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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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포도 익어가던 영일만 찬연히 빛나는 철강 불빛

이육사가 노래한 하늘 밑 푸른 바다 … 황석영은 월남 참전 경험 ‘몰개월의 새’로 풀어내

  • 정윤수 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입력2008-06-11 09: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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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포도 익어가던 영일만 찬연히 빛나는 철강 불빛

    형산강에서 바라본 포항제철.

    네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하리라.’ 성경의 ‘욥기’ 8장 7절에 나오는 구절이다. 꼭 그런 일을 겪게 되어 여기에 적는다. 나는 5월 중순 포항에 ‘가야만’ 했다. 옛 노래 중에 최병걸의 ‘진정 난 몰랐었네’가 있는데 그 가사는 “발길을 돌리려고 바람 부는 대로 걸어도…”로 시작한다. 나는 정말로 포항에서 해야만 하는 일을 마치고 서둘러 발길을 돌리려고 바람 부는 대로 걸었으나, 미약하게 시작된 일이 창대하게 끝나고 말았다.

    얘기인즉슨, 프로축구 K-리그의 포항 홈 경기를 취재할 일이 있었다. 그래서 서울에서 포항까지 시간에 맞춰 갔으나 그 먼 곳에 가서 ‘전후반 90분’이 끝났다고 해서 그냥 돌아서기가 속절없었다. 그래서 ‘바람 부는 대로’ 걸었는데, 물론 차를 이용했지만, 죽도시장과 포항제철과 청림시장을 거쳐 영일만을 따라 호미곶으로, 대보항으로 달리다 보니 어느덧 해 저문 등대공원에 다다라 망연히 검푸른 바다를 바라보아야만 했던 것이다.

    이미 날은 저물었고, 어차피 밤을 도와 고속도로를 달려 귀경해야만 하는 여정이었기에, 영일만의 황홀한 국도를 거슬러 다시 돌아와야 하는 길을 나는 천천히, 아주 천, 천, 히, 돌아왔다. 그리하여 뜻밖에도 나는 세계 최강의 강렬한 철강도시 포항의 여리고 아름다운, 깊은 속살을 넌지시 보게 되었고, 그 때문에 이 여정은 창대하게 마무리된 것이다.

    세계 최강 철강도시 그러나 여리고 아름다운, 깊은 속살 간직

    포항 일대에서 꼼꼼하게 사물을 응시하고 공들여 말을 다듬는 것으로 잘 알려진 시인 권선희가 있다. 그는 구룡포에 들어와 8년을 살았다. 처음 구룡포에 들어왔을 때 눈에 들어온 것은 풍경들뿐이었다. 스쳐 지나가는 차창을 통해 본 해안의 풍경들과 다를 바 없었는데, 1년쯤 지나자 사람들이 보였고 3년쯤 지나자 서서히 구룡포가 시인에게 말을 걸었다고 한다.



    그럴듯한 시 하나 살짝 건지자고 엉거주춤 그 언저리에서 머문 것이 아니라 아예 작심하고 3년 넘기고 5년 넘기고 이제 8년이 되면서 시인과 구룡포와 너나들이로 한 몸이 되는, 그야말로 스스로 그럴 법한 경지의, 자연이 된 것이다. 그래서 시인 권선희가 들려주는 구룡포와 그곳 사람들 이야기는 하루 낮밤으로 지나쳐가는 관광객으로서는 느낄 수 없는 ‘삶’이 들어 있다.

    시집 구룡포로 간다의 서문에서 시인은 방금, 바람이 다녀갔다/ 그물을 꿰고 만선기 꼽으며 채비했던/ 무수한 사연들이 출항했다/ 은빛 돛대를 세우고 귀환을 약속하는 갈매기떼/ 우루루 비상하는/ 여기 구룡포,/ 나는 시를 쓰지 않았다/ 축항을 치는 파도와 말봉재 골짝골짝 넘나드는 바람/ 그들의 이야기를 가끔 받아 적었다고 쓴다.

    물론 포항에서 구룡포 사이, 영일만 일대는 우선 이육사의 시 청포도로 인하여 문학사에 등재된 상태다. 지조 있는 선비의 격조 높은 시를 기리기 위한 시비(詩碑)가 대보면 해맞이공원 내에 건립되어 있기도 하다. 이퇴계의 후손이며 안동의 도산면 원촌에서 태어나 무려 17차례나 일제의 감옥을 드나들며 독립운동을 했던 그는 1937년에 포항 송도로 내려와 요양하게 된다. 그러던 차에 시인은 현재 해병대가 주둔하고 있는, 당시로서는 엄청난 크기의 포도원이 있던 일월지 언덕에서 영일만을 바라보며 시 청포도를 가다듬었던 것이다. 그는 1944년 1월, 중국의 베이징 감옥에서 옥사하였는데 마흔한 살 때 일이다. 시 청포도는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으로 끝이 난다.

    청포도 익어가던 영일만 찬연히 빛나는 철강 불빛

    포항시내 밤 풍경(왼쪽)과 포항시내 ‘몰개월 길’.

    이육사가 다른 시에서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이라고 썼을 법한 곳에서 나는 차를 세우고 한참이나 영일만의 검푸른 바다와 그 너머 포항제철의 불빛을 바라보았다. 물론 이육사 시절의 넓디넓은 포도밭은 흔적도 없다. 일월지에 ‘삼륜포도원’이라는 당시로서는 동양 최대의 포도원이 있었고, 여기서 생산되는 삼륜포도주(미쯔와 포도주)는 명주(名酒)로 널리 알려졌으며 60년대에도 ‘포항포도주’로 유명했다고 한다. 지금은 해병부대에 편입되어 일부는 군 시설이 되고 또 일부는 골프장이 되었다.

    그 많은 사실마저 지워버리는 어둠에 사로잡혀 한참을 머물다가 나는 다시 차에 올랐다. 고속도로를 지향하여, 경주 쪽 국도를 버리고, 다시 포항 시내로 들어와 오래된 지도를 손으로 짚어가며 시내를 관통하려다가 나는 순간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 순간 나는 정부가 시행한 ‘지명 안내 변경’ 제도에 감사했다. 예전 같으면 번지수나 적혀 있을 거리에 ‘몰개월 길’이라고 적혀 있었던 것이다.

    청포도 익어가던 영일만 찬연히 빛나는 철강 불빛

    구룡포 풍경(왼쪽)과 죽도어시장 영해수산.

    젊은 군인들 이별 의식 ‘세상의 가치’를 말하다

    나는 도로 옆에 차를 세우고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포항은 ‘철강도시’지만 ‘해병대 도시’이기도 하다. 그리고 언젠가 현기영 김용성 송영 심상대 등 해병대 출신 소설가들의 작품을 묶은 이채로운 책이 발간된 것을 기억했다. 그리고 그 작가군에는 ‘당연히’ 해병대 출신이자 월남 파병 이력으로 끈끈한 작품을 쓴 황석영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의 낙타누깔이나 무기의 그늘은 이 처절한 경험의 소산이다. 그리고 한국 단편소설의 백미로 꼽힐 만한 몰개월의 새가 있다. 그 ‘몰개월’이 바로 여기 포항에서 구룡포 사이의 옛 이름인 것이다. 도로변의 식당 주인에게 물으니 ‘모래 천지에 개울도 있고 해서 몰개월’이라고 불렀다고 대답한다.

    한편으로 그 ‘몰개월’은 규모 있는 군 막사 인근에 늘 자리잡게 되는 사창가의 다른 이름이 되기도 했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 ‘나’는 베트남 참전 보상으로 “일년치를 앞당겨 받은 봉급을 침 발라 헤는 병사” 가운데 한 명이다. 이윽고 베트남으로 떠나기 전에, 군장 검열을 마친 ‘나’는 몰개월에서의 일을 회상한다. 미자, “시궁창에 하반신을 담그고 엎드린 여자” 미자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녀는 “어디서 흘러왔는지도 모를 작부들이 집마다 두세 명씩 기거”하는 몰개월 갈매기집의 ‘똥까이’ 중 한 명이다. 그래서, 그렇다고 해서, 눈물이 없을 리는 없는 것이다. 몰개월의 여자들은 베트남으로 떠나가는 군인 행렬을 위해 곱게 차려입고 ‘이별’ 의식까지 치러준다. “모두들 애인 하나씩 골라서는 편지질”까지 한다. 장난스럽게 웃음이 번지기도 하지만 ‘시궁창’ 같은 곳에서 사는 젊은 여자들이 죽음의 전장으로 떠나가는 젊은 남자들을 위해 이별 의식을 치르고 편지를 쓰는 것은 결코 가벼운 장난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미자와 함께 있었으면서도 그녀와 ‘연애’를 하지는 못한 ‘나’는 깊은 연민에 사무치며 베트남으로 떠나간다. 또 다른 단편 삼포 가는 길의 ‘백화’와 다를 바 없는, 미자는 주인공에게 작은 선물을 준다. 소설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나는 승선해서 손수건에 싼 것을 풀어보았다. 플라스틱으로 조잡하게 만든 오뚝이 한 쌍이었다. 그 무렵에는 아직 어렸던 모양이라, 나는 그것을 남지나해 속에 던져버렸다. 그리고 작전에 나가서 비로소 인생에는 유치한 일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서울역에서 두 연인이 헤어지는 장면을 내가 깊은 연민을 가지고 소중히 간직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미자는 우리들 모두를 제 것으로 간직한 것이다. 몰개월 여자들이 달마다 연출하던 이별의 연극은, 살아가는 게 얼마나 소중한가를 아는 자들의 자기표현임을 내가 눈치챈 것은 훨씬 뒤의 일이다. 그것은 나뿐만 아니라, 몰개월을 거쳐 먼 나라의 전장에서 죽어간 모든 병사들이 알고 있었던 일이었다.

    이 대목에 대하여 후배 소설가 공지영은 딸 위녕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쓴 칼럼에서 이 구절이 엄마와 엄마의 세대들에게 얼마나 영향을 주었는지 너에게 설명할 말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쓴 적이 있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위녕, 때로는 전쟁이, 때로는 고난이, 때로는 밑바닥이 우리를 성숙시키고 우리를 풍요롭게 만드는 인생의 신비를 엄마는 이때부터 연습하듯 감지하기 시작했단다. (중략) 인생에는 유치한 일도 없고, 거저 얻는 자유도 없고, 모든 것은 제각기 고유한 가치가 있다는 말만 할 수밖에 없구나.

    나는 완벽하게 어둠에 사로잡힌 몰개월의 밤을 뒤로하고 고속도로를 향해 속도를 냈다. 형산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널 때 몰개월은 어둠 속으로 벌써 사라졌고, 찬연히 빛나는 거대한 철강도시의 불빛들이 영일만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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