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굽잇길 여정, 그리하여 우리는 떠나는 것이다
남도 땅 장흥(長興)에서도 버스는 다시 비좁은 해안도로를 한 시간 남짓 내달린 끝에, 늦가을 해가 설핏해진 저녁 무렵이 다 되어서야 종점지인 회진(會鎭)으로 들어섰다.차가 정류장에 멎어서자, 막판까지 넓은 차칸을 지키고 앉아 있던 …
200903032009년 02월 25일세월의 풍화, 은비령에서 ‘꽃’이 되다
사진작가 강운구는 1972년에서 79년까지 마을 삼부작을 찍었다. 치악산 아래 원주 황골과 전북 장수의 수분리, 그리고 내설악 자락의 인제 용대리를 몇 년에 걸쳐 찍었다. 그 무렵 ‘새마을운동’의 근대화 촉진으로 마을들은 ‘소멸해가…
200902242009년 02월 19일삶에 정착할 수 없는 불치병의 서식처, 그곳
리처드 부스라는 사나이가 있다. 어려서부터 헌책방을 드나들며 살았고 지금은 아예 헌책방의 도시, 그 작은 왕국의 ‘군주’를 자처하며 살고 있다. 1962년 옥스퍼드 대학을 마쳤는데, ‘연구는 케임브리지가 하고 통치는 옥스퍼드가 한다…
200902172009년 02월 11일설악산과 동해, 거룩한 자연, 영원한 생명력
여기 한 시인이 있다. 꾸준히 성실하게, 마치 산을 오르듯이, 아니 그렇게 힘들여 오르고 정복하기보다는 산과 산 사이의 골짜기와 들판을 공들여 산책하듯이, 꼼꼼하게 시작노트를 채워온 시인이 있다. 그 시인이 한번은 연어를 유심히 관…
200902102009년 02월 05일‘문화 식민지’ 그 바닷가에도 아름다운 추억은 있다
우리는 영화나 드라마 세트장이 대단한 구경거리가 되는 기이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 드라마의 한 장면이 관객의 눈시울을 적시고, 또 그 가녀린 감성의 떨림이 우연히 찾아간 곳에서 ‘아하, 여기가 거기였구나!’ 하고 문득 고개 돌려 찾…
200901272009년 01월 29일‘모던 뽀이’ 지용을 키운 ‘향수’의 고향
고향! 이 말은 머지않아 사어(死語)가 될 비극적 운명을 지닌 말이다. 고향! 고향이라, 어쩌면 이 말을 들으면서 명치끝이 찌르르 아파오는 그런 세대가 한 번만 지나가면, 그러니까 지금의 30, 40대가 노년이 되는 21세기 중엽에…
200901202009년 01월 13일희로애락과 흥망성쇠 700년 역사를 공연하다
이연재의 2009년 새해 첫 원고를 어디서 써야 타당할 것인가. 그런 밑도 끝도 없는 생각을 여러 번 한 끝에 나는 한 해의 물러섬과 나아감의 한복판에 서 있는 광화문으로 나갔다. 아마도 그곳에 이 한반도의 곳곳으로 뻗어나가는 도로…
200901132009년 01월 07일아리 아라리 굽이굽이 정선으로 나를 넘겨주게
노래는 자신을 낳게 한 산야의 물형을 닮는다. 만약 이 지구에 ‘한국’이 유일한 나라이고 한국인들이 외적 영향 없이 유사 이래 삶을 가꾸어왔다고 한다면, 그리하여 오늘의 도시 문명을 주축으로 하는 경우에 도달했다고 한다면, 과연 ‘…
200901062008년 12월 31일하늘 너머 인간의 꿈 ‘지상’으로 내려놓다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코인로커 베이비스’ ‘인 더 미소 수프’ 등을 쓴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류는 절묘한 타이밍의 문장으로도 세련되어 보이지만, 무엇보다 이 환멸의 대도심에서 근사한 소재를 낚아채는 솜씨가 절륜의 고수라고…
200812302008년 12월 24일광막한 벌판 백색의 연가 외로움까지 아름답다
눈이 내린다. 폭설이다. 따뜻한 날씨 탓에 아스팔트가 금세 진창이 되고 말겠지만, 지금 하늘에서 폭포수처럼 쏟아져내리는 눈은 그런 시궁창 같은 소멸의 훗날을 전혀 생각나지 않게 한다. 자연이 거룩한 것은, 거대한 국면에서 우리 인간…
200812232008년 12월 17일전국 3대 시장 명성 간데없고 갯마을의 추억만 아련히 …
지금 당신은 착잡한 상태에 직면해 있다. 뭐 그렇다고 인생의 귀한 시간을 갑자기 앞당겨 단속해야 하는, 그런 절체절명의 상태는 아니다. 다만 삶이 남루하게 느껴지고 늦가을, 아니 초겨울의 바람도 지난해와 달라서 무슨 일이든지 그 마…
200812162008년 12월 10일산업화가 훌쩍 떠난 곳 강물은 잔돌이 되라 하네
화가 루소와 밀레가 파리를 떠나 퐁텐블로 근처의 작은 마을 바르비종으로 떠난 직접적인 이유는 콜레라 때문이었다. 19세기 중반, 갑자기 창궐한 콜레라 때문에 대도시는 순식간에 죽음의 냄새로 뒤덮였다. 많은 사람들이 도시를 떠났고, …
200812022008년 11월 26일100년의 근세사 압축 고요한 곡선의 美 발산
늦가을, 그러니까 바로 요즘에는 덕수궁이 이 산하의 가장 아름다운 성감대로 변한다. 이미 단풍은 내장산, 지리산으로 남진하였고 크고 작은 도시의 가로수는 제 몸의 부스러기인 양 잎들을 떨구고 있을 때 덕수궁 숲은 비로소 생의 본질을…
200811252008년 11월 20일그림처럼 깔린 오색 낙엽 안개비에 촉촉이 젖은 듯
며칠 전에 꽤나 흥미로운 ‘사건 기사’가 어느 일간지에 게재되어 이를 따로 메모해 몇 번이고 읽어보았다. ‘사건 기사’의 특성상 매우 건조한 문장으로 기록돼 있었지만 마음에 남은 인상은 제법 컸다. 그 내용은 이렇다. 어느 예비역 …
200811182008년 11월 13일젊은 날 방황하는 눈빛들 싸구려 네온사인서 불안한 배회
어릴 적 보았던 교과서에 민태원의 청춘예찬이라는 글이 있었다. 이 글을 쓰기 위하여 잠시 자료를 살펴보았더니 지금도 이 글은 중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다. 글쎄, 아무래도 ‘교과서’이기 때문에 이런 글을 수록할 수 있겠지만, 인생이란…
200811112008년 11월 03일요란한 기적 소리마저 쇼핑몰이 집어삼켰나
오늘의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시 한 편 읽어보자. 오랜 풍상 다 겪은 시선으로 이 세상의 낮은 곳을 한없이 응시하는 고요한 목소리의 시인 김사인의 허공장경(虛空藏經)이다. 빈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학교를 중퇴한 뒤/ 권투선수가 …
200811042008년 10월 27일탄가루 날리던 해안촌 추억마저 울긋불긋 새 단장
우연일까. 언제나 인천은 잿빛이었다. 1980년대 말 부평 쪽에서 무슨 ‘운동’이랍시고 일을 할 때, 그때 보았던 부평과 주안과 남동, 그 공단 거리의 하늘은 소설가 김성동의 표현을 빌리건대 짙은 승복 빛이었다. 한낮에도 어두웠다.…
200810212008년 10월 15일가슴속 恨 소리에 담아 남도 하늘에 날려보내리
산하 곳곳에 눈물 어리지 않은 곳이 달리 없지만, 전북의 서해안으로 소요하다 보면 어느새 맘속으로 눈물이 흘러 그 까닭으로 다음 행로를 잡지 못한 채 지나가는 바람이며 하늘거리는 꽃잎을 핑계 삼아 한두 시간이고 더 머무르게 된다. …
200810142008년 10월 08일밥벌이 들숨 일상의 날숨 길게 누웠다
대도시의 헐거우면서도 긴박한 일상은 때로 혼자서 밥을 먹도록 강요한다. 홀로 식사하는 시간은 적요하면서도 고통스럽다. 친구 혹은 동료 사원들 사이에 끼어 서울 세종문화회관 뒤쪽이나 대구 동성로의 번잡한 빌딩 속에서 점심을 먹을 때,…
200810072008년 10월 01일야생미 찾아볼 수 없는 무지막지한 인공낙원
구름 사이로 달이 빠져나오자 반짝, 개천이 드러났다. 살얼음이 낀 개천은 달빛을 받아 무슨 시체처럼 차갑게 반짝거리며 아래쪽 미루나무 숲으로 사행(蛇行)의 긴 꼬리를 감추고 있었다. 바로 그 미루나무 숲 언저리로부터 한 사내가 개천…
200809302008년 09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