시의 안목과 열정은 국가를 경영하는 이의 자세와 역량의 전범을 보여주는 듯했다. 요즘 우리 사회, 어느 때보다 라이시 같은 이가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