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출자 규제를 강력히 주장하다 고집을 꺾은 권오승 공정거래위원장(왼쪽 사진의 왼쪽). 바른사회시민회의 관계자들이 11월8일 순환출자 규제 도입으로 경제를 어렵게 한다며 권 위원장 사퇴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부 안의 기본 방향은 △사전 규제 최소화 및 사후 규제 강화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 촉진 △시장 및 사회적 감시 기능 강화 등이다. 이에 따라 당초 공정위가 제시했던 재벌의 환상형 순환출자 금지는 도입하지 않기로 했다. 또 출총제 대상 재벌을 자산 총액 기준 6조원에서 10조원으로 상향 조정하고, 출자총액 한도를 순자산의 25%에서 40%로 올리기로 했다.
이번 정부의 최종안 마련 과정에서 논란이 됐던 것은 공정위의 신규 순환출자 금지 방침. 권오승 위원장은 당초 “순환출자가 재벌 총수의 사익 추구와 대그룹의 지배력 남용에 이용된다”면서 규제 의지를 분명히 했다. 그러나 재계는 “순환출자가 외국 자본에 의한 적대적 인수·합병(M·A)을 방어하기 위한 수단”이라면서 공정위의 방침에 반대했다.
공정위안 반대 ‘재계의 완승’
그렇다면 과연 순환출자란 무엇이기에 이처럼 논란의 대상이 됐을까. 순환출자란 ‘A기업 → B기업 → C기업 → A기업’처럼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서로 출자를 하는 방식을 말한다. 두 회사 간에 서로 출자를 주고받는 상호출자의 변형으로, 상법과 공정거래법에서 상호출자를 금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회피하기 위해 만들어진 수단이다.
공정위는 국민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재벌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소유지배구조의 왜곡을 들고 있다. 총수 일가가 3.4%의 지분만으로 40% 정도의 계열회사 지분을 이용해 재벌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 이는 계열사 간 순환출자를 통해 형성한 가공자본, 그리고 금융 계열사의 고객 자산을 이용한 계열사 출자로 인해 가능하다는 게 공정위의 설명이다.
연세대 경영학과 신현한 교수는 이에 대해 “순환출자 구조는 대주주의 사익 추구를 목적으로 형성됐다기보다는 신규 사업 진출, 외환위기 직후 정부의 부채비율 규제, 구조조정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형성된 측면이 강하다”고 반박했다. 가령 “현대·기아차그룹의 순환출자는 외환위기 이후 계열 분리, 구조조정을 위한 M·A 과정에서 경영권 방어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내부 지분율을 증대시키려는 차원에서 추진된 합법적 경영권 방어 수단이었다”는 것.
그러나 순환출자 구조가 오히려 경영권 방어에 취약하다는 반론도 있다. 순환고리의 상류 기업을 외국인 투자자가 장악해 최대 주주가 돼버리면 그룹 전체를 지배할 수 있게 되는데, 외국인 투자가들이 이를 놓칠 리 있겠느냐는 것.
소버린과 SK의 경영권 분쟁은 순환출자 구조가 경영권 방어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SK 전체는 2005년 4월1일 현재 SK㈜ → SK텔레콤 → SK C·C → SK㈜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와 SK㈜ → SKC → SK케미칼 → SK㈜의 구조를 통해 최태원 회장이 지배하고 있다. 소버린이 바로 그 중심에 있는 SK㈜를 표적으로 지분을 매집했고, SK는 이를 방어하기 위해 소버린에 막대한 시세차익을 보장한 뒤 지분을 넘겨받았다.
순환출자와 관련한 또 다른 논란은 순환출자 금지가 과연 투자를 위축시키는지 하는 점이다. 신현한 교수는 “기업의 다각화를 통해 신규시장을 개척하는 우리나라 기업의 특성상 순환출자를 통한 산업 간, 기업 간 출자를 막아버리면 기존 사업만 계속되고 신규사업이 발전하지 못해 경제성장의 엔진이 멈출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참여연대는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하면 투자가 위축된다는 주장은 근거 없다”고 반박한다. “환상형 순환출자 구조의 핵심은 실물 자원의 투입이 조금도 없는 가운데 가공 의결권이 창출된다는 점인 만큼, 이를 전체적으로 해소하는 데에도 실물 자원의 손실은 전혀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
재계의 주장은 논리적으로 모순이라는 비판도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11월15일 발표문을 통해 “출자한도 상향 조정 등 이번 정부의 조치로 인해 기업의 출자 여력이 33조원 정도 증가했다”면서 “앞으로 경제 활성화를 위한 투자 및 고용 확대에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러나 현재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포스코 등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은 막대한 규모의 해외투자를 하고 있다. 세계화의 진전으로 기업 간 경쟁이 전 지구적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재계가 한편으로는 해외투자를 진행하고 있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글로벌 경쟁 구조를 무시하고 국내 투자를 늘리겠다고 주장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
삼성 지배구조 개선 국민적 합의 필요
재계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총수가 현재의 지배권을 잃지 않고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하려면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를 감당할 만한 총수는 없다. 가령 삼성 이건희 회장 일가가 삼성전자의 과반수 지분을 확보하려면 6조원 이상이 들어가는데, 이는 다른 핵심 계열사를 포기해도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고 이들에게 현재의 지배권 일부를 포기하라는 것은 그야말로 반 기업적인 요구다. 한 기업의 성장 과정에 창업주 일가가 흘린 피와 땀을 완전히 무시하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자들은 과거 개발독재 시대의 패러다임인 환상형 순환출자 구조를 21세기에도 계속 가져가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 점에서 2000년 5월 설립된 이후 깊이 있는 분석으로 호평받고 있는 김광수 경제연구소㈜의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선에 관한 제언은 귀담아들을 만하다.
“먼저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선에 관한 기본 방향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한 다음, 일정 기간 또는 상당 기간의 유예기간을 설정해 계열사 간 순환출자를 정리해갈 수 있도록 하는 지원이 필요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예기간에 삼성그룹 창업자 일가의 경영권을 보장해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나 국민적 합의를 마련하는 일이 필요하다.”
.출총제 적용 기준 대폭 완화 -자산 6조원 이상 기업진단 모은 계열사에서 자산 10조원 이상 기업진단, 자산 2조원 이상 기업으로 축소 -7개 그룹 24개사 -삼성(삼성전자 삼성물산 삼성중공업 삼성SDI 삼성에버랜드 삼성전기 SLCD), 현대차(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현대제철 현대모비스 현대하이스코), SK(SK SK네크웍스 SK인천정유), 롯데(롯데쇼핑 호텔롯데 롯데건설), GS(GS건설), 한화(한화 한화석유화학), 금호아시아나(아시아나항공 금호산업 금호타이어) |
.출자 한도 현행 25%에서 40%로 상향 -출자 여력 16조원→32조9000억원 증가 |
.지주회사 요건 완하 -상장 자회사 지분율 요건 30%에서 20%로 하향 조정 -100% 출자 시 증손회사 허용 -이익금 불산입률 확대 등 배당수익에 대한 세제상 인센티브 |
.사후 규제 강화 -특수관계인과의 '상품·용역거래'를 이사회 의결 및 공시의무 대상 추가 -비상장 기업 공시사항에 '일정 기간 계열사의 거래 내역' 추가 -금융거래정보요구건(2007년 시한 만료) 시한 연장 또는 상설화, 실효성 강화 -공정위 인력, 기능 확충 -대규모 기업집단 관련 정보 확신을 위한 포털사이트 구축 |
.환상형 순환출자 규제 포기 -세제상 유인장치(순환출자 해소 시 과세이연)나 공시 등 시장감시 통해 자발적 해소 유도 -상호출자 탈법적 우회수단으로 순환출자 악용 시 감시 강화 -신규 순환출자 금지 도입 안 함 |
기업집단 | 주요 순환출자 현황 |
삼성 |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삼성에버랜드 |
현대 자동차 | 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현대모비스→현대자동차 |
SK | SK→SKC→SK케미칼→SK |
한진 | 한진→대한항공→한진중공업→한진 |
한화 | 한화→한화석유화학→한화종합화학→한화증권→한화 |
현대 중공업 | 현대중공업→삼호중공업→현대미포조선→현대중공업 |
금호 아시아나 | 아시아나항공→아시아나CC→금호렌터카→아시아나항공 |
두산 | 두산→두산중공업→두산산업개발→두산 |
동부 | 동부건설→동부제강→동부생명→동부건설 |
현대 | 현대상선→현대증권→현대엘리베이터→현대상선 |
롯데 | 롯데건설→롯데산업→롯데리아→롯데건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