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보호법에 따른 보호지역 지정을 놓고 몸살을 앓고 있는 강원도 태백시의 전경
7월30일 오후. 강원 태백시 시가지에 들어서자 눈에 들어온 광경은 백두대간 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백두대간보호법) 시행에 반대하는 플래카드의 물결이었다. 무더위를 피해 피서객의 이동이 절정에 이른 시기이지만 태백시에서는 행락객의 모습을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택시기사들은 하릴없이 손님을 기다리고, 먹거리를 파는 상인들은 무기력하게 잠을 청하고 있었다. 생존의 위협에 저항하는 태백 시민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만이 해발 650m의 태백시에 퍼져가고 있었다.
주민 생존이냐, 환경 보전이냐. 백두대간보호법에 따른 보호지역 지정을 놓고 태백시가 몸살을 앓고 있다. 최근 백두대간보호법의 규정에 따라 태백시 전체 면적의 56%가 보호지역으로 지정될 것으로 알려지면서 태백 주민의 위기감이 고조됐다. 산림청이 강원도와 각 시·군에 보낸 백두대간보호법에 따른 핵심·완충지역은 도 전체 면적의 13%인 2142km2. 이 가운데 태백시가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태백 주민들은 “한때 인구 12만이던 태백시가 이제는 5만5000명밖에 남지 않을 정도로 쇄락했다”며 “그간 희망을 걸어온 개발 사업마저 백두대간보호법으로 인해 수포로 돌아간다면 지역 전체가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보호지역 지정 능선 300m 이내로 해야”
2005년 1월1일부터 시행될 백두대간보호법은 설악산 향로봉에서 지리산 천왕봉까지 684km의 백두대간을 무분별한 개발 행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제정됐다. 하지만 모든 법에 우선하는 특별 규정인 이 법이 폐광지역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하 폐특법)과 관광진흥개발촉진법 등에 의거해 만들어진 각종 개발 계획을 폐기시킬 수 있어 논란이 시작됐다. 한국산지보전협회(회장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는 7월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백두대간 관리 실태와 향후 보전전략’을 주제로 첫 공청회를 준비했으나, 태백 시민들의 반발로 행사가 무산되기도 했다.
태백 시민들은 “백두대간보호법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자연을 살리기에 앞서 사람부터 살려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항변한다.
“작년과 비교할 때 수입이 20~30% 떨어졌어요. 경기가 나아지기는커녕 더 나빠지기만 하니, 거참. 서학레저단지 조성 등 개발사업이 추진되면 좀 나아질 줄 알았는데, 백두대간보호법으로 모든 사업을 묶으면 이제 우리는 무엇을 기대하고 살아야 합니까.”
태백에서 수십년간 택시기사로 일해온 정연철씨(53)의 넋두리다. 특히 숙박업이나 운수업,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있는 태백 시민들의 반발은 더욱 크다. ‘뿌리 깊은 소외감’과 ‘정부에 대한 원망’도 이들의 아픔을 키워왔다.
태백시번영회의 이상출 사무국장은 “강원랜드가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직원을 채용하는 데 지역 주민들을 배제해왔다”며 “정부는 강원 지역 살리기에 대한 의지가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그나마 기대를 걸었던 개발사업까지 백지화될 경우, 민자 유치는 고사하고 모든 시민이 태백을 떠나야 할 형편”이라고 주장했다.
백두대간보호법은 출발부터 문제를 안고 있었다. 의원 발의로 법이 탄생하면서, 법의 실질적 이해 당사자인 주민들의 의사가 별로 고려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법의 시행 부서인 환경부와 산림청의 애매한 역할 분담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 법은 환경부 장관이 정하는 원칙과 기준에 따라 산림청장이 백두대간 보호를 위한 기본 계획을 세우고, 보호지역을 지정한다. 개발 주도는 산림청장이 하되 환경부 장관의 의견을 듣도록 돼 있다. 2005년 법의 시행을 앞두고 보호지역을 지정하는 과정에서 혼란이 빚어지는 데는 부처 간의 혼선도 한몫하고 있다.
파문이 커진 계기는 7월 초 산림청이 각 시·군에 전달한 2만5000분의 1 지도가 공개되면서부터다. 이 지도는 환경부가 5월 제시한 백두대간 지정 원칙과 기준에 입각해 핵심 완충 보호지역이 명기된 것으로, 태백·황지 등 일부 도심구간까지 포함돼 논란이 됐다. 산림청은 주민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각 시·군이 요청한 제외 지역을 공청회를 통해 받아들인다고 하지만, 주민들은 “사전에 협의 없이 먼저 지도를 공개한 것은 정부의 일방주의 행정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태백시의회 정용화 의장은 “태백시가 지금껏 추진해오던 23개의 사업 중 서학레저단지, 한우사육단지 조성 등 17개 사업이 보호지역에 묶여 수포로 돌아갈 상황”이라며, “폐특법에 따른 개발진흥지구 예외 인정과 주민의 보상을 보장하는 법개정을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또 “보호지역은 마루금(능선) 아래 300m 이내로 지정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7월30일 태백시 의회에서 벌어진 태백지역현안대책위원회의 토의 모습.
이처럼 보호지역 지정을 놓고 논란을 벌이는 곳은 비단 태백뿐만이 아니다. 현재 강원도의 백두대간보호법 적용 지역은 강릉, 동해, 태백, 속초, 삼척 등 12개 시·군에 달한다. 삼척시는 “오십천의 하천폭 100~300m 구간이 핵심구역 및 완충구역으로 지정될 경우 일대 농가주택 신·증축이 불가능하고, 시가 역점적으로 추진하는 동굴 및 각종 폐광 개발사업이 차질을 빚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2014년 동계올림픽 후보지를 꿈꾸는 전북 무주군과 강원 평창군은 “보호지역으로 지정될 경우 동계올림픽 준비를 위한 개발에 차질이 생긴다”고 호소하고 있다.
평창과 무주 동계올림픽 준비도 차질
태백의 시가지 곳곳에 백두대간보호법의 개정을 요구하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어떤 기준으로 백두대간보호법에 따른 보호지역을 설정할 것인가. ‘환경 보호’와 ‘주민 생존권 보호’라는 두 마리 토끼를 어떻게 잡을 수 있을까. 이 두 질문은 정부가 해결해야 할 중요한 숙제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