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은 2016년 총선에서는 국민의당을, 지난해 대선에서는 문재인 후보를 선택했다. 6·13 전국동시지방선거(지방선거)를 앞두고 국민의당은 바른정당과 통합해 통합신당을 출범하기 직전이고, 이에 반발한 호남 출신 의원이 대거 탈당해 2월 8일 민주평화당을 창당했다. 호남에는 현재 더불어민주당, 안철수 대표 주도의 통합신당, 민주평화당 등 세 갈래 선택지가 놓여 있다. 호남 표심의 향배를 살펴보고자 광주송정역으로 향하는 KTX에 몸을 실었다.

“전쟁 막을라고 애쓰지 않소”

광주송정역 앞은 2월 첫째 주말의 매서운 추위 탓에 을씨년스러웠다. 좌우 두 줄로 길게 늘어선 택시들이 지역경제의 어려운 사정을 웅변하는 듯했다. 그중 한 택시에 몸을 실은 뒤 기사에게 “지방선거에 대한 광주 민심이 궁금해 내려왔다”고 본론부터 꺼냈다. 선거, 민심 운운하는 기자의 얘기에 “먹고살기도 바쁜데, 선거는 무슨…”이라며 냉소적인 반응이 튀어나왔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잘하고 있다고 보느냐’ ‘안철수 대표가 바른정당과 통합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박지원, 천정배, 정동영 의원의 민주평화당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어느 정도 당선할 것으로 보느냐’는 등 질문을 연달아 던졌다. 잠자코 듣고 있던 택시기사는 대뜸 안철수 대표에 대한 불만부터 토로했다. 

“안철수는 글러먹어 부렀어요. 어디 잡을 데가 없어 한나라당과 손을 잡는답디까.” 

올해 환갑을 맞았다는 택시기사 박모 씨는 바른정당과 합당하려는 안 대표가 영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바른정당이 창당된 지 1년이 지났지만, 박씨는 여전히 바른정당을 ‘한나라당’이라고 불렀다. 



“잠자코 있으면 다음번에 기회가 있을 것인디, 뭣이 그리 급한지 모르겄소. 안철수는 인자 틀려먹어 부렀소.” 

박씨는 20대 총선과 지난해 대선 때 국민의당과 안철수 후보를 지지했다고 했다. 그런데 안 대표가 뚜렷한 이유도 없이 한나라당 출신인 바른정당과 손잡으려 하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박씨의 원망은 안 대표에게만 머물지 않았다. 민주평화당 창당을 주도하는 호남 출신 중진의원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 사람들도 인자 그만해야 하지 않겠소. DJ(김대중 전 대통령)가 돌아가신 지가 언젠데…. 참말로 못마땅허요.” 

박씨는 문 대통령에 대해서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문 대통령이 생각했던 것보다 참 잘하지요잉. 달리 보입디다. (대선) 전에는 그리 못마땅하더니만…. (평창동계)올림픽도 성공시키고, 전쟁도 막을라고 애를 많이 쓰고 있지 않소.”

“우리 대변하는 정치세력 있어야”

2월 3일 오후 전남 서남권 정치 1번지라는 무안군 망운면으로 향했다. 전남도청이 들어선 무안군 삼향읍 남악신도시에 많은 주민이 모여 살지만 전남 서남권의 정치 풍향을 살펴보려면 망운면 여론을 들어봐야 한다고 이 지역 인사들은 입을 모았다. 망운면 모 음식점에서 이 지역 출신 인사 3명과 늦은 점심을 함께 했다. 

수십 년 전 얘기로 한참을 이야기꽃을 피운 끝에 ‘민주평화당 창당’ 등 현안이 화제로 떠올랐다. 대화는 열띤 토론장으로 변했다. 서로 자신의 견해를 상대에게 납득시키려는 듯 목소리가 점차 높아졌다. 주로 대화를 나눈 세 사람의 얘기를 재구성하면 이렇다. 

50대 중반인 사업가 A씨. “안 대표가 바른정당과 통합하려는 것은 중도와 합리적 보수로 외연을 확장해 차기 대선을 준비하기 위함이다. 그러니 통합은 불가피하다.” 

50대 중반으로 카센터를 운영하는 B씨. “안 대표가 뭐라고 하든 결과는 마찬가지다. 보수 마음을 얻으려고 호남을 버리는 것이다.” 

70대 초반으로 음식점을 운영하는 C씨. “안철수가 저렇게 나오면 우리(호남) 목소리를 대변해줄 세력이 필요하다. 문 대통령이 우리(호남)가 좋아서 대우하는 게 아니다. 기반이 약해서 필요하니까 잠시 예우해주는 것뿐이다. 제목소리 내고 살려면 우리 입장을 대변해줄 세력이 필요하다.” 

C씨의 생각은 확고했고 A, B씨는 똑 부러지게 반박하지 못했다. C씨는 이번 지방선거에 전남도지사 후보로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이 거론되는 것을 긍정적으로 여겼다. 

“박지원이 누군가. 다들 정치 9단이라고 하지 않는가. 어쭙잖은 사람이 도지사 하면서 어영부영 보내는 것보다야 박지원이 화끈하게 (도지사) 하는 게 낫지 않겠나. 그게 우리한테도 도움이 될 것이고….” 

B씨는 “민주당에서 확실한 사람을 내면 모르겠지만, 박지원이가 한 번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며 동조했다. 

민주당에서는 지난 총선 때 전남에서 유일하게 민주당 후보로 당선한 이개호 의원이 도지사 출마 뜻을 밝히고 있다. 당 지도부는 ‘전남 유일 민주당 의원’인 이 의원의 출마를 극구 만류하고 있다. 하지만 이 의원은 출마의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 의원은 2월 4일 “도지사 출마를 위해 2월 13일 이전에 민주당 전남도당 위원장과 최고위원직을 사퇴하기로 했다”며 “출마 의지에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민주당에선 김영록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거론되기도 한다. 19대 의원을 지낸 김 장관이 지방선거에 출마하면 해볼 만하다는 것이다. 이번 지방선거 때 민주당 후보로 전남 신안군수 출마를 준비 중인 박석배 민주당 중앙당 정책위원회 부의장은 “호남 유권자 정서는 지난 대선 때 표심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며 “문 대통령과 정부여당이 호남에 각별히 공을 들이고 있다는 것을 지역 유권자들은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소지역주의, 2030 투표율이 변수

그러나 ‘민주당의 일방적 우세’에 대한 부정적 기류도 없지 않다. 정당 지지율 측면에서는 다른 정당을 압도하지만 실제 투표율을 감안하면 민주당 우세를 장담키 어렵다는 것. 특히 지역구가 담양·함평·영광·장성인 이개호 의원과 완도 출신인 김영록 장관 등이 모두 전남 서부권 출신이다. 도지사 선거가 동부 대 서부의 소지역 대결 구도로 흐를 경우 예상보다 접전이 벌어질 수 있다. 민주평화당 후보로 거론되는 박지원 의원도 전남 서부 출신이다. 

실제 순천시 등 전남 동부권 여론은 서부권과 크게 달랐다. 2월 4일 오전 순천시 예향촌에서 순천종합버스터미널로 향하는 길에서 만난 택시기사는 “(전남) 동부 인구가 더 많은데 지사는 계속 서부에서만 나왔다”며 “이번에는 이쪽에서 지사를 만들어보자는 여론이 높다”고 말했다. 순천종합버스터미널에서 만난 60대 중반의 김모 씨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보성에서 이용원을 운영한다는 그는 “늘 하던 사람 말고, 이번에는 새 사람으로 확 바꿨으면 싶다”고 말했다. 전남 동부에서 도지사 후보로 거론되는 이는 국민의당 주승용 의원과 노관규 전 순천시장, 조충훈 순천시장 등이다. 

또 한 가지 변수는 세대별 투표율 차이가 선거 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다. 광주와 전남에서 만난 20, 30대는 이번 지방선거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에 비해 60대 이상 고연령층에서는 ‘지역의 목소리를 내려면 민주평화당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드러내 대조를 이뤘다. 세대별 투표성향 차이가 투표율과 결합할 경우 의외의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 

2월 3, 4일 광주와 무안, 순천 등지에서 만난 젊은이들은 안 대표의 바른정당과 통합, 그에 따른 민주평화당 창당에 대해 대체로 강 건너 불구경인 듯했다. 3일 토요일 저녁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앞 충장로와 금남로 사이는 주말을 즐기려는 젊은이로 북적였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젊은이들에게 ‘국민의당-바른정당 통합’과 ‘민주평화당 창당’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대부분 “관심 없어요”라는 차가운 답변이 돌아왔다. 광주는 물론, 전남 무안과 순천에서 만난 젊은이들도 ‘선거 얘기’를 꺼내면 무조건 반사하듯 ‘모른다’ ‘관심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3일 오후 무안 읍내 한 커피숍에서 만난 30대도, 4일 오후 순천종합버스터미널에서 만난 20대 초반 여대생들도 선거와 정치 얘기를 꺼내면 고개부터 절레절레 흔들었다. 

40, 50대 중년층에선 호남 정치권이 또다시 분열하는 것에 대한 거부 정서가 팽배해 있었다. 충장로 음식점에서 일하는 50대 중반 여성은 “서로 힘을 합해 일 좀 했으면 좋겠는데 또 갈라선다고 하니 마음이 좋지 않다”고 했다. 40대 초반인 회사원 장모 씨도 “정치인들이 선거 때만 되면 탈당과 창당을 반복하는데, 자기들 밥그릇 지키려고 그런 것 같아 영 보기 좋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이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네 편 내 편 갈라서 싸우면 쓰겠느냐는 여론이 높아 이번에는 민주당이 휩쓸 수 있다”고 전망했다.

윤장현 이용섭 앞서거니 뒤서거니

광주와 전남 등지에서 만난 시민들 사이에서는 민주평화당 창당에 대한 뜨거운 반응을 느낄 수 없었다. 다만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 가운데는 “오죽하면 딴살림을 차리겠느냐”고 두둔하는 인사가 적잖이 눈에 띄었다. 남구 봉선동에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으로 가는 길에 만난 한 택시기사는 “안철수가 나이 든 호남 사람들을 쫓아내는 것 같아 못마땅하다”며 “안철수가 이번에는 아주 잘못했다”고 말했다. 1913송정역시장에서 만난 60대 후반 아주머니도 “잘났건 못났건 우리 지역 사람을 밀어줘야지”라며 민주평화당 지지 의견을 밝혔다. 

한편 윤장현 광주시장에 대한 평가는 호불호가 갈렸다. 광주종합버스터미널에서 동구로 향하는 길에 만난 한 택시기사는 “윤 시장이 뚜렷이 잘못한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한 번 더 해야 하는 이유를 찾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광주시장에 도전하는 후보자는 여당인 민주당에만 6명이다. 윤 시장을 비롯해 2월 7일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에서 사퇴한 이용섭 전 부위원장, 양향자 최고위원, 강기정 전 의원, 최영호 광주 남구청장, 민형배 광주 광산구청장 등이다. 이들은 저마다 탄탄한 조직력을 갖고 있다. 다만 인지도 측면에서는 현역 프리미엄이 있는 윤 시장과 대통령 측근으로 알려진 이용섭 전 부위원장이 앞선다는 것이 중론이다. 

민주평화당은 광주시장 후보자를 놓고 고심 중이다. 민주평화당이 국회에서 캐스팅보트를 행사하려면 의석 한 자리라도 중요한 상황이라 현역의원의 출마 가능성은 낮다. 전남에서 십수 년째 활동하는 한 인사는 “민주평화당 구성원을 보면 신생 정당답지 않게 노회한 느낌을 줄 수 있다”며 “참신한 인물을 내세워 신구 조화는 물론, 비전을 제시해야 민심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번 지방선거 때 광주·전남에서는 2월 8일 대법원 확정 판결로 당선 무효가 된 광주 서구갑과 전남 영암·무안·신안 등 두 곳에서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재보선)도 함께 치른다. 민주평화당이 호남 정당으로 인정받느냐는 지방선거뿐 아니라 두 곳의 재보선 결과에도 달렸다. 민주평화당이 호남에 기반을 두고 창당했다는 점에서 둘 다 놓칠 경우 호남에서 외면받았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