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에트 라이프 잡지 표지에 실린 로드첸코의 1944년 작품.
“더 이상 회화는 없다”고 말한 그는 사진으로 산업적인 이미지나 환상적인 이미지를 구현할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그의 작품은 때로 강한 정치색을 띠었으며, 그중 일부는 소비에트 공화국의 문화운동 포스터에 쓰이기도 했다.
사회주의 사회를 살아온 그의 작품은 자본주의와는 다른 독특함으로 우선 시선을 끈다. 지하철 역사 가득 나붙은 파리 현대미술관의 로드첸코 전시 포스터가 수집품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것도 그 독특함 때문이다.
한때 이데올로기나 정치적 차이로 사회에서 금기시됐던 아티스트나 정치적 상징들이 버젓이 미술시장에 등장하고 유명 박물관에 전시되는 것을 보면 묘한 느낌이 든다. 구 소비에트 공화국의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가 너무도 많은 나머지 최근에는 “차세대 미술시장은 러시아다”라는 말이 공공연히 돌 정도다.
이에 맞춰 최근 러시아 미술에 대한 이해서나 논문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마오쩌둥이나 체 게바라, 스탈린과 레닌의 초상화나 일러스트는 너무나 유명해서 이들이 더는 정치적인 인물이 아니라는 생각마저 든다. 심지어 길거리에서 파는 티셔츠에도 이들의 일러스트가 새겨져 있다.
정치색이 사라진 초상화들은 이색적이고 현장성이 가미된 이미지가 돼 팔려나간다. 씁쓸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작가들이 재평가를 받는 것 같아 기쁘기도 하다.
우리도 통일이 된다면, 수많은 월북 작가의 알려지지 않은 행보와 그들이 남긴 작품을 보게 되지 않을까. 서울의 갤러리와 경매장에 그들의 작품이 오르는 그날은 언제쯤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