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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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식 없는 미술관 ‘PS1의 명성’

  • 뉴욕=박준 자유기고가

    입력2006-11-22 17: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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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격식 없는 미술관 ‘PS1의 명성’

    윌리엄 켄트리지의 작품 ‘Stair Procession’.

    ‘미술관’ 하면 당신은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는가? 아마도 낡고 녹슬었으며 페인트는 벗겨져 있고 벽은 오래돼 쩍쩍 갈라진 모습은 아닐 것이다.

    퀸즈 롱아일랜드시티에 폐교로 방치돼 있던 공립학교를 개조해 미술관으로 만든 PS1 현대아트센터(Contemporary Art Center)가 있다. 사람들이 PS1이라고 줄여 부르는 이곳은 숨 막히게 격식을 따지는 미술관이 아니다. 완전히 채워진 채 나 잘났다고 유세를 떨지도 않는다.

    매표소 옆에는 큰 칠판에 미술관 안내도면이 그려져 있고, 끼적거리듯 써놓은 전시장 설명은 아이들 낙서 같다. 창고로나 쓸 법한 낡은 폐교를 그럭저럭 개조하긴 했지만, 여전히 어둡고 좁은 계단을 촘촘한 철사그물로 가로막아 놓은 모습을 보면 도대체 무슨 미술관이 이 모양이냐고 푸념할 수도 있다.

    작가의 이름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작품도 유심히 찾아보지 않으면 놓치기 십상이다. 주렁주렁 매달린 소화전 호스 옆의 하얀색 칠판 위에 검은색 분필로 그림을 그려놓은 듯한 작품이 나란히 놓여 있다.

    PS1을 쓱 한 번 돌아보고 나서야 소화전 호스 옆 그림이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인 윌리엄 켄트리지의 작품이란 사실을 알게 됐다. 그의 작품이란 표시는 유리문 위에 슬쩍 써놓은 그의 이름과 ‘Stair Procession(계단의 행렬)’이란 작품명, 제작연도가 전부다. 작품 설명 따위는 없다. 이런 불친절함이 오히려 자유분방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이 같은 격식 없음이 미술관을 생기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화장실 문 위의 모니터에는 흰색 러닝셔츠를 입은 채 나란히 소변기 앞에 서 있는 남자와 좌변기에 앉아 있는 남자가 보인다. 작품이란 생각도 좀처럼 들지 않는다. 그래서 PS1이 좀더 만만하게 느껴진다. 어려운 미술관이 아니라 친구 작업실에 놀러 온 것 같다. PS1을 돌아보고 있으면 여기저기에서 끊임없이 슬금슬금 장난을 걸어온다. PS1은 현대미술관으로는 이례적으로 인터넷 라디오 방송(www.wps1.org)을 하고 있는데, 흘러나오는 음악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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