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패션잡지의 악마 같은 편집장의 비서가 된 사회 초년생의 일과 사랑을 그린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주연배우들의 훌륭한 연기와 명품 소품들의 등장에 힘입어 흥행에 성공했다. 그런데 제목처럼 악마만 프라다를 입는 걸까? 현실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프라다와 같은 명품을 입는다. 진품의 가격이 부담스러운 사람들은 모조품이라도 입을 만큼 명품 소비는 우리 일상가까이에 와 있다. 대학별 논술고사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악마는…’를 소개하는 이유는 이 영화가 소비사회의 정점에 있는 패션산업계를 조명하고 있어 소비사회의 특성을 논하는 데 적절하기 때문이다.
‘소비사회’는 대입 논술고사의 주제로 자주 출제된다. 소비사회의 특성을 묘사한 장 보드리야르의 글을 제시하고, 인간과 자연이 합일돼 인간의 내면적 성찰을 가능하게 하는 삶의 양식과 소비사회의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이유 및 그 해결방안을 물은 2004년도 이화여대 정시 논술고사를 비롯해, ‘모조품 소비현상의 문화적 함의’를 밝힐 것을 요구한 2006년도 성균관대 정시 논술고사는 소비사회의 특성을 이해하고 있는 학생들이라면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는 논제였다.
당신이 입고 있는 옷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준다
많은 사회학자들이 현대 소비사회가 현대인의 정체성을 불안정하고 유동적으로 만든다는 데 동의한다. “당신이 사는 집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줍니다.” 국내 유명 건설회사의 아파트 광고에 사용된 이 문구(文句)만큼 현대 소비사회의 특성을 간결하고도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은 없다. 즉 현대사회에서 ‘소비’는 소비자의 정체성을 표상한다.
이는 영화 ‘악마는…’에서도 쉽게 확인된다. 대학 졸업 후 저널리스트의 꿈을 안고 뉴욕으로 온 앤드리아(앤 해서웨이)는 패션에는 문외한이지만 ‘어쩌다’ 세계 최고의 패션잡지인 ‘런어웨이(Runaway)’의 편집장 미란다(메릴 스트립)의 비서로 취직하게 된다. 그녀는 패션잡지사에서 일한 경력을 발판 삼아 저널리스트가 되고자 할 뿐 패션에 대한 열정은 없다. 오로지 ‘악마’ 같은 편집장 밑에서 1년간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더 나은 일자리를 얻으려는 욕심이 그녀를 ‘런어웨이’에서 버티게 하는 힘이다. 심지어 그녀는 업계에서 ‘악마’로 통하는 유능하지만 까탈스러운 편집장 ‘미란다’와 4호 사이즈의 몸매에 명품 옷과 구두로 치장한 ‘런어웨이’ 여직원들을 명품에 경도(傾倒)된 한심한 여자들이라며 경멸한다.
‘런어웨이’에 취직한 앤드리아에게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바로 그녀의 패션이 어떻게 변화해가는지다. 처음 ‘런어웨이’에 입사했을 때 앤드리아는 6호 사이즈의 통통한 몸매에 캐주얼 스웨터와 개성 없는 스커트를 걸치고, 낮은 통굽의 구두를 신은 소박한 처녀였다. 그녀의 동료들은 스타일은 고사하고 패션 감각조차 없는 앤드리아를 비웃지만 앤드리아는 그녀들의 비웃음에 개의치 않는다. 앤드리아의 ‘행색’을 한심한 듯 쳐다보는 편집장 미란다의 눈길도 앤드리아를 ‘스타일리스트’로 만들지 못한다. 여전히 그녀에게 ‘런어웨이’는 저널리스트라는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기착지(寄着地)에 불과하고, 자신은 명품을 숭배하는 ‘런어웨이 여자’들과는 다른 가치를 지향하는 ‘지성인’이라는 믿음이 그녀를 ‘용감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앤드리아도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일원이 되어 업무를 원활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명품으로 치장한 스타일리스트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후 앤드리아는 미란다의 수석 디렉터인 나이젤의 도움을 받아 돌체, 지미 추, 프라다, 샤넬, 부뜨시나, 마놀로 블라닉 등 명품으로 치장한 스타일리스트로 거듭난다.
재미있는 것은 옷을 바꾸고 난 후 앤드리아가 미란다의 비서 역할을 훌륭히 해낸다는 점이다. 15분 만에 미란다를 위한 스테이크를 구해오는가 하면, 출간도 되지 않은 ‘해리포터 시리즈’를 구해다가 미란다의 쌍둥이 딸에게 선물하는 능력을 발휘한다. 또 미란다가 파티에 초대한 수십 명 인사들의 프로필을 하룻밤 사이에 파악해 미란다를 보좌하는 빈틈없는 솜씨를 보인다.
달라진 거라고는 옷과 구두, 핸드백뿐이지만 이제 그녀는 누가 봐도 저널리스트를 꿈꾸는 ‘지성인’이 아니라, ‘런어웨이’ 편집장 미란다의 유능한 비서다. 옷과 구두를 바꾸었을 뿐인데 앤드리아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됐다. 심지어 그녀의 남자친구마저 명품 옷을 걸친 앤드리아를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칠 정도다. 앤드리아가 입고 있는 옷이 바로 ‘런어웨이의 여자’라는 정체성을 앤드리아에게 부여한 것이다(나중에 앤드리아는 4호 사이즈 몸매를 만드는 데 성공해 ‘완벽한 런어웨이의 여자’가 된다. 앤드리아가 6호에서 4호 사이즈 몸매를 만든 것은 ‘런어웨이 여자’들이 입는 4호 사이즈 옷에 자신의 몸을 맞춘 결과다. 이는 옷이라는 상품이 개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정체성을 ‘자발적으로’ 바꾸도록 강요하는 소비사회의 지독한 역설을 보여준다).
소비사회에서 정체성 찾기
영화에서 앤드리아의 정체성 변화는 그녀가 걸친 옷을 근거로 타인의 시선을 통해 결정된 것일 뿐, 옷 말고 그녀의 정체성을 알려주는 요소는 전혀 없다. 앤드리아는 스스로 자신이 누구인지를 말하기보다는 자신이 걸친 옷으로 하여금 그녀가 누구인지를 말하게 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앤드리아의 정체성은 대부분 현대인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사실 개인의 의복이 그의 신분이나 지위 고하를 나타내는 표상이 되는 것이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은 아니다. 역사적으로 개인이나 집단은 신분을 드러내기 위해 의상을 최대로 활용했다. 가령 조선 왕조의 관리들은 그 직급의 높낮이에 따라 다른 색깔의 관복(官服)을 착용함으로써 조직의 위계를 확립했다. 신부(神父)의 사제복이나 승려의 가사(袈裟)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명품 소비는 명품의 높은 가격을 통해 자신의 높은 지위를 드러내고자 하는 과시소비의 전형(베블런 효과)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오늘날 ‘명품’은 소유자의 부(富)를 상징하는 최고의 아이템인 만큼 경제적 능력이 있는 사람이 명품 소비를 통해 자신의 부를 과시하는 것은 개인의 사유재산권 행사이므로 지탄받을 일이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과시소비가 명품을 소비할 만한 경제적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확산되면서 모조품의 제작·유통, 과소비로 인한 신용불량자 양산 등 사회적 병리현상으로 이어진다는 데 있다. 물론 그 배경에는 소비가 개인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소비사회의 특성이 자리한다.
따라서 우리의 관심은 어떻게 하면 소비사회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낼 것인지에 모아진다. 이 물음에 대한 답으로서 ‘합리적인 소비습관의 형성’이라는 진부한 처방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앞서 말한 베블런 효과는 경제적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비합리적인 소비행위다. ‘비합리적인 믿음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비판과 분석으로부터 보호받는다’는 레비스트로스의 말처럼 비합리적인 소비 행위에 ‘합리적 소비 습관’이 끼어들 자리는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위의 물음에 대답하기 전에 먼저 전제할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개인의 소유물이 그의 정체성의 일부분을 드러낸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는 점이다. 즉, 소비사회에서 개인의 정체성을 찾는 데 ‘소비’를 배제할 수 없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소비사회에서 개인의 정체성 찾기란 더욱 어려워진다. 영화 ‘악마는…’에서조차 이런 얘기는 해주지 않는다. 명품 옷을 통해 새로운 정체성을 획득하는 앤드리아의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어떻게 그녀가 그 많은 명품을 손에 넣게 되었는지 설명하지 않음으로써 명품과 소비의 관계를 교묘히 숨기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영화의 결말은 중요한 메시지를 던져준다. 미란다의 수석비서 자리를 눈앞에 두고, 앤드리아는 저널리스트라는 꿈을 위해 자리를 박차고 나온다. 할리우드 영화의 이상적인 결말이긴 하지만 앤드리아의 선택이 그녀의 정체성을 결정한다는 것은 중요하다. 앤드리아가 미란다의 비서에서 저널리스트로 정체성을 바꾸는 것이 그녀의 선택에 의한 결정이듯, 개인이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여전히 선택의 여지는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 선택에 대한 책임 또한 자신의 몫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소비사회’는 대입 논술고사의 주제로 자주 출제된다. 소비사회의 특성을 묘사한 장 보드리야르의 글을 제시하고, 인간과 자연이 합일돼 인간의 내면적 성찰을 가능하게 하는 삶의 양식과 소비사회의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이유 및 그 해결방안을 물은 2004년도 이화여대 정시 논술고사를 비롯해, ‘모조품 소비현상의 문화적 함의’를 밝힐 것을 요구한 2006년도 성균관대 정시 논술고사는 소비사회의 특성을 이해하고 있는 학생들이라면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는 논제였다.
당신이 입고 있는 옷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준다
많은 사회학자들이 현대 소비사회가 현대인의 정체성을 불안정하고 유동적으로 만든다는 데 동의한다. “당신이 사는 집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줍니다.” 국내 유명 건설회사의 아파트 광고에 사용된 이 문구(文句)만큼 현대 소비사회의 특성을 간결하고도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은 없다. 즉 현대사회에서 ‘소비’는 소비자의 정체성을 표상한다.
이는 영화 ‘악마는…’에서도 쉽게 확인된다. 대학 졸업 후 저널리스트의 꿈을 안고 뉴욕으로 온 앤드리아(앤 해서웨이)는 패션에는 문외한이지만 ‘어쩌다’ 세계 최고의 패션잡지인 ‘런어웨이(Runaway)’의 편집장 미란다(메릴 스트립)의 비서로 취직하게 된다. 그녀는 패션잡지사에서 일한 경력을 발판 삼아 저널리스트가 되고자 할 뿐 패션에 대한 열정은 없다. 오로지 ‘악마’ 같은 편집장 밑에서 1년간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더 나은 일자리를 얻으려는 욕심이 그녀를 ‘런어웨이’에서 버티게 하는 힘이다. 심지어 그녀는 업계에서 ‘악마’로 통하는 유능하지만 까탈스러운 편집장 ‘미란다’와 4호 사이즈의 몸매에 명품 옷과 구두로 치장한 ‘런어웨이’ 여직원들을 명품에 경도(傾倒)된 한심한 여자들이라며 경멸한다.
‘런어웨이’에 취직한 앤드리아에게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바로 그녀의 패션이 어떻게 변화해가는지다. 처음 ‘런어웨이’에 입사했을 때 앤드리아는 6호 사이즈의 통통한 몸매에 캐주얼 스웨터와 개성 없는 스커트를 걸치고, 낮은 통굽의 구두를 신은 소박한 처녀였다. 그녀의 동료들은 스타일은 고사하고 패션 감각조차 없는 앤드리아를 비웃지만 앤드리아는 그녀들의 비웃음에 개의치 않는다. 앤드리아의 ‘행색’을 한심한 듯 쳐다보는 편집장 미란다의 눈길도 앤드리아를 ‘스타일리스트’로 만들지 못한다. 여전히 그녀에게 ‘런어웨이’는 저널리스트라는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기착지(寄着地)에 불과하고, 자신은 명품을 숭배하는 ‘런어웨이 여자’들과는 다른 가치를 지향하는 ‘지성인’이라는 믿음이 그녀를 ‘용감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앤드리아도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일원이 되어 업무를 원활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명품으로 치장한 스타일리스트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후 앤드리아는 미란다의 수석 디렉터인 나이젤의 도움을 받아 돌체, 지미 추, 프라다, 샤넬, 부뜨시나, 마놀로 블라닉 등 명품으로 치장한 스타일리스트로 거듭난다.
재미있는 것은 옷을 바꾸고 난 후 앤드리아가 미란다의 비서 역할을 훌륭히 해낸다는 점이다. 15분 만에 미란다를 위한 스테이크를 구해오는가 하면, 출간도 되지 않은 ‘해리포터 시리즈’를 구해다가 미란다의 쌍둥이 딸에게 선물하는 능력을 발휘한다. 또 미란다가 파티에 초대한 수십 명 인사들의 프로필을 하룻밤 사이에 파악해 미란다를 보좌하는 빈틈없는 솜씨를 보인다.
달라진 거라고는 옷과 구두, 핸드백뿐이지만 이제 그녀는 누가 봐도 저널리스트를 꿈꾸는 ‘지성인’이 아니라, ‘런어웨이’ 편집장 미란다의 유능한 비서다. 옷과 구두를 바꾸었을 뿐인데 앤드리아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됐다. 심지어 그녀의 남자친구마저 명품 옷을 걸친 앤드리아를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칠 정도다. 앤드리아가 입고 있는 옷이 바로 ‘런어웨이의 여자’라는 정체성을 앤드리아에게 부여한 것이다(나중에 앤드리아는 4호 사이즈 몸매를 만드는 데 성공해 ‘완벽한 런어웨이의 여자’가 된다. 앤드리아가 6호에서 4호 사이즈 몸매를 만든 것은 ‘런어웨이 여자’들이 입는 4호 사이즈 옷에 자신의 몸을 맞춘 결과다. 이는 옷이라는 상품이 개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정체성을 ‘자발적으로’ 바꾸도록 강요하는 소비사회의 지독한 역설을 보여준다).
소비사회에서 정체성 찾기
영화에서 앤드리아의 정체성 변화는 그녀가 걸친 옷을 근거로 타인의 시선을 통해 결정된 것일 뿐, 옷 말고 그녀의 정체성을 알려주는 요소는 전혀 없다. 앤드리아는 스스로 자신이 누구인지를 말하기보다는 자신이 걸친 옷으로 하여금 그녀가 누구인지를 말하게 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앤드리아의 정체성은 대부분 현대인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사실 개인의 의복이 그의 신분이나 지위 고하를 나타내는 표상이 되는 것이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은 아니다. 역사적으로 개인이나 집단은 신분을 드러내기 위해 의상을 최대로 활용했다. 가령 조선 왕조의 관리들은 그 직급의 높낮이에 따라 다른 색깔의 관복(官服)을 착용함으로써 조직의 위계를 확립했다. 신부(神父)의 사제복이나 승려의 가사(袈裟)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명품 소비는 명품의 높은 가격을 통해 자신의 높은 지위를 드러내고자 하는 과시소비의 전형(베블런 효과)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오늘날 ‘명품’은 소유자의 부(富)를 상징하는 최고의 아이템인 만큼 경제적 능력이 있는 사람이 명품 소비를 통해 자신의 부를 과시하는 것은 개인의 사유재산권 행사이므로 지탄받을 일이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과시소비가 명품을 소비할 만한 경제적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확산되면서 모조품의 제작·유통, 과소비로 인한 신용불량자 양산 등 사회적 병리현상으로 이어진다는 데 있다. 물론 그 배경에는 소비가 개인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소비사회의 특성이 자리한다.
따라서 우리의 관심은 어떻게 하면 소비사회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낼 것인지에 모아진다. 이 물음에 대한 답으로서 ‘합리적인 소비습관의 형성’이라는 진부한 처방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앞서 말한 베블런 효과는 경제적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비합리적인 소비행위다. ‘비합리적인 믿음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비판과 분석으로부터 보호받는다’는 레비스트로스의 말처럼 비합리적인 소비 행위에 ‘합리적 소비 습관’이 끼어들 자리는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위의 물음에 대답하기 전에 먼저 전제할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개인의 소유물이 그의 정체성의 일부분을 드러낸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는 점이다. 즉, 소비사회에서 개인의 정체성을 찾는 데 ‘소비’를 배제할 수 없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소비사회에서 개인의 정체성 찾기란 더욱 어려워진다. 영화 ‘악마는…’에서조차 이런 얘기는 해주지 않는다. 명품 옷을 통해 새로운 정체성을 획득하는 앤드리아의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어떻게 그녀가 그 많은 명품을 손에 넣게 되었는지 설명하지 않음으로써 명품과 소비의 관계를 교묘히 숨기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영화의 결말은 중요한 메시지를 던져준다. 미란다의 수석비서 자리를 눈앞에 두고, 앤드리아는 저널리스트라는 꿈을 위해 자리를 박차고 나온다. 할리우드 영화의 이상적인 결말이긴 하지만 앤드리아의 선택이 그녀의 정체성을 결정한다는 것은 중요하다. 앤드리아가 미란다의 비서에서 저널리스트로 정체성을 바꾸는 것이 그녀의 선택에 의한 결정이듯, 개인이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여전히 선택의 여지는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 선택에 대한 책임 또한 자신의 몫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