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부터 2020년까지 30년간은 ‘범용 연산력’을 바탕으로 한 중앙처리장치(CPU)가 컴퓨팅 분야를 이끌었다. CPU는 컴퓨터와 서버의 성능을 높여 누구나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인터넷 세상을 열었다.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등 일상에 깊게 파고든 인터넷 서비스들은 CPU 덕분에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2020년부터는 ‘병렬 연산’에 특화된 그래픽처리장치(GPU)가 부상했다. 이는 인공지능(AI)이라는 새로운 지능화 서비스의 토대가 됐다. 자율주행차, 음성 인식, 이미지 분석 같은 AI 신기술은 GPU를 기반으로 빠르게 진보했다. GPU는 이제 챗GPT를 대표로 하는 새로운 AI 시대를 열고 있다.
최근에는 클라우드 의존성을 낮추는 신경망처리장치(Neural Processing Unit·NPU)가 등장해 온디바이스(On-Device) AI를 가능케 했다. 스마트폰과 개인용 컴퓨터(PC)에 NPU를 탑재함으로써 사용자의 데이터를 클라우드로 전송하지 않고 기기 자체에서 분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데이터를 클라우드로 전송하는 과정을 생략하면 번역, 이미지 개선 같은 AI 기능을 지연 없이 실시간으로 구현할 수 있다. CPU의 명성을 서버 분야에서는 GPU, 디바이스 분야에서는 NPU가 각각 이어받은 셈이다.
![구글이 지난해 12월 공개한 새로운 양자처리장치(QPU) ‘윌로’. [구글 제공]](https://dimg.donga.com/ugc/CDB/WEEKLY/Article/67/92/fd/b3/6792fdb3082ad2738250.jpg)
지난해 12월 구글은 ‘윌로(Willow)’로 불리는 새 QPU를 발표했다. 윌로는 기존 슈퍼컴퓨터로 수십억 년이 걸리는 연산을 5분 만에 처리하는 혁신적인 성능을 갖고 있다. 양자역학 원리를 활용한 덕분이다. 기존 프로세서는 0 혹은 1 값을 갖는 이진법으로 연산을 수행한다. 반면 QPU는 0과 1 상태를 동시에 가질 수 있는 ‘중첩’과 여러 상태가 서로 얽혀 있는 ‘얽힘’이라는 양자역학 원리를 이용해 복잡한 계산을 병렬적으로 수행한다.
CPU나 GPU의 현 연산 성능 수준으로는 복잡한 인간 만사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기후 예측, 기후변화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량 예측, 효율적인 에너지 수요 감축 방안 마련, 최적의 에너지 그리드 운영 방안 마련, 난치병 치료를 위한 신약 개발 등의 문제는 수많은 변수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기존 컴퓨팅으로는 실질적인 해법을 도출하기 어렵다. 금융 포트폴리오 최적화 및 리스크 관리, 실시간 물류 배송 경로 최적화, 제품 가격과 재고 예측 역시 마찬가지다. 이것들은 아직까지 기업 경영자의 복잡한 의사결정 문제로 남아 있다. 알파고 이전 기술로는 기계가 인간 프로바둑기사를 절대 이길 수 없었던 것과 같다.
QPU는 CPU나 GPU로는 풀 수 없는 이런 초고난도 문제를 해결할 잠재력을 갖고 있다. QPU의 강력한 연산 능력과 중첩, 얽힘 등 양자역학적 특성을 활용하면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정교한 해법이나 최적화 결과를 짧은 시간 안에 도출할 수 있다. 인류가 직면한 환경, 자원, 의료 문제 해결에 새로운 전기가 열리는 것이다. 또한 기업은 막연히 ‘불가능’이라고 여기던 영역에서 혁신적인 비즈니스 기회를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QPU 활용에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우선 양자컴퓨터는 외부의 열, 전자기파, 진동 같은 간섭에 취약하다. 오류가 쉽게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상용화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일부 전문가는 상용화가 아예 불가능하다고 얘기하기도 한다. 또 양자컴퓨팅으로 기존 암호체계가 무력화될 수 있어 보안체계를 재정립해야 하는 근본적 문제도 발생한다. 초기 QPU 인프라 구축에 막대한 비용이 든다는 점, 단기간에 숙련된 전문 인력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점 등도 주요 문제다. QPU 관련 기술을 특정 기업이 선점하거나, 국가가 시장을 독점하는 등의 방법으로 기술 격차를 벌리면 산업 구조와 글로벌 경쟁 환경의 ‘기술 양극화’가 심화할 수도 있다. QPU는 무한한 가능성과 해결해야 할 과제를 동시에 안고 있는 미래 기술인 셈이다.
CPU 기반의 정보 혁명과 GPU·NPU 기반의 AI 혁신을 넘어 가까운 미래에는 QPU 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보인다. QPU 시대에 인류는 모든 산업 분야의 판도가 바뀌는 모습을 경험할 것이다. 소수 국가와 연구기관·기업만이 양자컴퓨팅 기술을 활용할 가능성이 큰 만큼 국가와 기업은 경쟁력 제고를 위해 QPU에 긴 호흡으로 정책적·전략적 투자를 이어가야 한다. 특히 정부는 차세대 QPU 알고리즘 연구와 양자컴퓨팅 전문 인력 양성 및 인프라 구축에 선제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양자 내성 암호 개발과 프로토콜 표준화를 지원함으로써 양자컴퓨팅 기술이 안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 기업, 대학, 연구기관 등은 생태계 전반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기술 양극화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 기업과 대학, 연구기관이 서로 협력하는 개방형 혁신을 꾀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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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부터는 ‘병렬 연산’에 특화된 그래픽처리장치(GPU)가 부상했다. 이는 인공지능(AI)이라는 새로운 지능화 서비스의 토대가 됐다. 자율주행차, 음성 인식, 이미지 분석 같은 AI 신기술은 GPU를 기반으로 빠르게 진보했다. GPU는 이제 챗GPT를 대표로 하는 새로운 AI 시대를 열고 있다.
최근에는 클라우드 의존성을 낮추는 신경망처리장치(Neural Processing Unit·NPU)가 등장해 온디바이스(On-Device) AI를 가능케 했다. 스마트폰과 개인용 컴퓨터(PC)에 NPU를 탑재함으로써 사용자의 데이터를 클라우드로 전송하지 않고 기기 자체에서 분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데이터를 클라우드로 전송하는 과정을 생략하면 번역, 이미지 개선 같은 AI 기능을 지연 없이 실시간으로 구현할 수 있다. CPU의 명성을 서버 분야에서는 GPU, 디바이스 분야에서는 NPU가 각각 이어받은 셈이다.
![구글이 지난해 12월 공개한 새로운 양자처리장치(QPU) ‘윌로’. [구글 제공]](https://dimg.donga.com/ugc/CDB/WEEKLY/Article/67/92/fd/b3/6792fdb3082ad2738250.jpg)
구글이 지난해 12월 공개한 새로운 양자처리장치(QPU) ‘윌로’. [구글 제공]
양자처리장치, 인류 난제 해결할 잠재력 보유
앞으로는 어떤 프로세서가 세상을 이끌까. 10~20년 뒤에는 양자컴퓨터의 영향력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양자처리장치(Quantum Processor Unit·QPU) 시대’가 본격적으로 펼쳐질 것이라는 의미다.
지난해 12월 구글은 ‘윌로(Willow)’로 불리는 새 QPU를 발표했다. 윌로는 기존 슈퍼컴퓨터로 수십억 년이 걸리는 연산을 5분 만에 처리하는 혁신적인 성능을 갖고 있다. 양자역학 원리를 활용한 덕분이다. 기존 프로세서는 0 혹은 1 값을 갖는 이진법으로 연산을 수행한다. 반면 QPU는 0과 1 상태를 동시에 가질 수 있는 ‘중첩’과 여러 상태가 서로 얽혀 있는 ‘얽힘’이라는 양자역학 원리를 이용해 복잡한 계산을 병렬적으로 수행한다.
CPU나 GPU의 현 연산 성능 수준으로는 복잡한 인간 만사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기후 예측, 기후변화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량 예측, 효율적인 에너지 수요 감축 방안 마련, 최적의 에너지 그리드 운영 방안 마련, 난치병 치료를 위한 신약 개발 등의 문제는 수많은 변수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기존 컴퓨팅으로는 실질적인 해법을 도출하기 어렵다. 금융 포트폴리오 최적화 및 리스크 관리, 실시간 물류 배송 경로 최적화, 제품 가격과 재고 예측 역시 마찬가지다. 이것들은 아직까지 기업 경영자의 복잡한 의사결정 문제로 남아 있다. 알파고 이전 기술로는 기계가 인간 프로바둑기사를 절대 이길 수 없었던 것과 같다.
QPU는 CPU나 GPU로는 풀 수 없는 이런 초고난도 문제를 해결할 잠재력을 갖고 있다. QPU의 강력한 연산 능력과 중첩, 얽힘 등 양자역학적 특성을 활용하면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정교한 해법이나 최적화 결과를 짧은 시간 안에 도출할 수 있다. 인류가 직면한 환경, 자원, 의료 문제 해결에 새로운 전기가 열리는 것이다. 또한 기업은 막연히 ‘불가능’이라고 여기던 영역에서 혁신적인 비즈니스 기회를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양자컴퓨터 상용화 선결 과제
하지만 QPU는 양자역학이라는 새로운 원리를 활용하다 보니 기존 프로세서로 작동하는 컴퓨팅 작업을 대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즉 기존 PC와 스마트폰, 그리고 데이터센터 서버 등에 사용된 CPU, GPU를 QPU가 대체할 수 없는 것이다. GPU가 CPU를 대체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 대신 QPU는 복잡한 변수와 제약 조건이 많은 최적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진가를 발휘할 것이다.
QPU 활용에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우선 양자컴퓨터는 외부의 열, 전자기파, 진동 같은 간섭에 취약하다. 오류가 쉽게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상용화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일부 전문가는 상용화가 아예 불가능하다고 얘기하기도 한다. 또 양자컴퓨팅으로 기존 암호체계가 무력화될 수 있어 보안체계를 재정립해야 하는 근본적 문제도 발생한다. 초기 QPU 인프라 구축에 막대한 비용이 든다는 점, 단기간에 숙련된 전문 인력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점 등도 주요 문제다. QPU 관련 기술을 특정 기업이 선점하거나, 국가가 시장을 독점하는 등의 방법으로 기술 격차를 벌리면 산업 구조와 글로벌 경쟁 환경의 ‘기술 양극화’가 심화할 수도 있다. QPU는 무한한 가능성과 해결해야 할 과제를 동시에 안고 있는 미래 기술인 셈이다.
CPU 기반의 정보 혁명과 GPU·NPU 기반의 AI 혁신을 넘어 가까운 미래에는 QPU 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보인다. QPU 시대에 인류는 모든 산업 분야의 판도가 바뀌는 모습을 경험할 것이다. 소수 국가와 연구기관·기업만이 양자컴퓨팅 기술을 활용할 가능성이 큰 만큼 국가와 기업은 경쟁력 제고를 위해 QPU에 긴 호흡으로 정책적·전략적 투자를 이어가야 한다. 특히 정부는 차세대 QPU 알고리즘 연구와 양자컴퓨팅 전문 인력 양성 및 인프라 구축에 선제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양자 내성 암호 개발과 프로토콜 표준화를 지원함으로써 양자컴퓨팅 기술이 안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 기업, 대학, 연구기관 등은 생태계 전반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기술 양극화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 기업과 대학, 연구기관이 서로 협력하는 개방형 혁신을 꾀해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