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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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모노드라마 젊어진다

천편일률적 넋두리식 탈피 … 채시라 기용, 여성의 꿈과 현실 다룬 ‘여자’ 눈길

  • < 신을진 기자 > happyend@donga.com

    입력2004-10-21 13: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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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 모노드라마 젊어진다
    작년 6월부터 시작해 100회 공연을 훌쩍 넘기며 성황을 이뤘던 김혜자씨의 모노드라마 ‘셜리 발렌타인’은 40대 주부 ‘셜리’를 내세워 소외된 중년여성의 소극적이고 헌신적인 삶을 다뤘다. 연극을 보기 위해 극장을 찾은 이들은 대부분 극중 ‘셜리’와 비슷한 또래의 주부들이었다. 김혜자씨가 무대에서 열연을 펼칠 때 객석에서는 어김없이 “맞아, 내 얘기야”라는 탄성이 터져나오곤 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셜리…’처럼 여자의 굴곡 많은 생애와 소외를 다룬 연극은 참 많았다. 올해 환갑을 맞은 연극배우 박정자씨의 ‘위기의 여자’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 ‘그 여자, 억척어멈’이 있었고, 김지숙의 ‘로젤’과 윤석화씨의 ‘목소리’ ‘딸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어 손숙씨의 모노드라마 ‘담배 피우는 여자’가 그랬다. 재작년에는 고두심씨와 김미숙씨가 함께 출연한 연극 ‘나, 여자예요’가 제일화재 세실극장에서 공연되어 화제를 모았다.

    여배우가 나와 여성의 삶을 이야기하는 이런 유의 ‘여성연극’은 한국 연극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자생적 장르로 자리잡았고, 우리 연극의 한 조류를 개척해 왔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위기의 여자’ ‘엄마, 안녕’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 같은 대표적인 여성연극을 무대에 올리며 ‘여성연극의 메카’로 자리잡은 산울림소극장의 작품들은 30, 40대 중산층 주부들을 새로운 관객으로 끌어들이며 대단한 성공을 거둬왔다.

    여성 모노드라마 젊어진다
    요즘 연극계의 손꼽히는 중견 여배우들이 산울림 무대를 통해 부동의 스타 연기자로 자리잡은 데서 알 수 있듯, 그동안 여성연극은 흥행의 보증수표였고 또한 스타의 산실이었다. 여성연극 하면 으레 모노드라마를 떠올릴 정도로 여성연극은 1인극이 강세였고, 대부분 연기 잘하기로 소문난 스타급 여성 연기자의 이름값에 기대는 경우가 많았다.

    넓은 무대에 혼자 서서 상대역 없이 연기를 한다는 건 대부분 술회와 독백, 회상과 반성의 형식으로 이루어지기 쉬운데 여성 모노드라마의 한계는 어쩌면 여기서 비롯되는지도 모른다. 무대에선 ‘불쌍한 여자’가 나와 시종 눈물겨운 신세 한탄을 하고, 관객들은 그런 주인공에게 공감과 동정을 보낸다. 비슷비슷한 형식과 내용의 여성연극이 거듭 무대에 오르면서 여성의 삶에 대한 뚜렷한 주제의식을 드러내거나 극적으로 형상화하는 데 성공한 작품을 찾기란 점점 힘들어졌다.



    여성 모노드라마 젊어진다
    아직도 여성연극은 억압적 삶의 체험을 다루는 수준에 그치고 있는 것이 사실. 비평가들은 “시대에 맞는 새로운 여성 역할 모델을 제시해야 하고, 소재와 표현형식의 개발은 물론 새로운 작가와 스타 발굴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연극평론가 김윤철씨는 “여성연극이 연극을 통한 의식화 운동이라는 사회적 기능과 연극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해 온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 남성 억압자들을 욕하는 데서 벗어나 여성 고유의 정체성과 사회적 권리회복 등 좀더 발전된 수준으로의 도약을 이루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또한 이미 검증된 외국 유명작품을 들여와 흥행이 보증되는 스타를 내세워 공연하는 안일한 제작 방식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지금 이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문제를 다루고, 여성뿐 아니라 남성 관객들의 폭넓은 공감까지 이끌어낼 수 있을 때 여성연극은 그 존재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는 3월29일부터 청담동 유씨어터 무대에 오르는 모노드라마 ‘여자’는 눈길을 끈다.

    여성 모노드라마 젊어진다
    이미 익숙해져 버린 ‘…여자’ 시리즈에서 따온 듯한 제목이지만, 채시라의 모노드라마 ‘여자’는 기존의 여성 모노드라마와 차별화되는 부분이 있다. 우선 주연배우가 30대로 ‘확’ 젊어졌다. 그동안의 여성극이 삶에 지칠 대로 지치고 희망이 없어 보이는 40대 이상 중년 여성의 삶을 그려왔다면 ‘여자’는 영화 ‘에린 브로코비치’의 줄리아 로버츠처럼 유머러스하고 밝은 캐릭터의 30대 초반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젊은 여성들의 꿈과 현실의 문제를 다룬다.

    연극의 원안을 쓴 이는 ‘여자만세’ 등의 TV 드라마 작가로 잘 알려진 박예랑씨. 채시라씨의 고교 후배이기도 한 박씨는 이번 연극에서 최근 사회적 이슈로 대두된 ‘호주제’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넋두리로 일관하는 천편일률적 여성 모노드라마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두 번의 이혼으로 성이 다른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주인공 ‘인혜’의 문제는 우리 사회 여성들이 겪고 있는 현실적 고민이다. 말도 안 되는 법으로 고통 받는 여성들의 문제를 제기하고 싶었다.”

    ‘연극 경험도 별로 없는 스타를 앞세워 상업성을 추구했다’ ‘거듭되는 이혼타령이 식상하다’는 비판도 들려오지만, 연극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관객 몫으로 돌려야 할 것 같다. 일단은 ‘여자’가 그동안의 여성 모노드라마에 비해 훨씬 젊어졌고, 내용적인 면에서도 진일보한 의식을 담고 있다는 것에 점수를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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