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원에 간 마 부장
“예? 제가요? 어떻게 이런 일이….”
요즘 들어 부쩍 피로를 느끼는 등 몸이 좋지 않아 병원을 찾았던 마장춘 부장은 의사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간암 초기라는 것이다. 그동안 회사생활과 수험생활을 병행해 피곤한 것이려니 하고 꾹 참아온 그였다. 하지만 극도의 피로감에 혹시나 하고 병원을 찾았다가 이런 진단을 받게 된 것이다.
“얼마나 살 수 있나요?”
“아니에요. 초기에 발견됐고, 부위도 괜찮아서 수술 없이 색전술로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니, 세상에! 벌써 수술도 못할 정도인가요?”
“수술도 못하는 게 아니라, 수술을 안 해도 될 정도로 상태가 괜찮다는 말씀입니다.”
“암이라면서요? 세상에 그런 암도 있나요?”
“의학기술이 발달해서 초기에 발견하면 치료할 수 있는 경우가 많아요.”
“설마 암이 그렇게 쉽게 치료될 리가 있나요? 특히 간암이라면 더더욱 그렇겠죠. 예전에 제가 다니던 교회 목사님께서 간암은 일단 생기기만 하면 수술해도 경과가 좋지 않다며 저더러 술을 끊으라고 말씀하셨는걸요.”
“아니, 목사님은 의사가 아니잖아요. 전 의사이니 제 말씀을 들으셔야죠. 지금 환자분께선 ‘부적합한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를 범하고 계시네요.”
“오류요? 무슨 말씀이세요? 꼭 목사님 말씀이 아니더라도 저도 주변에서 많이 봤다고요. 제 당숙도 20년 전 간암으로 돌아가셨고, 우리 회사 상무님 장모도 15년쯤 전 간암으로 돌아가시는 걸 제가 봤다고요.”
“아니죠. 겨우 두 명 보시고 그게 일반화가 가능할까요? 환자분께선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계시네요.”
“또 오류? 의사 선생님, 세상에 간암으로 죽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걸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고 하십니까? 저도 로스쿨 준비하면서 오류에 대해 공부 좀 했다고요.”
“아, 그렇죠. 그럼 그보다는 ‘근시안적 귀납의 오류’를 범하고 계시다고 봐야겠네요. 보통 간암으로 돌아가시는 분들은 환자분보다 상태가 많이 안 좋거나, 의학기술이 지금보다 발달하기 전에 치료받았던 분들일 거예요. 그러니 너무 심려치 마세요. 암 치료에는 무엇보다 환자 자신의 긍정적인 마음가짐이 중요하답니다.”
“긍정적인 마음가짐만으로 어떻게 암을 이겨냅니까? 암이 무슨 감기몸살도 아니고. 의사 선생님께서 그렇게 무책임하게 말씀하시면 안 되죠.”
“환자분께선 지금 ‘의도 확대의 오류’를 범하고 계시네요. 전 긍정적인 마음가짐만으로 암을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치료에서 그게 아주 중요하다는 거죠. 아무튼 환자분께선 마음을 늘 밝게 가지시고요. 오늘부턴 당연히 술 드시면 안 됩니다. 아시겠죠?”
“역시 제가 간암에 걸린 건 술 때문이겠죠? 간암 걸린 사람들은 전부 술 좋아하다가 천벌 받은 거예요.”
“꼭 그렇진 않습니다. 술 안 드시는 분들 중에서도 간암 걸리는 분 많아요.”
“간암 환자 중에 술 안 먹는 사람이 있다곤 해도, 술 먹는 사람은 죄다 간암에 걸리니까 술이 간암의 원인인 건 맞잖아요.”
“술을 좋아한다고 해서 전부 간암에 걸리지는 않죠. 음주는 간암의 충분원인이나 필요원인은 아니에요. 다만 여러 가지 증거로 미루어 ‘확률적 원인’이라고는 볼 수 있죠.”
“그나저나 의사 선생님, 저 같은 상태의 환자들은 생존율이 어느 정도 되나요?”
“생존율이라고요? 환자분의 상태에서 ‘생존율’ 같은 무서운 말은 쓰기가 그렇고요. 이런 경우 보통 ‘완치율’이 80% 이상 되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럼, 선생님께서 직접 치료하신 환자들은 대체로 경과가 어땠나요?”
“제가 환자분 같은 상태의 환자들을 치료한 결과 최근엔 거의 모든 분이 완치되셨습니다.”
“네? 완치율이 80%인데 최근엔 거의 다 완치됐다면, 이제 한 번 정도는 못 고치실 때가 된 거 아닌가요?”
“허허, 환자분. 환자분께선 지금 ‘도박사의 오류’를 범하고 계십니다. 어느 환자든 이런 상태라면 완치율이 80% 정도 된다는 것이니 마음 편히 가지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너무 엄청난 말을 들어선지 술 한잔이 간절하네요. 선생님, 진짜 오늘만 딱 한잔하고 다시는 마시지 않겠습니다. 그 정도는 괜찮겠죠?”
“글쎄요, 저야 의사이니 당연히 안 드시길 바라는데….”
“에이, 딱 보니 선생님도 술 좋아하게 생기셨는걸요. 선생님도 술 드시면서 저한테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죠.”
“환자분, 그건 ‘피장파장의 오류’죠. 제가 술을 마시는 것과 환자분의 상황이 무슨 관련이 있나요?”
“아니, 의사 선생님. 제가 무슨 학생도 아니고 왜 자꾸 말끝마다 오류, 오류 하십니까? 원래 성격이 그러세요? 별것도 아닌 일에 이렇게 잘난 척이 심한 사람의 말을 제가 들어야 합니까? 진단은 옳게 하신 거 맞아요? 다른 병원에 다시 가봐야 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환자분, 제 성격 때문에 진단이 틀렸을 거라 생각하신다면, 그건 ‘인신공격의 오류’를 범하고 계신 겁니다. 진단은 진단이니 의사 말에 따라주세요.”
“오류! 또 오류! 잘났어, 정말. 당신은 오류 안 범해? 당신도 지금 오류를 범하고 있어! 저 혼자 잘난 오류!”
“환자분, 제가 말이 심했다면 사과드립니다. 전 단지….”
화가 난 마 부장은 병원문을 박차고 나왔다. 하지만 그건 잘난 척 심한 의사에게 화가 난 게 아니었다. 의사에겐 벌써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의사에겐 아무 잘못이 없다는 걸 모를 리 없는 그였다. 사실 그가 이토록 화가 났던 건 일밖에 모르고 살아온 자신의 인생, 그리고 자기 하나만 바라보고 사는 가족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다.
“여보세요? 어, 용 과장. 시간 있나? 나랑 만나서 얘기 좀 하지.” 그에겐 오늘 무엇보다 친구가 필요했다.
(합격의 법학원 ‘논리와비판연구소’ 제공, 다음 호에 계속)
“예? 제가요? 어떻게 이런 일이….”
요즘 들어 부쩍 피로를 느끼는 등 몸이 좋지 않아 병원을 찾았던 마장춘 부장은 의사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간암 초기라는 것이다. 그동안 회사생활과 수험생활을 병행해 피곤한 것이려니 하고 꾹 참아온 그였다. 하지만 극도의 피로감에 혹시나 하고 병원을 찾았다가 이런 진단을 받게 된 것이다.
“얼마나 살 수 있나요?”
“아니에요. 초기에 발견됐고, 부위도 괜찮아서 수술 없이 색전술로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니, 세상에! 벌써 수술도 못할 정도인가요?”
“수술도 못하는 게 아니라, 수술을 안 해도 될 정도로 상태가 괜찮다는 말씀입니다.”
“암이라면서요? 세상에 그런 암도 있나요?”
“의학기술이 발달해서 초기에 발견하면 치료할 수 있는 경우가 많아요.”
“설마 암이 그렇게 쉽게 치료될 리가 있나요? 특히 간암이라면 더더욱 그렇겠죠. 예전에 제가 다니던 교회 목사님께서 간암은 일단 생기기만 하면 수술해도 경과가 좋지 않다며 저더러 술을 끊으라고 말씀하셨는걸요.”
“아니, 목사님은 의사가 아니잖아요. 전 의사이니 제 말씀을 들으셔야죠. 지금 환자분께선 ‘부적합한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를 범하고 계시네요.”
“오류요? 무슨 말씀이세요? 꼭 목사님 말씀이 아니더라도 저도 주변에서 많이 봤다고요. 제 당숙도 20년 전 간암으로 돌아가셨고, 우리 회사 상무님 장모도 15년쯤 전 간암으로 돌아가시는 걸 제가 봤다고요.”
“아니죠. 겨우 두 명 보시고 그게 일반화가 가능할까요? 환자분께선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계시네요.”
“또 오류? 의사 선생님, 세상에 간암으로 죽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걸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고 하십니까? 저도 로스쿨 준비하면서 오류에 대해 공부 좀 했다고요.”
“아, 그렇죠. 그럼 그보다는 ‘근시안적 귀납의 오류’를 범하고 계시다고 봐야겠네요. 보통 간암으로 돌아가시는 분들은 환자분보다 상태가 많이 안 좋거나, 의학기술이 지금보다 발달하기 전에 치료받았던 분들일 거예요. 그러니 너무 심려치 마세요. 암 치료에는 무엇보다 환자 자신의 긍정적인 마음가짐이 중요하답니다.”
“긍정적인 마음가짐만으로 어떻게 암을 이겨냅니까? 암이 무슨 감기몸살도 아니고. 의사 선생님께서 그렇게 무책임하게 말씀하시면 안 되죠.”
“환자분께선 지금 ‘의도 확대의 오류’를 범하고 계시네요. 전 긍정적인 마음가짐만으로 암을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치료에서 그게 아주 중요하다는 거죠. 아무튼 환자분께선 마음을 늘 밝게 가지시고요. 오늘부턴 당연히 술 드시면 안 됩니다. 아시겠죠?”
“역시 제가 간암에 걸린 건 술 때문이겠죠? 간암 걸린 사람들은 전부 술 좋아하다가 천벌 받은 거예요.”
“꼭 그렇진 않습니다. 술 안 드시는 분들 중에서도 간암 걸리는 분 많아요.”
“간암 환자 중에 술 안 먹는 사람이 있다곤 해도, 술 먹는 사람은 죄다 간암에 걸리니까 술이 간암의 원인인 건 맞잖아요.”
“술을 좋아한다고 해서 전부 간암에 걸리지는 않죠. 음주는 간암의 충분원인이나 필요원인은 아니에요. 다만 여러 가지 증거로 미루어 ‘확률적 원인’이라고는 볼 수 있죠.”
“그나저나 의사 선생님, 저 같은 상태의 환자들은 생존율이 어느 정도 되나요?”
“생존율이라고요? 환자분의 상태에서 ‘생존율’ 같은 무서운 말은 쓰기가 그렇고요. 이런 경우 보통 ‘완치율’이 80% 이상 되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럼, 선생님께서 직접 치료하신 환자들은 대체로 경과가 어땠나요?”
“제가 환자분 같은 상태의 환자들을 치료한 결과 최근엔 거의 모든 분이 완치되셨습니다.”
“네? 완치율이 80%인데 최근엔 거의 다 완치됐다면, 이제 한 번 정도는 못 고치실 때가 된 거 아닌가요?”
“허허, 환자분. 환자분께선 지금 ‘도박사의 오류’를 범하고 계십니다. 어느 환자든 이런 상태라면 완치율이 80% 정도 된다는 것이니 마음 편히 가지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너무 엄청난 말을 들어선지 술 한잔이 간절하네요. 선생님, 진짜 오늘만 딱 한잔하고 다시는 마시지 않겠습니다. 그 정도는 괜찮겠죠?”
“글쎄요, 저야 의사이니 당연히 안 드시길 바라는데….”
“에이, 딱 보니 선생님도 술 좋아하게 생기셨는걸요. 선생님도 술 드시면서 저한테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죠.”
“환자분, 그건 ‘피장파장의 오류’죠. 제가 술을 마시는 것과 환자분의 상황이 무슨 관련이 있나요?”
“아니, 의사 선생님. 제가 무슨 학생도 아니고 왜 자꾸 말끝마다 오류, 오류 하십니까? 원래 성격이 그러세요? 별것도 아닌 일에 이렇게 잘난 척이 심한 사람의 말을 제가 들어야 합니까? 진단은 옳게 하신 거 맞아요? 다른 병원에 다시 가봐야 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환자분, 제 성격 때문에 진단이 틀렸을 거라 생각하신다면, 그건 ‘인신공격의 오류’를 범하고 계신 겁니다. 진단은 진단이니 의사 말에 따라주세요.”
“오류! 또 오류! 잘났어, 정말. 당신은 오류 안 범해? 당신도 지금 오류를 범하고 있어! 저 혼자 잘난 오류!”
“환자분, 제가 말이 심했다면 사과드립니다. 전 단지….”
화가 난 마 부장은 병원문을 박차고 나왔다. 하지만 그건 잘난 척 심한 의사에게 화가 난 게 아니었다. 의사에겐 벌써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의사에겐 아무 잘못이 없다는 걸 모를 리 없는 그였다. 사실 그가 이토록 화가 났던 건 일밖에 모르고 살아온 자신의 인생, 그리고 자기 하나만 바라보고 사는 가족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다.
“여보세요? 어, 용 과장. 시간 있나? 나랑 만나서 얘기 좀 하지.” 그에겐 오늘 무엇보다 친구가 필요했다.
(합격의 법학원 ‘논리와비판연구소’ 제공,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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