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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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느껴봐, 행복할 거야

  •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입력2004-08-06 15: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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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느껴봐, 행복할 거야
    우리는 곧잘 감각의 위대함을 잊고 산다. 공기나 물의 소중함을 잊고 사는 것처럼. 교육자이자 시인인 다이앤 애커먼은 ‘감각의 박물학’이란 책에서 독자들의 감각을 한껏 열어젖힌다. 그는 예술과 철학, 인류학과 과학을 넘나들며 후각 촉각 미각 청각 시각 공감각 등 여섯 가지 감각의 기원과 진화과정을 탐구한다. 이 책을 읽노라면 감각의 발견은 곧 행복의 발견인 듯 보인다.

    뜻밖에도 역사에서 가장 감각적 경험을 즐겼던 사람은 클레오파트라, 마릴린 먼로, 프루스트처럼 육체적 쾌락에 빠진 이들이 아니라 삼중의 장애를 지닌 한 여성이었다. 헬렌 켈러. 그는 눈이 보이지 않고, 귀도 들리지 않으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라디오에 두 손을 올려놓고 음악을 즐길 때면 나머지 감각을 섬세하게 조율해 관악기와 현악기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었다.

    기억의 창고를 끄집어내는 감각, 후각

    냄새는 추억을 불러일으키고, 잠자는 감각을 일깨우며, 욕구를 채워주고, 매혹하는 동시에 경고한다. 열정을 부채질해 유혹에 무릎 꿇게 하고 쾌락에 젖게 한다. 인간은 숨쉴 때마다 냄새를 맡고 1만 가지가 넘는 냄새를 구분할 수 있지만, 그것을 언어로 표현하기는 쉽지 않다.

    후각은 때로 멍청하다. 마릴린 먼로가 애용했다는 향수 ‘샤넬 No. 5’에서 우리는 재스민과 장미, 흰 붓꽃, 삼나무와 바닐라향을 맡는다. 그러나 이 향수는 실험실에서 완전한 인공향(알데히드)으로 만든 최초의 향수다. 후각은 인공과 자연을 구분하지 못하는 숙맥인 것이다.



    나와 세계 사이의 경계, 촉각

    인간의 피부는 호흡하고 배설할 뿐 아니라 빛과 세균을 막고, 비타민 D를 합성하며, 열과 추위를 막아준다. 또 성적 매력을 풍기고, 내부를 보호하며, 무엇보다 촉각을 느끼는 바탕이 된다.

    그 느낌은 얼마나 다양한가. ‘쓰다듬다’ ‘귀여워하다’ ‘애무하다’ ‘따끔하다’와 같은 말의 온갖 질감, 균형이 맞지 않는 평행봉 위에 올라가기 전 손에 바르는 가루, 후텁지근한 여름날에 얼음처럼 차가운 연못에 뛰어드는 느낌. 이런 촉각 없이 사는 것은 흐릿하고 마비된 세상을 사는 것과 같다.

    사회적인 감각, 미각

    다른 감각들은 혼자서도 그 아름다움을 온전히 즐길 수 있지만 미각은 대단히 사회적인 것이다. 세계 어디를 가도 중요한 사업은 식사하는 동안 이뤄진다. 결혼식은 피로연으로 끝나고, 친구들은 기념 만찬 자리에서 재회한다. 아이들의 생일을 알려주는 것은 아이스크림과 케이크다.

    음식은 또한 쾌락의 근원이다. 인간은 잔인하게도 다른 생명을 취하여 향연을 벌이지만, 혀에 감도는 맛은 그런 죄책감을 씻어주고 공포조차 달콤한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맛은 이성으로는 합리화할 수 없는 모순, 달콤한 유혹이다.

    귀 기울이는 가슴, 청각

    다시 느껴봐, 행복할 거야
    모든 것은 공기 분자의 파동에서 시작된다. 이것이 고막에 도달하여 정교한 통로를 따라 내이로 들어간다. 따라서 귀는 공간감각과도 관련 있다. 소리를 들을 때는 공간의 위치를 알고 형태와 강도를 구별해야 한다.

    인간이 만들어내는 가장 아름다운 소리인 음악은 때로 언어의 구실을 하기도 한다. 소리는 삶에 대한 이해를 두텁게 하고, 우리는 소리에 기대어 주변의 세계를 해석하고 세계와 소통하며, 자신을 표현한다. 우주 공간은 고요하지만 지구상에 있는 거의 모든 것은 소리를 낸다. 소리를 통해 자신이 살아 있음을 알린다.

    가장 주관적인 감각, 시각

    “한 영혼이 세상에서 하는 가장 위대한 일은 보는 것이다. 선명하게 본 것은 모두 시이고 예언이며 종교다.”(존 러스킨)

    실제로 인체의 감각 수용기의 70%가 눈에 모여 있기 때문에, 인간은 주로 세계를 봄으로써 그것을 파악한다. 그러나 눈은 빛을 모을 뿐 보는 것은 뇌에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아도 머릿속에서 어떤 장면을 그릴 수 있다. 이런 시각적 이미지는 감정을 건드리는 도화선이 되어 끝없이 펼쳐지면서 감각 전체를 일깨운다.

    예술의 원천, 공감각

    하나의 감각을 자극하면 다른 감각이 동시에 자극을 받는다. 상식의 범위 밖에 존재하는, 규정하기 힘든 감각도 있다. 감각의 뒤섞임, 공감각은 감각의 과잉으로 인한 혼란이자 창조적인 힘이 되기도 한다. 색깔과 음악을 연결해 작곡했던 스크리아빈과 림스키코르사코프, 작가 나보코프와 포크너 같은 이들은 공감각의 문을 활짝 열고 예술혼을 불태웠다.

    1990년 미국에서 출간된 이후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은 이 책은 1995년 국내에서 ‘열린 감각’이란 이름으로 출간된 뒤 절판됐다. 이번 책은 번역이 좀더 보완되고 누락분이 보충됐으며, 도판이 들어가 읽기 좋게 만들어졌다.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 옮김/ 작가정신 펴냄/ 472쪽/ 2만2000원

    Tips | 다이앤 애커먼(Diane Ackerman)

    미국 일리노이 주 와키건에서 태어나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을 졸업하고 코넬대학에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코넬대학 영문학과 교수. ‘가장 희귀한 것’ 등 에세이 8권과 ‘달콤한 웃음의 재규어’ 등 시집 8권을 냈다. 그의 글에는 독특한 자연주의 감성과 과학적 관찰력, 폭넓은 철학적 사색이 담겨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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