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동아’는 이번 호부터 ‘승려 행창의 자전거 유럽 기행’을 격주로 연재한다. 일본, 인도, 독일 등에서 인도철학을 공부한 뒤 세계 곳곳을 여행해온 승려 행창은 발트해 연안 국가들, 핀란드•스웨덴•노르웨이•덴마크•폴란드 등을 여행하며 그곳의 역사와 평범한 이들의 삶을 생생하게 전해줄 것이다. –편집자
프라하 시내 한가운데로 흐르는 블타바 강 전경.
‘무엇이 우리를 자유롭게 할까.’ 미궁(迷宮) 속에 쪼그리고 앉은 채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아 헤매는 나의 여정은 끊임없이 반복된다. 문제의 원인이 무명(無明)에서 발로한다는 것은 파악했지만, 해답을 찾는 데 고뇌만 더해질 뿐 명쾌한 뭔가가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현실이라는 문제를 안고 번뇌하기보다 거리를 두고 바라보며 사고(思考)하는 체질인 탓에 길 위에 내 자신을 서 있게끔 하는 여행이라는 방법론을 나는 좋아한다.
이번 여정으로는 발트해에 면한 북유럽권(덴마크, 독일, 체코, 폴란드, 러시아, 스칸디나비아 3국, 발트 3국)을 택했다. 유학과 여행으로 유럽 생활이 짧지 않건만 스칸디나비아 3국(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이나 발트 3국(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과는 인연이 없었다. ‘언젠가는’ 하는 희망 속에 묻어두고 있었는데 마음의 고향인 인도로 돌아가기 전, 동화 속의 중세유럽 도시들이 삶의 현장으로 자리한 북유럽으로의 여행을 생각한 것이다. 동화 속의 세계로 떠나는 여행의 동반자는 무동력 타임머신 자전거. 사색호(思索號)와 지옥호(地獄號)라고 이름붙인 이 자전거는 역사와 문화, 대자연, 그리고 만남과 대화를 향해 달리는 최고의 수단이다.
그런데 이번 자전거 여행을 준비하며 나는 얼마간의 불안감에 시달렸다. 자전거로 하는 여름철 중동 횡단(2000년 8~10월)과 독일 함부르크에서 서울까지의 유라시아대륙 횡단(2001년 5월~2002년 5월)에서 성공한 경험이 있지만 그때와는 상황이 조금 달랐기 때문이다.
프라하 시내 한가운데로 흐르는 블타바 강 전경.
지난해 중국 시안(西安)에서 로마까지 실크로드 횡단여행을 하다가 로마를 코앞에 둔 그리스 중부 산악지대에서 등반 중 추락사고로 오른쪽 다리가 부러졌다. 아프가니스탄 여행 도중 간다하르 부근 산악도로에서 탈레반 잔당 게릴라들이 쏘는 총알도 무사히 피해가며 로마로 향하고 있었건만 가벼운 액땜은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산속 그리스정교회 수도원에서 응급처치를 받고 목발을 짚으며 로마까지 세월을 헤아리는 발걸음을 옮겨 겨우 여행을 끝마쳤다. 다리가 부러지고 한 달 뒤 독일 함부르크로 돌아와 10cm가량의 철심을 박는 수술을 한 지 꼭 반년이 지난 시점이다.
현 상태로는 장시간 걷는 일조차 힘든데 캠핑 장비와 무거운 짐까지 실은 자전거를 타고 3개월 동안 약 5000km를 주행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한 것이다. 그래서 전지훈련을 겸해 5월 중순부터 구유고연방 지역의 코소보와 보스니아 등 5개국을 한 달 정도 다녀왔다. 생각보다 힘든 여정이었던 탓에 중간쯤부터 지팡이에 몸을 의지해야만 했다. 웬만하면 밀어붙이는 성격인데도 결국 일정을 앞당겨 정양(靜養) 중이던 체코 프라하로 돌아왔다. 전지 훈련차 떠난 여행에서 상이용사 수준을 넘어 패전용사로 돌아오는 씁쓸한 경험을 해야 했던 것이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인 프라하 풍경.
하지만 득도 없지는 않았다. 육체적으로야 타격이 심각했지만 상이용사로 여행하는 동안 이뤄진 따뜻한 만남들은 어느 여행 때보다도 많은 것을 생각케 했다. 뿐만 아니라 육신의 불편함을 통해 아집과 집착을 버릴 수 있었던 점도 큰 얻음이었다. 주변 친우들의 도움으로 완벽하진 않지만 아쉬운 대로 자전거 여행이 가능한 최소한의 준비가 끝났다. 자전거 여행은 비싼 자전거와 훌륭한 장비만으로 성공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장비보다 매순간 다가오는 육신의 한계에 채찍질을 가하며 달리는 마음자세가 더 중요하다.
출발을 하루 앞두고 프라하 시내 한가운데로 흐르는 블타바 강가를 따라 산책에 나섰다. 프라하! 중세풍이 살아 숨쉬는 한없이 아름다운 곳. 여행차 몇 번이고 프라하에 들렀건만 그래도 아쉬움이 남아 독일에서 다리 수술을 끝내고는 얼마간 조용히 쉴 곳으로 이곳을 선택했을 정도로 나에겐 그리움의 도시다. 백탑(百塔)의 도시로 불리는 프라하의 구시가지 전체가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을 정도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인 프라하 풍경.
사계절 각기 다른 풍경 속에 자리하는 중세도시. 길모퉁이 한곳 한곳마다 역사와 문화가 전해져오는 그림 속의 소왕국 그 자체다. 5월 초 개최되는 음악제인 ‘프라하의 봄’ 주간에는 체코 국립 필하모니를 비롯한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들이 모여 감미롭고 환상적인 음률로 프라하의 봄을 꽃피우는 예술과 문화의 밤이 2주간 계속된다.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이 안겨주는 섬세한 감성이 담겨 있는 프라하는 여리면서도 강인하며, 차갑게 느껴질 정도로 순백하면서도 따스한 슬라브 민족의 온정이 피어나는 한 송이 꽃과 같은 곳이다.
그러나 이제 여정을 떠나야 한다. 떠나지 않는 곳에 만남이 있을 수 없고 찾아 헤매지 않는 순간에 다가올 인연이 없기에, 만남이 자리하는 그 순간 그곳에서 내 삶의 주인공으로 존재하기 위해 중세유럽이 숨쉬는 북유럽 나라들을 찾아 떠난다. 7월15일 이른 아침, 가는 빗줄기가 고개 숙인 잔디 속으로 소리도 없이 스며드는 걸 보면서 출발한다. 임 떠나보내는 프라하가 감정을 못 이겨 소리 없는 이슬로 대지를 적시는 것인지…. ‘드는 정은 몰라도 나는 정은 아는 법이다’라는 옛말이 떠나보내는 처지가 되면 뼈에 사무치게 느껴지겠지만, 행인지 불행인지 내 자신 늘 떠나는 쪽에만 서 있어왔다.
중세풍 건물과 성당, 전원 저택 등 도시 곳곳에서 여전히 중세가 살아 숨쉬고 있다.
빗물이 어깨를 적시지만 우의를 걸칠 심정도 아니다. 아무런 생각 없이 빗속을 얼마간 걷고만 싶다. 떠날 땐 언제나 뒷정리를 해야 하는 법이다. 어제 시내에서 돌아오는 길에 “혹, 무슨 일이 생겨 여정에서 돌아오지 못하면 네가 대신 아들 노릇 좀 해라! 그러기에 공자님이 친구는 가려서 사귀라고 안 하더냐. 세상일에 익숙지 않은 나보다는 네가 더 좋은 자식일 거야”라는 짧은 이메일 한 통을 한국의 ‘불알친구’에게 보냈다. 나이 탓인지, 아니면 아직 공부가 부족한 탓인지 한국에 홀로 계시는 속가(俗家) 모친이 늘 마음에 걸린다. 어찌할 수도 없는 걸 알면서도 사람의 자식으로 태어난 연유에….
유엔 통제 하의 코소보 수도 프리슈티나 거리.
시 외각을 벗어나는 언덕에 서서 아직 고요한 숨결을 틔우는 녹음 속의 프라하에 언젠가의 인연을 기약한 뒤 동쪽으로 이어진 E67국도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얼마 만의 자전거 여행인가. 그다지 오랜 시간이 지나지는 않았지만 페달을 밟는 순간 전해져오는 야릇한 희열. 두 번 다시 자전거 여행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유라시아대륙 횡단 여정을 끝낸 지 겨우 2년이란 시간이 흘렀을 뿐인데…. 자전거 여행이 육체적으로 얼마만큼의 고행인지는 내 자신 뼈에 사무친 경험을 하였기에 자전거라는 존재가 쳐다보기도 싫었다. 뿐만 아니라 배낭여행을 할 때조차 타고 가는 버스가 달리는 도로의 경사를 살피는 습관이 생겼을 정도다.
길을 떠난 필자.
그런데 또다시 이놈의 자전거라니! 난 역시 어쩔 수 없는 중생인 모양이다. 도로를 따라 이어지던 마을이 끝나고 확 트인 넓은 벌판이 저쪽 산 앞까지 펼쳐져 있다. 내 마음까지 텅 빈 공간으로 자리하는 느낌이다. 7월 중순의 뜨거운 태양을 가슴 가득 안고 있는 벌판은 화려한 색감의 조화를 넘어선, 초록 속의 노란 얼굴에 검은 눈동자가 단순의 극치를 자아내며 길 떠난 방랑객을 환한 웃음으로 맞아주고 있다. 그래, 이 공간의 단순 속에서 생겨나는 아름다움을 찾아 한없는 고통의 자전거 여행을 또다시 선택하는 것이리라.
희열이 언제까지나 영원하게 존재치 않는 세상을 인간세상이라 했던가! 서서히 내가 안고 태어난 업장(業障)의 무게와도 같이 무거움을 더하는 자전거에 실은 짐의 존재감이 느껴져온다. 이제부터가 여정의 시작인데 이 짧은 한순간의 희열 너머에 다가올 육신의 고통을 언제까지 더 안고 살아가야 할지, 사뭇 불안한 예감이 떨쳐지지 않는다. 그래도 바람이 통하는 이 공간이 나는 좋다. 그렇지 않다면 대형 트럭들이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며 달리는 공간에서 내 의지와는 관계없이 순간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이 도로로 또다시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위험과 고통이라는 존재는 익숙해지면 일상적인 게 되어버리기에 가끔 생각날 때 되씹어보는 정도로 족하다.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로 손꼽히는 블타바 강의 찰스 브리지.
어느덧 태양이 중천으로 자리바꿈했을 즈음 육신의 허기에 정신을 차렸다. 조금 쉬었다 가야지. 여정의 시작부터 마음만 서둘러서 될 일도 아니다. 갈 길이 만 리나 남아 있는데…. 서두르면 일을 망칠 우려가 있다. 만사에는 다 때라는 게 있는 법이다. 자전거 여행은 첫날부터 사흘까지가 가장 어렵다. 이후는 가속도도 생기고, 여행의 감각 또한 되돌아오기에 그다지 힘든 줄 모르고 달려가는 걸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국도와 맞닿아 있는 조그만 시골마을에 접어들어 작은 탁자에 맥주병을 하나씩 들고 있는 아저씨들이 모여 있는 구멍가게 앞에 멈췄다. ‘자전거 여행 힘들지?’ 하는 표정으로 권하는 맥주 한 잔을 사양도 못하고 마셨건만, 무더운 여름철에 달아오르는 도로만을 마주하며 달리려니 토할 것 같은 기분이다. 언젠가는 육신은 물론 번뇌하는 마음조차도 고요할 때가 있을 것이기에, 육신이 고통의 끝에 서 있는 이 순간을 마다 않고 바라볼 뿐이다. 체코, 산맥에 둘러싸인 작은 숲 속의 요정들이 사는 나라 같은 이미지를 안겨주는 곳. 그러나 자전거 여행자에게는 그다지 반가운 지형이 아니다.
구시가지의 시계탑. 이 아름다운 시계탑이 두 개 생기는 일을 막기 위해 제조공의 눈알을 뺐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이번 여정에서 지형적 최대 난관 지역으로 노르웨이와 체코 두 나라를 꼽았다. 지형을 고려하며 여정을 선정하긴 했지만 달려보지 않은 곳을 몇 만분의 일로 작성된 지형지도로만 다 알 순 없는 일이다. 글쎄, 자전거 여행에서 지형적 행운이란 있을 법하지도 않다. 오르막과 내리막의 계단을 달려보지 않고는 누구도 장담 못한다. 인생의 앞길을 장담 못하는 것과도 흡사한 건 아닌지…. 체코 시골마을의 풍경이 상당히 안정된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느낌을 준다. 옛 소련의 위성국에서 독립을 하고, 곧이어 체코와 슬로바키아라는 두 공화국으로 재독립을 한 지 꼭 10년이 흘렀다. 지금까지 돌아본 동구권 나라들 중에서는 독일연방에 흡수된 동독에 버금갈 수준까지 올라선 느낌이다.
프라하 구시가지 광장 앞에 있는 틴교회.
유럽연합(EU)에 올 5월 가입했지만, 어느 쪽에서 서둘렀는지는 몰라도 체제 전환에 10년의 시간밖에 두지 않고 모양새를 바꾸려는 데는 얼마간의 성급함이 자리하는 느낌도 없지 않다. 전환기라는 말 아래 치러지는 희생은 말 그대로 역사 속의 희생일 뿐, 일개 민생들에겐 고통 이상의 아무런 의미로도 존재치 않는다. 등을 비추던 태양의 느낌이 식어갈 즈음 작은 도시 한가운데에 있는 언덕 위, 중세풍 성이 자리하는 곳에 다다랐다. 프라하에서 80km가량 떨어진 곳이다.
이곳에 야영장이 있는 걸 지도에서 확인하고는 가능하면 여정 첫날 하루 코스로 여기까지를 생각했다. 길을 물어 야영장에 도착해보니 세로 100m, 가로 50m가량의 거대한 수영장도 있다. 여름철 휴가 기간인 듯 꽤 많은 사람들이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영내에 작은 호프집이 있는 걸로 보아 이곳 시민들의 안식처임이 한눈에 느껴진다. 캠핑 준비를 끝내고 하루 내내 땀에 절어 하얀 소금기가 서리같이 붙어 있는 육신을 씻었다.
프라하 시내를 달리는 전차 트람바이.
텐트에서 얼마쯤 떨어진 곳에서 젊은 남녀 몇 쌍이 손을 흔들며 부르는 손짓에 합석을 했다. 여정 첫날이라 피곤이 몰려왔지만 호의를 가지고 얘기를 나누려는 사람을 마다할 수도 없다. 이런저런 얘길 나누다 밤이 이슥해서야 텐트로 돌아왔다. 자전거 여행 기간에 좋든 싫든 야영생활을 많이 해야 한다. 긴 여정의 첫날 밤, 별이 빛나는 하늘을 바라보다 눈을 감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