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가 흐르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 [CJ ENM 제공]](https://dimg.donga.com/a/700/0/90/5/ugc/CDB/WEEKLY/Article/67/92/f7/c9/6792f7c91627d2738276.jpg)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가 흐르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 [CJ ENM 제공]
말러의 음악은 늘 극단적인 대조 속에서 이야기를 만든다. 그의 교향곡 5번도 그렇다. 3악장 ‘스케르초’는 ‘죽음의 춤’으로 불리는데 말러는 이를 두고 “우리는 삶 속에서도 죽음 가운데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이 곡은 우리의 삶이 겉으로는 행복해 보여도 항상 시간과 죽음이라는 그림자가 따라다닌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어지는 4악장 ‘아다지에토’는 이러한 죽음의 추격을 넘어 사랑과 로맨스의 선율을 펼쳐낸다. 한마디로 말러의 음악은 마치 우리 삶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다. 고통과 아름다움이 얽혀 있는, 복잡하지만 완전한 이야기처럼.
음악으로 질문을 던지는 ‘철학자’ 말러
![19세기 후기 낭만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구스타프 말러(1860~1911). [GettyImages]](https://dimg.donga.com/ugc/CDB/WEEKLY/Article/67/92/f7/f7/6792f7f708e4d2738276.jpg)
19세기 후기 낭만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구스타프 말러(1860~1911). [GettyImages]
말러의 사랑 역시 평탄치 않았으며 그의 음악과 깊이 얽혀 있다. 그가 함부르크와 빈에서 지휘 활동을 하던 시절 여러 연인과의 관계가 실패로 끝났고, 이는 초기 작품 ‘비탄의 노래’(1880), 가곡집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1884), 그리고 ‘1번 교향곡’(1884~1888)에 반영됐다. 이후 알마 쉰들러와 결혼했지만, 딸 마리아의 죽음과 말러의 건강 악화로 그들의 관계는 여러 번 위기를 겪었다.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는 알마를 향한 그의 사랑과 고독이 담긴 작품으로, 말러의 개인적인 감정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한 곡이라고 할 수 있다.
말러는 단순한 작곡가가 아니다. 그는 자신의 음악을 통해 우리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삶의 본질은 무엇인가. 우리는 왜 이렇게 고통을 겪는가. 이 모든 것이 끝났을 때 무엇이 남을까.” 그의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이러한 질문과 마주하는 경험이다.
말러는 바쁜 지휘 활동 중에도 교향곡을 11개나 남겼다. 그는 스스로를 ‘휴가 작곡가’라고 부를 만큼 여름휴가 때만 작곡할 시간이 있었지만, 그 제한된 시간은 그의 예술을 더욱 짙게 만들었다. 마치 한정된 시간에 가장 빛나는 보석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말러는 스승이자 친구로 존경했던 안톤 브루크너(1824~1896)와의 관계를 이렇게 표현했다. “브루크너와의 교류는 예술가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나의 발전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나는 스스로를 그의 제자라 부르고 싶다.” 브루크너와 말러는 모두 교향곡을 새로운 형태로 발전시켰지만, 그들의 음악적 성격은 대조적이다. 브루크너의 멜로디에서 경건함과 평온함을 찾을 수 있다면, 말러의 음악에서는 고통과 갈망, 삶의 본질에 대한 질문이 느껴진다. 제자 브루노 발터는 이 차이를 이렇게 묘사했다.
“브루크너는 이미 신을 찾았고, 말러는 끊임없이 신을 찾고 있다!”
음악을 넘어, 인생을 이해하고 사유하는 도구
말러는 단순한 작곡가가 아니라 삶과 죽음을 탐구한 예술가다. 그의 교향곡은 성악과 기악의 경계를 허물어 삶과 예술을 아우르는 포괄적 세계관을 음악으로 풀어냈다. 예를 들어 교향곡 2번 ‘부활’은 죽음과 부활이라는 주제를 웅장한 오케스트라와 성악으로 표현했고, 가곡집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는 일상적 주제와 철학적 질문을 넘나들며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의 교향곡 9번은 고별의 음악으로 알려져 있다. 첫 악장에서 들려오는 멜로디는 마치 죽음을 준비하는 작곡가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듯하며, 마지막 악장 ‘아다지오’는 서서히 멀어져 가는 생명의 불꽃을 묘사한다. 그의 음악은 인간적 고통과 죽음에 대한 공포, 신과 인간의 본질적 문제를 다룬 기록이자 구원의 여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말러의 음악은 지금도 우리 마음을 움직인다. 그의 교향곡은 듣는 이로 하여금 삶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고, 우리 각자의 이야기를 음악에 투영하게 만든다. 말러는 우리 모두가 삶이라는 무대의 주인공임을 음악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말러의 교향곡은 단순히 클래식 음악을 넘어 인생을 이해하고 사유하는 도구다. 그의 음악을 들으면서 우리는 삶의 고통과 기쁨, 사랑과 고독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 말러는 그야말로 음악으로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만들어낸 천재다.
김재준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민대 경상대학장, 국민대 도서관장과 박물관장, 한국예술경영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국민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