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광안리해수욕장 전경.
2월 6일 오후 부산 자갈치시장 앞에서 탄 택시가 부산항대교에 오를 즈음 60대 택시기사는 “손님은 어디서 왔는교” 하고는 흘깃 기자를 쳐다봤다.
부산은 1990년 1월 ‘3당 합당’ 이후 민주자유당(민자당)을 시작으로 줄곧 자유한국당(한국당)의 아성이었다. 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지방선거)가 실시된 이후 단 한 차례도 민주당이 승리하지 못한 곳이다. 그러나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새누리당(현 한국당) 분당 사태를 겪으며 아성이 크게 흔들렸다. 지난해 5월 19대 대선에서는 더불어민주당(민주당) 문재인 후보(38.71%)가 한국당 홍준표 후보(31.98%)를 앞섰다. 현재까지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최근 민주당 복당 신청을 한 오거돈 전 장관과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 등 민주당 인사들이 앞서가고 있다.
오거돈 우세 속 ‘文 중간평가’ 고개
오거돈 전 해양수산부 장관,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 서병수 부산시장 [동아DB, 뉴시스]
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인터넷 홈페이지(www.nesdc.go.kt) 참조.
‘돌직구뉴스’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조원씨앤아이에 의뢰해 1월 20~22일 부산시민 801명을 대상으로 한 부산시장 후보 적합도 여론조사(표준오차 95%에 신뢰수준 ±3.5%)에서도 △오거돈(29.1%) △서병수(23.5%) △김영춘(13.1%) △박민식(5.4%) 순이었다. 정당 지지율은 민주당(49.0%), 한국당(33.4%), 바른정당(4.6%), 정의당(2.8%) 순서였다.
이날 부산 상업 중심지인 서면 일대에서 만난 시민들도 연령대에 따라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은행업에 종사하는 김재홍(44) 씨는 “최순실 사태에 책임을 져야 하는 인사(서 시장을 지칭)가 다시 시장선거에 나오는 것 자체가 코미디”라며 “지난 대선처럼 확실하게 민주당 후보를 밀어 문 대통령의 적폐청산 작업과 남북 화해 분위기 조성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함께 식사하던 동료(40대)의 반응도 비슷했다.
김철욱(53) 씨는 “최근 영화 ‘1987’을 봤는데, 30년 전 대학생활이 떠올랐다”며 “부산도 이제 지방권력을 교체해 민주화를 완성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그런 점에서 오거돈 후보는 공직생활 대부분을 부산에서 한 ‘부산사람’이고, 지난 지방선거에서도 아깝게 떨어져(서 시장과 1.3%p 차이) 동정표가 제법 나올 것”이라고 부연했다.
부산시민들은 정당별 후보가 확정되지 않은 만큼 출마 예상자보다 문재인 정부 정책과 홍준표 대표에 대한 평가를 바탕으로 지지 후보를 결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6·13 지방선거는 최순실 사태의 여파가 여전하고, 문재인 정부 출범 1년 만에 치르는 만큼 중간 평가 의미가 떨어진다는 평가가 많았다. 그러나 최근 경남 밀양 세종병원 화재 등 잇따른 사고와 최저임금 인상 후폭풍, 평창동계올림픽 단일팀 구성 과정에서 보인 대북 저자세 논란 등에 대한 ‘정권심판론’도 고개를 들고 있었다. 서면에서 자영업을 하는 최철민(62) 씨의 말이다.
“문 대통령이 잘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갈수록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소상공인협회 등을 통해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 많은 우려를 전달했는데도 그대로 밀어붙이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 소통을 중시하는 정권이 맞나’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최근 밀양, 충북 제천 화재 참사를 보니 세월호 참사가 떠오르더라. 박근혜 정부에서 세월호 참사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 만큼 자신들이 정권을 잡았으면 좀 달라져야 할 거 아닌가. ‘정치인은 다 똑같다’는 생각이 들어 선거에 관심이 없어졌다.(웃음)”
“북한 현송월이 뭔데…”
대표적 서민 주거지역인 서동시장 인근의 돼지국밥 전문점에서 만난 60대 시민은 평창동계올림픽 얘기부터 꺼냈다.“스포츠가 남북 화해에 기여할 수 있지만 올림픽은 전 세계 축제 아닌가.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장)이 왔다고 언론은 무슨 큰일 난 것처럼 생방송하고 북한만 주목하던데, 올림픽이 남북한만의 행사인가. 얼마 전 (1월 18일) 미국 핵잠수함(텍사스함)이 부산항에 기항하려다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정부 측 태도 때문에 일본으로 갔다고 들었다. 북한은 제재가 심해지니까 올림픽을 돌파구로 생각한 거 같은데 좀 의연하게 대처해야지, 상전 모시듯 하면 안 된다. 그러니 대통령 지지율이 50%대로 떨어진 거다. 북한에 끌려 다니면서 마식령스키장 간다고 하늘길 열고, 만경봉호 입항한다고 바닷길 열어주니 이번 선거에선 보수당 후보를 지지할 거 같다. 미워도 다시 한번이다.”
부산대 A교수의 말에선 ‘여론과 민심의 괴리’를 읽을 수 있었다. 자신의 의견이 다수 의견과 같으면 적극 동조하지만 소수일 경우 고립되는 게 두려워 침묵한다는 ‘침묵의 나선이론’이 떠올랐다.
“선거가 아직 4개월 남아서인지 현재 여론조사 결과는 인지도순인 듯하다. 뉴스를 보니 부산에서 민주당 후보가 시장이 될 거 같던데, 사실 박 전 대통령 탄핵 이전까지 부산 주류 정서는 ‘보수’였다. 그런 ‘보수층’이 대통령 탄핵 이후 정치 얘기를 잘 안 한다. 과거에는 진보층이 말을 안 했는데 바뀐 거다. 그런데 최근 보수층에 민감한 북한·안보 이슈가 연일 터졌다. 한미동맹 균열과 평창동계올림픽 아이스하키 단일팀 ‘역차별’ 논란 등으로 샤이 보수층이 목소리를 낸다면 선거 결과는 모른다. 지난 대선 때 여론조사에서 더블스코어로 지던 홍준표 대표가 문 대통령과 비슷하게 표를 받았다.”
지난해 19대 대선에서 한국갤럽이 대선 1주 전(5월 1~2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후보의 PK(부산·울산·경남) 지지율은 42%, 홍준표 후보는 23%였지만 실제 득표율은 문 후보 38.3%, 홍 후보 31.8%였다.
이날 기자가 만난 부산시민 26명 가운데 민주당 후보 지지자는 9명, 한국당 등 기타 정당 지지자는 7명이었고 10명은 결정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최초의 민주당 소속 부산시장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 보이지만, 앞으로 남은 기간 대통령 지지율과 각 정당의 후보 인물평, 샤이 보수의 결집 여부에 따라 선거 판세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