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국적을 얻기 위한 신분세탁과 위장결혼으로 가정해체 위기에 놓인 옌지시의 거리
물론 국적 취득만을 위한 ‘위장결혼’이었기에 한국에 온 뒤 이씨는 상대방 남자의 얼굴조차 본 적이 없고, 한국 국적을 얻은 뒤 바로 이혼절차를 밟았다. 이씨의 한국 이름은 김신정(가명). 각각 다른 이름으로 중국과 한국 국적을 가진 그녀는 두 나라를 자유롭게 들락거릴 수 있게 됐다.
문제는 이씨가 식당 종업원 생활을 하며 돈을 좀 모으자 중국 남편에 대해 관심이 없어졌다는 점이다. 서울 종로의 한 한정식 집에서 일하는 이씨는 한국 국적을 취득한 뒤 월급이 조선족 신분일 때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늘어 최근엔 전셋집도 마련했다. 이씨는 “당초에는 돈을 벌어 고향에 돌아갈 생각이었지만 친지들에게도 한국 남자와 결혼했다는 게 알려져 돌아갈 수도 없는 처지”라며 “서류상의 한국인 남편과 아무 일이 없었지만 옌볜(延邊) 조선족 사람들의 생각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수만명 양국 국경 마음대로 출입
불법체류 외국인에 대한 정부의 단속이 강화되면서 한국 국적을 얻기 위한 조선족 여인의 위장결혼이 극성을 부리고 있다. 특히 2001년 이후 지린성 내 옌볜조선족자치주 공안국(경찰)의 부패가 심각해지면서 조선족 여인들은 신분세탁을 통해 중국인 신분을 유지한 채 새로운 이름으로 한국 국적을 얻어 ‘이중국적자’로 살고 있다. 이들은 두 나라에서 각기 다른 이름을 가지고 이중생활을 하고 있지만, 한국 정부는 상황조차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
옌볜에서는 이런 이중국적자의 수가 옌지시에만 1만명이 넘자 “이중국적을 가지기 위한 위장결혼이 옌볜 사회의 가정과 체제를 붕괴시키고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옌볜대학 이모 교수는 “한국에 가서 돈을 벌어오면 중국인 남편과 가정이 보잘것없어 보이고, 돈을 못 벌고 돌아오면 한국 남자에게 몸 팔아 국적을 산 창녀 취급을 받으니 가족이 버틸 수가 없다”고 말했다. 두 이름, 두 국적을 가진 조선족 여인 수만명이 중국과 한국의 국경을 마음대로 넘나들고 있는데도 어느 나라에서도 통제를 하고 있지 않다.
‘귀화 브로커’로 불리는 위장결혼 브로커들의 명함.
실제 한국 남자와 결혼해 귀화한 조선족 여인도 2001년 542명에서 2003년 3788명으로 6배 넘게 급증했다. 98년 탈북 당시 중국의 공안들과 맺은 인연 때문에 옌지시에서 신분세탁 브로커 일을 하고 있는 탈북자 김모씨(34)는 “지난해 5월 ‘혼인 귀화자’의 경우 어렵던 국어시험까지 면제된 데다 중국 공안에 지불하는 신분청탁 비용이 싸지면서 위장결혼 신청자가 늘고 있고, 그에 따라 위장결혼 알선 브로커들이 옌볜으로 몰려 들어오고 있다”고 전했다.
옌지시의 조선족 여인들은 위장결혼을 욕하면서도 ‘한국 드림’의 유혹에 쉽게 걸려든다.
공짜여행 유혹 ‘귀화 브로커’ 극성
“호적이 깨끗해야 돼요. 이혼을 몇 번 했건 현재 혼자여야 합니다. 호적등본 떼서 한 번 보지요. 2년간 호적에 조선족 여인을 올려두고 따로 살면 됩니다. 100만원 드릴게요. 백두산을 포함한 150만원짜리 패키지 중국여행을 공짜로 시켜주고, 한국에 와서 혼인신고만 해주면 바로 입금시켜줍니다. 나중에 이혼서류 넣을 때 한 번 수고해주면 끝입니다.”
전화를 받은 브로커는 일사천리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전혀 법적으로 문제 될 것 없는 합법적인 사업입니다. 일할 사람이 필요하면 조선족 여자를 헐값에 쓸 수 있고, 그 여자가 마음에 들면 나중에 얘기 잘해서 진짜 같이 살아도 되고…. 뭐 일석삼조라고 할 수 있죠. 그쪽 남편은 돈 몇 푼 쥐어주면 금방 떨어져요.”
결혼 의사가 없음을 전하자 브로커는 “그럼, 공짜로 여행이나 한번 하시죠”라고 말했다. 돈 한푼 없이 이혼을 당한 노숙자에게 공짜 중국여행에다 100만원의 수입은 엄청난 유혹인 셈이다.
옌지 시내에서 민박집을 운영하는 박모씨(56)는 “한 달에 많게는 서너 번 정도 한국인 브로커들이 5~6인조 팀을 구성해서 찾아온다”며 “브로커들이 이번에 결혼할 여자들이 누구 누구라며 자랑하는 일이 흔해 시내에 소문이 쉽게 난다”고 전했다. 심지어 70살 가까이 되는 걸인이나 다름없는 노인도 끼여 있을 때가 있다는 게 민박집 주인 박씨의 귀띔.
위장결혼으로 이중국적을 취득한 뒤 옌볜으로 돌아간 조선족 여인들 중 많은 수가 사회와 가족의 냉대에 시달린다.
문제는 이런 돈을 마련할 수 있는 조선족 교포가 옌볜에서도 중산층 집안의 유부녀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들은 배고픔과 가난 때문에 ‘한국행’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한국을 들락거리며 좀더 쉽게, 단시간에 많은 돈을 벌고 싶어 위장결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주로 중국 내에서 위장이혼을 하고 한국 남성과 위장결혼을 하는 방법이 이용됐으나, 위장이혼이 실제 이혼으로 연결되는 사례가 많아 요즘은 중국 남성들이 위장이혼을 한사코 거부하고 있다. 이에 따라 등장한 것이 신분세탁. 우리 식으로 말하면 현재 주민등록이 되어 있는 상태에서 새로운 사람의 이름으로 주민등록증을 다시 만든다는 이야기다. 신분세탁 브로커인 탈북자 김씨는 “중국은 아직도 출생신고를 하지 않은 채 살다 나이가 들어 신분증을 받는 사람이 많은 까닭에 신분증 발급을 담당하는 지방 공안국 관리들에게 우리 돈으로 15만원에서 100만원을 주면 가명으로 된 신분증을 구하는 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이 모두가 중국이 아직 주민정보 전산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신분증을 받아든 조선족 여인들은 옛 이름으로 중국 내에서의 결혼생활을 유지하면서 다른 이름으로 비자를 내고 한국 남자와 결혼해 한국 국적을 얻는 것이다.
옌볜대학 이교수는 “옌지에는 현재 열 집 건너 한 집꼴로 위장결혼으로 한국 국적을 획득한 아내 때문에 큰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며 “한국 정부가 이런 식으로 이중국적자의 한국 진입을 방치한다면 간첩의 침투 등 안보 상황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