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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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사 확정된 동물보호센터 유기견, 수의대 기증은 어떤가요

[이학범의 펫폴리] 매년 수만 마리 안락사… 기증으로 실험동물 수 줄이기 가능

  • 이학범 수의사·데일리벳 대표

    입력2025-02-04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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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려동물 인구 1500만 시대. 반려동물과 행복한 동행을 위해 관련법 및 제도가 점점 진화하고 있다. ‘멍냥 집사’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반려동물(pet)+정책(policy)’을 이학범 수의사가 알기 쉽게 정리해준다.
    실습견 구입 예산이 부족해 해부학 실습을 못 하는 수의대가 있다는 사실, 알고 있나요? 최근 ‘수의학교육 평가인증기준’(3주기)에는 “해부학 및 임상실습을 위한 실습견(비글견) 예산을 확보하고 있다”는 내용이 새로 추가됐습니다.

    비글은 사람을 좋아하고 낙천적인 데다 참을성도 강해 실습용으로 선호되는 견종입니다. 실습용 비글 구매 가격은 마리당 250만~300만 원 수준이죠. 문제는 전국 10개 수의대 중 7개 대학 등록금(본과 1학년 기준)이 200만 원대로, 예산이 매우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대학 본부의 별도 지원을 받지 못한 수의대는 실습견을 제대로 수급하기 어렵습니다. 이 때문에 아예 해부 실습을 진행하지 못하거나 십수 명의 학생이 카데바(해부용 시신) 1마리로 실습하기도 합니다. 해부 실습은 수의학 교육의 기본이라는 점에서 큰 문제죠. 수의대생이 해부 실습을 제대로 못 한 채 수의사가 된다면 아픈 반려동물이 피해를 볼 수 있습니다.

    실습견 부족으로 수의대 교육 질 저하 우려

    2023년 한 해 동안 한국에서 발생한 유실·유기동물은 총 11만3072마리입니다(표 참조). 전국 228개 지방자치단체 동물보호센터에 입소된 개체 수입니다. 그중 개가 8만467마리(71.2%)로 가장 많았고, 고양이 3만889마리(27.3%), 기타 동물(토끼, 햄스터 등) 1716마리였습니다.

    지자체 동물보호센터에 입소한 유기동물 상당수는 안락사됩니다. “불쌍한 유기동물을 왜 안락사하느냐”는 얘기가 있는데, 센터 공간에는 한계가 있고 운영비에 세금을 무한정 투입할 수도 없다 보니 입양되지 않은 개체를 사망할 때까지 데리고 있는 건 불가능합니다. 동물보호법에 따라 유기동물 공고를 낸 뒤 열흘이 지나면 지자체 동물보호센터로 소유권이 넘어가고, 이후부턴 센터에서 안락사할 수 있죠. 2023년 기준 동물보호센터의 유기동물 평균 보호 기간은 27.8일이었습니다.

    2023년 유기견 8만467마리 중 안락사(인도적 처리)된 개체는 1만9065마리입니다. 유기견을 안락사하고, 사체를 처리하는 비용은 모두 세금으로 충당합니다. 동물보호법에 따라 동물보호센터는 동물 사체를 폐기물관리법에 따라 처리하거나 동물장묘시설(동물장례식장)에서 화장해야 하는데, 동물장묘시설에서 사체를 화장하는 비용은 마리당 수십만 원 수준입니다. 2023년 유기동물 관리에 투입된 세금은 373억9000만 원으로 전년(294억8000만 원) 대비 26.8% 증가했습니다. 멀쩡히 살아 있는 동물을 자기 손으로 안락사해야 하는 동물보호센터 수의사의 정신적 고통도 큰 문제입니다. 동물보호센터에서 근무하던 수의사가 안락사에 대한 죄책감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일도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수의사들은 동물보호센터 지원을 꺼리고 유기동물은 더더욱 관리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죠.

    만약 안락사가 확정된 유기견을 수의대에 기증한다면 안락사 후 사체를 처리하는 데 들어가는 세금을 아끼고, 수의사의 정신적 고통도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안락사되는 유기견 외에 자연사한 유기견(2023년 기준 1만4055마리)과 안락사·자연사 유기묘(1만8037마리)까지 고려하면 수의대 실습은 물론, 수의사 재교육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워낙 합법적 실습견·카데바 활용이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들다 보니 수의사 중 일부는 아예 해외로 나가 실습 교육을 받는 게 현실입니다.

    동물권 보장을 위한 3R 원칙

    서울대 수의과대학 수혼비(獸魂碑) 앞에서 전체 교수와 학생이 참여한 가운데 수혼제(獸魂祭)가 진행되고 있다. [이학범 제공]

    서울대 수의과대학 수혼비(獸魂碑) 앞에서 전체 교수와 학생이 참여한 가운데 수혼제(獸魂祭)가 진행되고 있다. [이학범 제공]

    문제는 “아무리 버려졌다곤 해도 유기동물을 함부로 실습에 사용해도 되느냐”는 시각입니다. “유기동물도 동물권이 있고 사체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현행 동물보호법은 유실·유기동물, 봉사동물(사역견)을 대상으로 한 실험을 금지하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매년 수만 마리 유기동물이 안락사되는 가운데 수의대에서는 실습을 위해 멀쩡한 동물(실험동물)을 구매하고 심지어 해부를 위해 안락사까지 시켜야 하는 것이 동물복지·동물권에 도움이 되는 상황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또 불충분한 교육을 받은 수의사가 아픈 반려동물을 치료하고 수술하는 게 오히려 동물복지·동물권에 위배되는 일은 아닐까요.

    실험동물 복지를 위한 ‘3R 원칙’이 있습니다. △동물실험을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Replacement) △실험에 사용되는 동물 수를 줄이는 것(Reduction) △실험동물의 고통을 최소화하는 것(Refinement)입니다. 안락사 대상인 유기동물을 수의대에 기증한다면 실험동물 수를 직접적으로 줄일 수 있어 3R 원칙에 부합합니다.

    전국 모든 수의대에는 수혼비(獸魂碑)가 있습니다. 세상을 떠난 동물의 넋을 위로하는 비석이죠. 각 수의대는 매년 수혼비 앞에서 실험동물의 넋을 기리는 수혼제(獸魂祭)를 지냅니다. 수의대 학생들이 유기견이라고 해서 다른 실습견에 비해 함부로 대할 가능성은 적습니다. 오히려 유기동물을 실습에 활용함으로써 생명의 존엄성을 배우고, 동물실험의 3R 원칙을 한 번 더 되새길 수 있을 것입니다. 동물의 불필요한 희생을 줄이고, 세금을 아끼며, 수의대 교육과정을 체계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안락사되는 유기동물을 실습에 합법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법 개정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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