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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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와 타협 없는‘그만의 음악’

랩·메탈·하드코어 등 언제나 ‘새로운 것’ … 전체 대중 아닌 ‘젊음’ 겨냥

  • < 임진모 / 음악평론가 >www.izm.co.kr

    입력2004-10-20 16: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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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류와 타협 없는‘그만의 음악’
    1992년 봄 서태지가 ‘난 알아요’를 가지고 나올 때만 해도 그는 댄스가수로 보였다. 비록 랩이라는 새로운 스타일로 치장했어도 두 명의 백댄서가 증명하듯 그 음악은 명백히 댄스였다. 지금도 서태지 음악의 정체에 대한 약간의 논란은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그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은 그를 ‘10대 댄스음악 붐을 몰고 온 가수’로 규정해 버린다. 하지만 온당하게 말해 애초 그는 대중적 성공을 위해 자신의 ‘음악적 태생’을 감추었던 인물이다. 비주얼 흐름을 겨냥해 당시로는 생경했던 랩을 수단으로 했을 뿐, 실상은 ‘로커’였다. 서태지와 아이들 이전에 그는 한국 최초의 헤비메탈 밴드라는 ‘시나위’에서 베이스를 연주하며 의지와 내공을 다졌다.

    서태지의 진정성은 1993년 두 번째 앨범에서 나타났다. ‘난 알아요’ 이상의 폭풍을 일으킨 ‘하여가’는 랩의 비트가 한층 격렬해진 것은 물론, 곡 중간에 1분여 가까운 록 기타 솔로연주가 포함되어 있었다. 아마도 히트한 노래 가운데 최초로 록의 전형이라고 할 기타 노이즈(효과음의 일종인 디스토션)를 사용한 뮤지션은 서태지였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전 ‘난 알아요’도 초반부만 랩이었지 실은 노이즈가 실린 록 음악이었다.

    주류와 타협 없는‘그만의 음악’
    1995년 엄청난 파장을 야기했던 3집에서 그는 마침내 로커의 본령을 만천하에 고지한다. ‘발해를 꿈꾸며’ ‘교실이데아’를 통해 이제까지 적당히 감추어온 록의 기질을 송두리째 드러낸 것이다. 여기선 과거의 메탈을 비롯해 당시 록의 대세였던 얼터너티브 록과 펑크 등 ‘소란스런’ 음악들을 시도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만들어놓은 댄스음악 판을 무거운 록으로 다시 한번 전복을 꾀했다. 이곳저곳에서 ‘주류질서의 혁명아’라는 평이 나왔다.

    이듬해인 1996년 해산과 맞물린 4집에서는 예상을 깨고 다시 랩으로 복귀, ‘컴백홈’을 통해 역시 생소했던 ‘갱스터 랩’을 실험했다. 하지만 더 이상 그를 랩 음악으로 연결시킬 수 없을 만큼 앨범 곳곳에 물보다 진한 록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 혈통은 1998년 솔로 1집에서도 계속되었다.

    2000년 가을 미국에서 귀국해 발표한 솔로 2집에서는 ‘하드코어’란 음악을 들고 나와 예의 사회적 폭발을 재현했다. ‘울트라맨이야’ ‘인터넷 전쟁’과 같은 곡은 메탈, 랩, 펑크 등이 결합된 잡종으로 어마어마한 굉음이었다. 수작이었지만 솔직히 일반 대중이 듣기에는 벅찼다. 그는 다수 대중과 멀어질 각오를 하면서 마니아 음악을 취한 것이었다. 그의 음악과 태도는 다분히 비타협적이다. 그래서 때로 주류 언론과 대립각을 세운다. 하지만 그의 음악에 내포된 성격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그는 단 한번도 제도권이 요구하고 기성세대가 선호하는 음악을 한 적이 없다. 랩, 메탈, 얼터너티브 록, 갱스터 랩 그리고 하드코어는 한결같이 아버지 세대가 싫어하는 음악들이다. 사실 갱스터 랩과 얼터너티브 록의 경우만 봐도, 하는 사람은 다를지언정 진보성향이란 기본은 같다.



    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서태지는 ‘국민가수’란 말을 듣지 못할 것이다. 그는 어디까지나 피 끓는 젊음과 동행하고 싶어하지, 전체 대중을 포괄하고자 하지 않는다. 거기에는 청춘의 생래적 저항이 내재한다. 전문적으로 말하면 ‘하층민 젊음’(under class youth)의 반역성이다. 서태지는 그 힘으로 주류 판을 뒤엎거나 아니면 최소한 그것과 거리를 두고자 한다. 그리하여 이러한 뜻에 동의하는 젊음은 주저하지 않고 그와 ‘같은 편’이 된다.

    언제나 ‘새로운 것’ ‘젊은 것’ ‘비딱한 것’이 그의 것이다. 애초부터 시선은 갈라지게 되어 있다. 우리의 선택은 ‘내가 그를 좋아하느냐 아니냐’지,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그더러 해라 마라’는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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