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후보자’
한 가지 더 덧붙인다면 이미지에 홀린 선택은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마련이라는 사실이다.
정치학자 알렉시스 토크빌은 일찍이 100여 년 전 미국을 돌아보고 “미국에서 (선출직) 정치인은 대중보다 조금 높은 수준의 지적 역량만 갖추면 된다”고 말했다. 토크빌이 당시 미국 정치문화를 폄훼하려고 이렇게 말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말 속에는 종종 (어쩌면 대부분) 대중이 현명한 선택을 하기 어려운 현대민주주의의 맹점에 대한 통찰이 들어 있다. 특정 정치인의 ‘전모’가 아닌 그의 이미지만 보고 판단하는 대중의 행태는 토크빌이 관찰한 미국뿐 아니라 어느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마이클 리치의 1972년 작품 ‘대통령 후보자’ 역시 미국만의 얘기로 볼 수 없다. 현대 대통령선거의 이면을 비꼰 이 작품은 70년대 사회 비판적인 시각을 보여준 마이클 리치 감독이 자신의 이름을 알린 첫 영화다. 영화는 감독 자신처럼 하버드대학을 나온, 잘생겼지만 비범하진 못한 젊은이가 우여곡절 끝에 대통령 후보가 되는 과정을 그린다. 무료 법률상담을 하는 젊은 변호사가 얼떨결에 주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한다. 그는 솔직하고 참신한 유세로 각광받는데, 그의 정치적 ‘상품성’을 발견한 선거 전문가들의 도움으로 상원의원에 당선되고 일약 전국적 인물로 부상한다.
주인공으로 로버트 레드포드라는 미남 배우를 쓴 데서 감독의 의도가 보인다. 혹독한 정치적 훈련과 숙고를 통해 성장해야 할 정치인이 매력적인 미소, TV 화면에 잘 받는 얼굴을 무기로 급성장한다. 그러나 이를 주인공만의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더 비난받아야 할 것은 현대 매스미디어의 선정주의적 생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혹은 올바른 판단을 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대중의 저급한 정치의식일 것이다.
아베가 탄탄대로를 걸어 총리가 된 것도 앞뒤 안 가리고 그를 좋아한 일본인의 미숙한 의식 탓이었다.
어떤 영화배우가 더 잘생겼는지 뽑는 정도라면 선택을 잘못하더라도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실패의 ‘기회비용’도 그리 크지 않다. 그러나 총리나 대통령을 뽑는 것은 이야기가 다르다. 한번 잘못 선택하면 그 피해는 국민이 입는다. 한국인도 지금 그 어려운 숙제를 받아들고 있는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