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규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담합조사는 공정위의 일상적 활동이다. 그럼에도 이번 사안이 유난히 관심을 끄는 이유는 “공정위가 드디어 정보통신부(이하 정통부)에 전면전을 선포했다”는 분석이 강한 설득력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공정위가 정통부로부터 통신시장에 대한 규제 권한을 가져오려 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일까, 진대제 정통부 장관은 이동통신사 현장조사가 있은 얼마 후 공정위 강철규 위원장과 만난 자리에서 “담합행위 조사 전에 우리한테 얘기 좀 해주지 그랬냐”는 완곡한 항의를 했다. 이에 대해 강위원장은 “제보가 들어오면 누구한테 얘기하고 조사할 수는 없으니 양해해달라”고 답했다 한다. 진장관은 이러한 문답 내용을 정통부 기자실에 내려와 직접 공개하는 등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했다.
정통부와 업계가 이번 조사를 ‘정통부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는 까닭은 초점이 정통부 주도로 이루어진 이른바 ‘클린마케팅 협의’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지난 6월24일 이동통신 3사 사장은 진장관 중재로 클린마케팅을 선언했다. 핵심은 대리점·판매점에 정상적 관행을 넘어서는 수수료(리베이트)를 지급하지 않겠다는 것. 진장관과 3사 사장은 이 선언의 실효성 확보를 위해 마케팅과 정책 협력 임원으로 ‘이동통신 공정경쟁협의회’를 구성, 세부 실천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정통부 주도한 ‘클린마케팅’에 공격 초점?
그런데 공정위가 바로 이 ‘세부 실천방안’에서 수수료 담합 행위가 있었는지, 그에 관한 협의 문건은 없는지를 집중 조사한 것이다. 초고속인터넷 사업자에 대한 조사 역시 지난해 상반기부터 시작된 클린마케팅 논의에 집중돼 있다. 주내용은 ‘약관에 명시된 가격을 잘 지키자’는 것이었다.
이처럼 유·무선 양쪽의 클린마케팅은 정통부 주도 내지 용인에 따라, 정통부 산하기관인 통신위원회(이하 통신위)의 거듭된 제재를 피하기 위해, 소비자에게 ‘사업자간 차이 없는’ 요금과 이익을 보장하자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업체들은 “이중규제다” “정통부가 시킨 일을 공정위가 벌주겠다 하면 말이 되느냐”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물론 정통부, 공정위, 통신위의 눈치를 한꺼번에 봐야 하는 처지라 아직은 ‘소리 없는 아우성’에 머물고 있는 형편이다.
한편 공정위는 ‘정통부 공격설’을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공정위의 한 고위관계자는 “클린마케팅이 주요 조사대상이란 건 잘못 알려진 사실이다. 정통부가 전기통신기본법 등에 따라 한 일을 우리가 왜 문제 삼나. 우리는 명명백백한 작은 부분에 관심을 두고 있다. 가격 부분도 있고 (판매)조건에 관한 것도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또 다른 인사는 “직원들이 일단 가져온 것이라(클린마케팅 관련 자료를) 보기는 봤나 보더라. 선언문에는 문제가 없는 줄 안다. 하지만 ‘세부 실천방안’ 쪽은 계속 조사 중일 것”이라고 말했다.
정통부는 일단 말을 아끼는 분위기다. “부처간 밥그릇 싸움으로 비칠까 걱정된다”는 것. 그러나 속내는 다르다. 정통부 모 과장은 “공정위는 이미 가진 것도 많으면서 통신까지 먹으려 하나. 통신산업은 그 특수성으로 인해 특정 사업자가 시장을 지배할 수 없도록 감시하고, 각 업체의 균형 발전을 돕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공정위가 계속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큰 싸움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며 흥분했다. 공정위 관계자 역시 “통신산업 쪽은 ‘밭’이 다르다더라. 다 똑같은 밭이어야 하는데 유독 자신이 주인이라 생각하는 쪽이 있는 모양”이라며 “정통부는 사업자 위주로 판단할 뿐 소비자 이익은 등한시하고 있다”고 정면 비판했다.
아닌 게 아니라 지금 공정위는 국무총리실 산하 규제개혁위원회 등과 함께 전기통신사업법 및 전기통신기본법의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상자기사 참조). 이중 특히 ‘시장지배적 사업자에 대한 이용약관 인가제도’는 이른바 정통부 ‘유효경쟁 정책’의 핵심이다. 다른 조항들도 정통부로서는 양보하기 힘든 내용이다. 그러나 공정위 측은 “통신이 강력한 규제산업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시장지배적 사업자에 대한) 요금 인가제는 물론, 여타 업체의 가격 신고제도 풀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 생각”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공정위는 이 문제를 규제개혁위·정통부·재정경제부(이하 재경부) 등과 협의해 7월 말까지 결론 낼 예정이었다. 그러나 정통부의 일관된 반대로 차질이 빚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공정위가 통신사 일제조사에 나서자 자연스레 “공정위가 사업자 간 담합을 밝혀내고, 이를 정통부가 규제하기는커녕 용인했다는 부분을 부각시켜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게 된 것이다.
공정위는 각 이동통신사가 판매점 수수료 책정과 관련 담합행위를 했는지에 대해서도 조사하고 있다.
“통신위, 맞짱 뜨려면 독립해라”
그렇다면 공정위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모델은 무엇일까. 공정위 관계자들은 호주의 ACCC(경쟁감독국·Australian Competition and Consumer Commision)를 자주 언급하고 있다. 1995년 설립된 ACCC는 경쟁제한 사안에 대한 사전 사후 심사와 규제개혁 심사는 물론, 통신·전기·금융 등 망산업 규제 권한도 모두 갖고 있다. 공정위의 한 고위인사는 “경쟁정책과 소비자정책을 모두 담당하는 것이 ACCC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미국의 FCC(연방통신위원회·Federal Communications Commission)처럼 강력한 권한을 가진 기구도 있다. 그러나 미국에는 정통부 같은 산업촉진부처가 없다. 촉진과 규제를 한 부처가 담당하는 것은 문제”라는 것이다.
정통부가 통신산업 (촉진)정책 부처이자 동시에 규제 주체라는 점은 오랫동안 논란이 되어온 부분이다. 이로 인해 정통부는 정부 조직 개편론이 대두될 때마다 산업자원부와의 통합, 과학기술부와의 통합, 통신위원회 독립, 부처 폐지 후 기능 분산 등 다양한 ‘안’의 단골 메뉴가 돼왔다. 물론 정보통신산업 발전의 견인차 구실을 해온 점을 인정받아 오히려 권한이 강화되는 쪽으로 늘 결론이 났지만 정통부로서는 여간 신경 쓰이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공정위 관계자도 “정통부 산하 단체에 불과한 통신위가 공정위와 ‘맞짱’을 뜨려면, 국무총리실 산하로 가든 어떻게든 먼저 정통부로부터 독립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금껏 통신위는 정통부의 정책이 바뀔 때마다 흔들려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정통부의 태도는 확고하다. 통신산업의 특수성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는 것. 이미 정통부·통신위·공정위 간에 법에 따른 역할 분담이 이루어져 있는데 이제 와서 “다 달라”고 하는 것은 억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정통부 인사는 “법에 문제가 있는지에 대한 입증 책임은 공정위에 있다. 공정위는 자꾸 시장 시장 하는데, 그럼 정말 시장이 원하는 것이 ‘무조건적 경쟁’이라 생각하나. 일하는 방식은 도무지 시장 중심이 아닌 듯하다”고 꼬집었다.
업체들만 눈치 보며 득실 계산 중
공정위와 정통부의 갈등이 계속되면서 통신업체들의 속계산도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 ‘어떤 우산 밑이 살기 나을까’ 하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철저한 중립을 지키겠다는 것이 사업자 측 생각이다. KT 고위인사는 “잘못 말려들면 큰일난다. 괜히 무리해 어느 한쪽에 미움을 받게 되면 낭패”라며 “변호사를 고용해 그에게 모든 검토를 맡길 것이다. 어느 쪽도 공격하지 않고, 편들지도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속내는 각 기업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다. 후발 사업자들은 대체로 “구관이 명관이다. 공정위보다는 통신위가 그래도 나을 것”이라는 의견이다. “SKT 신세기통신의 합병을 보라. 그런 ‘비정상적’ 결합을 허용한 것이 공정위다. 만약 정말 공정위와 통신위 사이에 전면전이 붙는다면 통신사업자들은 대부분 통신위 편에 설 것이다. 통신위에는 읍소도 가능하고 상황 설명을 잘하면 (과징금을) 깎아도 주지 않느냐.” 하나로텔레콤 임원의 말이다.
1위 사업자인 SKT도 겉으로는 일관되게 ‘중립’을 외치고 있다. SKT 관계자는 “만약 공정위와 재경부 뜻대로 요금이 내려가면 SKT의 시장 점유율은 지금보다 더 늘어난다. 그러면 정통부의 간섭도 늘고, 그에 따라 시장을 억지로 줄이거나 현상태로만 유지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만약 요금 10%를 내리면 순이익 3000억원이 줄어든다. 우리로서도 공정위의 등장은 반갑지 않을 일”이라고 말했다.
KT 측도 “매년 KT가 5조원, SKT가 3조5000억원 정도를 써 우리나라의 정보통신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다. 통신산업이 정보통신산업의 선순환 고리 구실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만큼 시장 보호를 위한 얼마간의 조치는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편 ‘시장지배적’ 사업자인 SKT와 KT가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 한 통신업계 인사는 “통신업체 사장이 하는 일의 반이 정통부와 통신위 등을 상대하는 것이라 보면 된다. 이래서야 국제 경쟁력이 나올 수 없다. 규제도 원칙 없이 자꾸 흔들리니 어디에 기준을 맞춰야 할지 알 수 없다. 그나마 엄하지만 원칙대로 움직이는 공정위가 규제 부분을 담당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후발사업자 중에서도 “현행 전기사업법으로는 수수료 과다 지급과 같은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횡포를 규제할 방법이 없다. 공정위가 나서면 오히려 1위 사업자의 불공정한 사업 행태를 바로잡아 시장이 더 깨끗해질 수 있다”고 판단하는 쪽이 없지는 않다.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든 사업자 간 일치하는 견해가 있다면 “정통부와 통신위는 분리돼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공정위 판결 사항에 대해선 행정소송이 붙기도 하지만, 통신위 판결에는 어떤 통신사업자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다는 것. 통신위가 정통부와 직접 연계돼 있어 정책상 불이익을 받을까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공정위 조사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공정위 측은 “조사결과가 나오려면 1년은 걸릴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규제 개혁은 어떻게 진행될까. 공정위 담당자는 “7월 말 해결은 불가능하게 됐고 9월까지 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공정위와 정통부의 논쟁을 단순히 ‘밥그릇 싸움’이라 폄훼할 수만은 없다. 산업과 시장에 대한 ‘소신’에 그만큼 큰 차이가 있음이다. 그런 만큼 ‘아름답지 않은 모양’이라며 기업이나 국민에 무조건 쉬쉬하기보다는, 오히려 좀더 공개적인 장에서 토론을 통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