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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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엔 그럴싸한 ‘죽은 여인의 방문’

  • 듀나/ 영화평론가 djuna01@hanmail.net

    입력2004-08-06 15: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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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기엔 그럴싸한  ‘죽은 여인의 방문’
    얼굴없는 미녀’는 1980년에, 지금은 없어진 TBC에서 방영했던 ‘형사’ 납량특집 에피소드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이순재와 장미희가 주연한 이 이야기는 당시 공중파에 방송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울 정도로 상당히 파격적인 줄거리였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이순재는 친구의 아내인 장미희를 짝사랑하는데, 그녀를 차지하기 위해 일주일에 한 번씩 자기를 찾아오게 최면을 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교통사고로 죽는다. 문제는 최면이 풀리지 않은 채 죽었고, 죽은 뒤에도 그녀가 여전히 이순재를 찾아온다는 것. 서서히 썩어가는 육신을 질질 끌면서 말이다. 불륜, 네크로필리아(necrophillia·시체를 사랑하는 이상 성욕), 좀비, 합의 없는 섹스가 결합된 변태스러운 이야기는 그 에피소드를 볼 수 없게 된 이후에도 전설처럼 입에서 입으로 떠돌았다.

    이 에피소드가 ‘로드 무비’의 감독 김인식에 의해 얼마 전에 리메이크되었다. 이 역시 최근에 불고 있는 호러 영화 붐의 일부일까? 그렇다고 볼 수는 없을 듯하다. 여전히 애인의 좀비가 남자 주인공을 찾아오는 설정이 남아 있긴 하지만, 영화는 호러에 그렇게까지 충실한 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 매스컴에 실리는 기사들도 호러 부분보다는 김혜수가 얼마나 노출을 많이 했느냐에 집중되고 있으니까. 그렇다면 영화는 약간의 호러 부분을 첨가한 에로틱한 R등급 멜로드라마로 봐주는 편이 더 낫다.

    기본 설정은 비슷하다. 아내를 잃고 괴로워하는 정신과 의사가 경계성 인격 장애를 앓는 환자를 만난다. 남자가 병원을 떠나면서 둘은 헤어지지만 1년 뒤 재회한다. 둘은 친구가 되고, 남자는 여자를 치료해주기 위해 최면을 건다. 곧 남자는 최면에 걸린 여자에게 집착하고, 이야기는 원작의 파국으로 이어진다. 여자는 최면에 걸린 채 사고로 죽으며, 죽은 뒤에도 남자를 찾아온다.

    보기엔 그럴싸한  ‘죽은 여인의 방문’
    앞에서도 말했지만 ‘죽은 애인의 좀비가 돌아온다’라는 호러 요소는 이 영화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막판의 묘사에 상당히 공을 들인 컴퓨터그래픽 작업이 등장하긴 하지만 분장한 장미희처럼 무섭지는 않다. 호러 영화를 기대한 관객들은 실망했을 것이다.



    물론 호러물이라고 꼭 호러물로 각색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하지만 ‘얼굴없는 미녀’에서 무덤에서 돌아온 좀비 애인의 설정을 뺀다면 도대체 뭐가 남는다는 건지. 김인식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자신의 취사선택이 옳았다는 사실을 증명하지 못한다.

    김혜수와 김태우의 캐릭터들은 자기도취에 빠져 있는 허수아비들이고, 그들의 로맨스는 극단적인 페티시즘에도 불구하고 별 재미가 없다. 영화는 스토리와 캐릭터를 탐구하는 대신 호사스러운 인테리어와 섹스신들로 러닝 타임을 채우고 있는데, 이 역시 그렇게까지 칭찬할 건 못 된다. ‘얼굴없는 미녀’는 보기엔 근사한 영화지만 결과적으로 공허하고 허망하기만 하다. 차라리 원작을 충실하게 살려 정통적인 호러물로 만들었다면 더 좋았으리라. 그게 더 ‘깊이 있는’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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