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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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맹신도를 공격하다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Khhan21@hanmail.net

    입력2008-06-11 11: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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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래식 맹신도를 공격하다

    <B>굿바이 클래식</B> 조우석 지음/ 동아시아 펴냄/ 312쪽/ 1만5000원

    ‘굿바이 클래식’을 읽으면서 처음에는 조금 불편했다. 표지에 “클래식의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유쾌한 반란”이란 설명이 적혀 있는 이 책은 철 지난 지 오래인 클래식이 여전히 한국인들에게 정치권력, 마음의 권력으로 자리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내가 불편했던 것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저자의 글이 처음부터 과하다 싶을 정도로 감정 표출을 한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서평집 ‘책의 제국, 책의 언어’를 통해 저자가 해박하며 문화의 다양한 면을 꿰뚫을 뿐 아니라, 대단한 인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이 책에서도 철학을 전공한 이력과 생물학, 인류학, 사회학, 음악학, 경제학, 종교, 미술 등 다양한 학문을 섭렵한 저자의 내력이 드러난다. ‘클래식의 죽음’이란 주제로 이만큼 다양하게 이야기를 끌고 가는 사람을 본 적이 없으니 저자의 ‘구라’적 글쓰기가 놀랍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끌어들이는 학자와 주변사람들의 사례가 너무 주관적이라는 의구심도 들었다. 왜, 지나치게 현란하고 공격적인 문장을 보면 일단 거부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가.

    저자는 1960년대 이후 클래식에 맛을 들인 광팬이었다. 그러다 6년여 전부터 재즈가 귀에 들어왔다고 한다. 우연히 유럽 재즈를 대표하는 엔리코 라바의 트럼펫 소리를 들은 뒤 아찔하고 몽환적이고 섹시한 무언가를 경험하고는 번개 맞은 듯 감전된다. 지금까지 하루 한 장꼴로 모은 재즈 음반만 2000장이 넘는다. 클래식에서 재즈로의 개종은 저자가 화이트 콤플렉스(백색 공포증 혹은 클래식 중심주의)를 벗는 계기가 됐다. 그 계기는 저자에게 사회문화사적 차원에서 음악을 재해석하게 만들었다. 따라서 이 책은 클래식에 빠져 있던 맹신도가 이교도가 되어 자신의 신앙을 공격한 책이다.

    저자는 클래식의 본산지인 서구사회조차 ‘세상의 모든 음악은 클래식을 중심으로 돈다’는 클래식 천동설을 자체적으로 폐기하고, 클래식 역시 세상 모든 음악의 하나인 종족음악에 불과하다는 음악 지동설로 바뀌고 있다고 본다. 하지만 이 땅에는 여전히 ‘클래식 울렁증’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클래식의 가장 큰 문제는 연주자 따로, 감상자 따로의 칸막이 음악이라는 점이다. 대중에게 객석에 쭈그리고 앉아 듣기만 하는 수동적 역할을 요구하는 음악은 동서고금을 통틀어 클래식밖에 없다. 외양적으로 정교해 보이지만 뻔한 이디엄의 반복, 작곡가와 악보 중심주의라는 독재, 음악사에 둘도 없는 연주자의 종속적 위치 전락, 단조로운 형식미의 되풀이로 가득 찬 클래식은 처음부터 차곡차곡 전통이 세워져 오늘에 이른 것이 아니라, 후대의 요구에 따라 전면적으로 재구성된 가공의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저자는 입증해 보인다.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영웅신화는 조작된 것이며, ‘음악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바흐는 사후 80년이 지나 멘델스존에 의해 발탁된 ‘얼굴마담’이라는 주장은 클래식에 문외한인 나에게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저자는 이제 클래식은 표준음악이라는 공식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 줌밖에 안 되는 클래식의 밑천을 늘려주기 위한 상업주의 마케팅에 대해서도 비판한다. “옛 시대의 음악은 그 시절 작곡가들이 염두에 뒀던 악기는 물론 연주 방식도 그대로 재현해야 옳다”는 정격음악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역주행은 클래식의 외연을 넓히거나 갱신했다기보다는 자폐적인 클래식이 도달한 막다른 골목이라고 본다.

    저자는 중세, 르네상스, 바로크, 고전파 음악을 당시 연주법으로 재현해온 호르디 사발의 ‘정격음악 이상의 정격음악’을 하나의 대안으로 내세운다. 하지만 저자가 내세우는 진정한 대안은 세계 여러 나라의 전통음악과 민속음악을 컨템퍼러리화한, 즉 그들을 부모로 두고 태어난 자식들인 월드뮤직이다. 그 실천자로 임동창과 노리단을 제시한다. 서양 클래식, 국악, 대중음악 등 거의 모든 음악을 흡수 소화하고 배출하는 과정을 거쳐 하나로 수렴하는 정악의 현대화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임동창은 충남 서천의 ‘해방구’에서 단순한 테크닉이 아니라 진짜 음악을 할 수 있는 텃밭인 나를 제대로 파악해야 음악이 가능하다는 자신의 체험을 제자들에게 전하고 있다.

    대안학교이자 놀이터인 하자센터의 노리단은 제도권 학교에서 버림받은 아이들이 삶과 음악을 하나로 만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얼마 전 파주의 심학산 정자에서 10여 명의 지인과 남녀 소리꾼의 노래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음치인 내가 어느 순간 소리에 몰입돼 저절로 입이 떨어지고 장단을 함께 넘으며 참가자 모두와 덩실덩실 춤까지 추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러고 나니 1년치 스트레스가 확 풀린 느낌이었다. 이런 음악 즐기기가 저자가 말하는 최상의 대안이라는 것을 책장을 덮으면서 절감했다.

    그리고 잠시나마 저자에게 품었던 의구심으로 몸 둘 바를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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