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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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벌은 ‘큰돈’과는 별 상관이 없다

자녀 보딩스쿨 보내려는 부자들의 절반은 학력 낮아

  • 최성락 경영학 박사

    입력2025-04-05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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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문학적 학비가 드는 미국 보딩스쿨에 자녀를 보내려는 부모가 진짜 부자다. [GETTYIMAGES]

    천문학적 학비가 드는 미국 보딩스쿨에 자녀를 보내려는 부모가 진짜 부자다. [GETTYIMAGES]

    지인이 강남 학원에서 일을 하고 있다. 일반적인 중고생 입시학원이 아니라 미국 보딩스쿨(boarding school)을 준비하는 학원이다. 보딩스쿨은 학생들이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학업을 수행하는 사립학교다. 좋은 보딩스쿨은 소위 아이비리그로 불리는 미국 명문대 입학률이 높아 세계적으로도 지명도가 있다. 한국 대학이 아니라 미국 명문대에 들어가려는 학생들이 보딩스쿨에 지원한다.

    보딩스쿨에 입학하려면 GPA(내신)는 물론, SSAT(미국 사립 중고등학교 입학 시험), 토플 점수도 높아야 한다. 이뿐 아니라 에세이도 잘 써야 하고 인터뷰도 인상적이어야 한다. 한국은 사교육이 발달한 나라다. 당연히 보딩스쿨 준비를 돕는 학원이 많다.

    “부모 학력 꼭 써야 하나요”

    보딩스쿨 준비반 학원비는 굉장히 비싸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입시학원비가 비싸다고 하지만 보딩스쿨 준비반은 단위 자체가 다르다. 그리고 보딩스쿨 준비반은 단순히 학원비만 부담한다고 해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보딩스쿨에 합격하면 미국에서 보딩스쿨을 다녀야 한다. 보딩스쿨 학비는 천문학적이다. 현지 생활비까지 고려하면 부모가 연 1억 원 이상을 부담할 능력이 돼야 한다. 

    보딩스쿨에 다니면서 미국 교육과정을 밟는 사람이 대입 시점에 한국 수능(대학수학능력시험)을 볼 수는 없다. 고등학교, 대학교를 모두 미국에서 다니려면 몇억 원 갖고는 어림도 없다. 자녀 교육에 최소 10억 원 이상 투자가 가능한 부모만 보딩스쿨을 선택지로 삼을 수 있다. 즉 자녀를 보딩스쿨 준비반에 보내는 사람이 진짜 부자다. 부자인 척하는 사람은 보딩스쿨을 엄두조차 낼 수 없다.

    한국은 대학 등에 입학지원서를 낼 때 부모 학력을 쓰지 않는다. 그런데 대다수 미국 보딩스쿨은 부모의 학력 정보를 요구한다. 단순히 대졸, 고졸 같은 학력 정보가 아니라 정확히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학교 이름까지 요구한다. 미국은 신용 사회다. 거짓말을 했다가 들통나면 엄청난 불이익을 받는다. 보딩스쿨에 합격해도 이 정보가 거짓이라는 게 밝혀지면 합격이 취소될 가능성이 크다. 입학지원서에는 부모의 진짜 학력을 적어야 한다. 



    보딩스쿨 준비반에서 일하는 지인이 놀란 건 이 부모의 학력 난을 채우면서다. 학부모 학력을 보면 우리가 흔히 아는 ‘좋은 대학’을 나온 사람이 반이라고 한다.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의사, 변호사 등 좋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다. 좋은 대학 나와 좋은 직업을 가졌으니 당연히 돈도 많이 벌 테고, 그러니 아이를 보딩스쿨에 보내려 한다. 여기까지는 일반 상식에 맞는다. 문제는 나머지 반이다.

    보딩스쿨 입학지원서에 부모 학력을 써야 한다고 안내하면 제대로 답하지 않는 학부모들이다. “꼭 써야 하냐”거나 “안 쓰면 안 되냐”고 되묻는다. “어느 학교인지 쓰지 않고 그냥 대학을 나왔다고만 하면 안 되냐”고 한다. 반드시 정확히 써야 한다고, 그러지 않으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하면 그제야 학교 이름을 얘기하는데, 그중 상당수가 듣도 보도 못 한 학교 이름을 대고, 대학이 아니라 전문대를 얘기하며, 심지어 ‘고졸’이라는 사람도 많단다. 그런 학부모가 절반이다.

    이런 학부모들은 학원 직원에게 신신당부를 한다. “우리 아이가 절대 알지 못하게 해달라” “서류에 적은 뒤 곧바로 자료를 삭제해달라”고 부탁한다. 보딩스쿨에 지원하는 아이는 자기 부모가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 대학을 나오기는 했는지 알지 못한다. 아마 아이는 자기 부모가 좋은 대학을 나왔다고 알고 있을 것이다.

    사회적 지위는 중산층과 관련

    어쨌든 내 지인이 놀란 건 ‘학벌이 좋은 것’과 ‘부자가 되는 것’은 큰 상관이 없다는 점 때문이다. 자녀를 보딩스쿨에 보내고 미국 대학에 다니게 하려는 부모는 진짜 부자다. 그런데 그 부자들 학벌이 그리 좋지 않다. 좋은 대학을 나와 좋은 직장에 다니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서 부자가 된 사람도 많았다. 그들 직업은 보통 사장, 대표이사다. 유명 기업 사장이 아니라, 거의 들어본 적 없는 회사 사장이 대부분이다. 지인은 그동안 좋은 대학을 나와 좋은 회사에 다녀야 부자로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러지 않아도 충분히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이 얘기를 듣다 보니 오래전 한 전문대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이 학교는 졸업생 동문회를 활성화하려 했다. 졸업생 가운데 소위 성공한 사람들에게 ‘자랑스러운 졸업생’이라는 명예를 주고 그들을 모아 동문회를 결성하려 했다. 졸업 후 출세하거나 사업에 성공한 사람이 적잖았고, 수소문해 학교 명의의 우편물을 보냈다.

    그런데 의외의 반응이 나왔다. 이런 걸 집으로 보내면 어떻게 하느냐고 난리가 났다. 가족에게 자신이 전문대 출신이라는 사실을 비밀로 했던 것이다. 배우자가 모르는 경우도 있고, 배우자는 알아도 자식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전문대를 나오기는 했지만 그동안 다른 좋은 대학에 편입해 졸업했거나 최소한 좋은 대학 대학원의 최고경영자 과정 등을 수료해 그 대학을 나왔다고 얘기하면서 다녔다. 그런데 전문대 졸업생이라며 우편물이 날아오다니, 잘못하면 이혼을 당할 수도 있다. 결국 이 학교는 성공한 졸업생을 모아 동문회를 활성화하려는 계획을 접어야 했다.  

    졸업생들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는 얘기하지 않았다. 학력 세탁을 했다면 좋은 대학 출신이라고 얘기하면서 다녔다. 그러니 일반 사람, 특히 학생은 좋은 대학을 나와야만 잘된다고 생각한다. 학벌과 관계없이 성공하고 잘살게 된 사람들 얘기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미국 저널리스트인 데이비드 브룩스는 자신의 베스트셀러 ‘보보스(Bobos)’에서 현대 사회의 특성 중 하나가 ‘사회적 지위와 소득의 불균형’이라고 분석했다. 일반적으로 사회적 지위가 높으면 돈도 많이 벌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위 공무원, 법조인, 교수 등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이 부자라고 본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이런 사회적 지위와 소득은 비례관계가 아니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이 중산층은 될 수 있다. 그러나 정말로 돈이 많은 부자는 이들이 아니다. 사업가, 성공한 자영업자가 진정한 부자다.

    피터 린치 “알짜 기업 따로 있다”

    한국의 직업별 소득 수준을 살펴보면 의사, 변호사, 비행기 조종사, 회계사 등이 고소득 직업에 해당한다. 이런 직업을 갖고 성공하려면 좋은 대학을 나와야 한다. 그래서 학벌이 좋아야 성공한다는 인식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진짜 소득이 높은 사람은 사업가다. 물론 모든 사업가가 돈을 잘 버는 건 아니다. 돈을 못 버는 사업가도 많다. 하지만 성공한 사업가는 소득 수준이 압도적으로 높다. 그리고 사업으로 돈을 버는 일에는 학력이 그리 중요치 않다. 보딩스쿨을 준비하는 학생들의 부모 절반은 학벌이 별로인 사람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투자자 피터 린치는 돈을 많이 버는 진정한 알짜 기업은 유명 대기업이 아니라고 했다. 대기업이 돈을 많이 벌기는 하지만 자본금, 직원 수 등을 고려하면 수익이 그리 많지 않으며 알짜 기업은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알려지지 않은 기업 가운데 있다는 것이다. 폐기물 처리업, 청소업, 장례 운영업 등은 멋있지 않고 지원자가 몰려들지도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 생활에 꼭 필요하고, 지속적으로 수요가 발생한다. 큰 수익은 이런 사업에서 나온다. 이런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은 대체로 명문대 출신이 아니다. 명문대 출신은 화려한 대기업에만 지원하려 한다. 린치는 유명하고 화려한 대기업보다 이런 알짜 기업을 찾아 투자하라고 권했다.

    좋은 대학을 나오고 좋은 직장을 가져야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생각지 말자. 그런 사람도 있지만, 학력이 낮고 보기에 좋지 않은 직업임에도 큰돈을 버는 경우가 충분히 많다. 학벌 위주의 한국 사회 특성상 이런 경우가 잘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학벌은 중산층과 연관이 있다. 하지만 큰돈과는 별 상관이 없다. 그게 진실에 더 가깝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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