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백화점 강남점 본관 1층에 있는 반려동물 전문 컨설팅 스토어 ‘집사(ZIPSA)’.
국내 반려동물시장 규모는 계속 커지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가구의 비율은 28.1%. 5년 새 10.2%p 증가했다. 국내 457만 가구, 약 1000만 명이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인 5명 중 1명꼴이다. 통계청과 농협경제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반려동물시장 규모는 2012년 9000억 원대에서 2020년 6조 원대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농림축산식품부도 지난해 축산정책국 방역관리과 아래 반려동물 관련 전담 조직인 ‘동물복지팀’을 신설하고 담당 인원을 늘렸다.
반려동물시장에 롯데도 도전장
이슬기 씨의 반려견 보리, 이슬기 씨가 반려견 보리와 함께 ‘집사’ 매장을 둘러보고 있다.(왼쪽부터)
‘집사’라는 이름은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이들이 스스로를 ‘강집사’(강아지 집사)나 ‘냥집사’(고양이 집사)라고 부르는 데서 착안했다. 집사(執事)가 집안의 대소사를 살뜰히 살피듯, 반려동물의 생애주기와 특성에 따라 문제점을 분석하고 맞춤형 솔루션을 제시하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신세계 이마트에서는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반려견 몰리(Molly)의 이름을 따 론칭한 ‘몰리스 펫샵(Molly’s Pet Shop)’이 성업 중이다. 백화점으로 넘어가도 쟁쟁한 상대들이 있다. 갤러리아백화점에 있는 ‘펫 부티크’와 현대백화점에 있는 ‘루이 독’이 바로 그것. ‘집사’는 과연 이들과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을까. 궁금하면 직접 확인해보는 게 답이다.
문제는 기자가 1000만 명에 속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집사’가 자랑하는 반려동물 산책 대행 서비스를 체험하려는데 개가 없다. 어쩐지 백화점 섭외가 잘되더라니. 다급하게 주변에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을 수소문했으나 자기가 키우는 토끼 사진을 수줍게 메신저로 보내오는 친구와 앵무새를 키우는 친구, 버려진 고양이 사진을 프로필에 걸어둔 선배가 전부였다. 사내 상사에게 ‘견공’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상사의 견공도 상사일 것 같은 걱정이 앞섰다. 어렵게 생후 10개월에 몸무게 8.8kg인 암컷 시바이누(시바견) ‘보리’와 그의 가족인 이슬기 씨를 섭외했다. 이씨는 “반려동물을 데리고 갈 수 있는 쇼핑몰은 경기 하남 스타필드가 거의 유일했는데, 강남에도 데려갈 수 있는 매장이 생겼다니 궁금하다”며 흔쾌히 취재에 응했다.
펫 컨설턴트 도움으로 사료 구매
‘집사’에서 판매하고 있는 반려동물 사료들.
‘집사’는 반려견 산책 대행 서비스 업체인 우프와 연계해 유료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가격은 견종에 따라 1시간에 1만 3200~1만 6500원이다. 20kg 이상인 대형견은 단독으로 산책을 진행해야 해 가격이 조금 올라간다(2만5300원). 보통은 2시간가량 반려견을 맡겨놓고 쇼핑을 즐기거나 식사하고 차를 마신다고.
‘집사’에서는 사전 예약 고객을 대상으로 매주 수요일 윤병국 청담우리동물병원 원장이 반려동물 관련 기초 의료 및 영양학 관련 상담 서비스를 한다. 매주 목요일에는 이웅용 이삭애견훈련소 소장이 반려견 기초 행동교정 수업을 진행한다. 매장 관계자는 “펫 푸드 정기 배달 서비스, 홈파티 방문 케이터링 서비스 등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우프의 서비스를 이용하기 전 견주는 설문지를 작성해야 한다. 반려견이 기본교육은 돼 있는지, 다른 강아지와 잘 어울리는지, 산책 시 줄을 당기는지, 바닥에 있는 것을 주워 먹는 습관이 있는지 등을 세세하게 체크하면 도그 워커는 이를 숙지하고 강아지에게 가장 편안한 방향으로 산책을 진행한다. 이씨는 “보리가 나가면 꼭 배변을 본다”고 말했다.
‘우리 아이’를 처음 보는 낯선 이에게 맡겨두면 불안하지 않을까. 그래서 우프는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을 통해 산책하는 동안 반려견의 사진과 영상을 찍어 실시간으로 주인에게 보내준다. 기자도 우프 오픈 채팅방에 들어갔다. 도그 워커 김씨가 보리의 사진과 함께 ‘산책 출발하겠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이후 10여 분마다 보리가 뛰는 모습, 길에서 뭔가를 구경하는 모습 등을 볼 수 있었다.
보리가 낯선 남자와 강남 나들이를 즐기는 동안 이씨와 기자는 반려동물 관련 학과를 졸업한 ‘펫 컨설턴트’의 도움을 받아 쇼핑을 했다. ‘집사’의 펫 컨설턴트는 견종에 맞는 사료와 간식을 추천하고 적합한 장난감을 골라준다. 이씨가 “보리에게 이 간식을 사줬는데 잘 먹지 않더라”고 하자 펫 컨설턴트는 “좀 더 부드럽게 씹히는 제품이 있다”며 추천했다. 매장에서 판매 중인 품목은 사료 100여 종, 간식 500여 종, 관련 용품 및 서적 100여 종 등 총 700여 종이다.
프리미엄 간식, 한복도 비치
도그 워커가 보리와 산책하며 보내온 메시지(위). 보리가 도그 워커 김용재 씨와 함께 산책을 나가는 모습.
사료에 섞어 먹이는 각종 영양 파우더도 판매했다. 이 정도면 진정 ‘개 팔자가 상팔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주인을 잘 만났을 때 이야기다. 기자조차 태어나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상어연골 파우더도 있었다. 펫 컨설턴트는 “성장기 반려견에게 좋은 제품”이라고 설명했다. 입맛이 없는 반려견을 위해 밥에 섞어 먹이는 황태 파우더도 있었다. 매장 관계자는 “다른 매장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다양한 프리미엄 제품을 들여놓는 데 주력했다. 일반 제품이 용량과 가격만 표기한 것과 달리 프리미엄 제품은 단백질 함량이나 알레르기가 있는 반려견을 고려한 성분 조합까지 설명해놓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제품 소개에 이유식 성분을 소개하듯 자세한 설명이 적혀 있었다.
명절을 맞아 애견 의류 전문 브랜드 ‘이츠독’의 애견 한복도 진열돼 있었다. 강아지 전용 노리개가 귀여웠다. 이날 매장을 방문한 한 중년 여성은 강아지 한복을 두 벌 구매했다. ‘우리 아이’를 위해 쓸 때는 확실하게 쓰는 반려인의 모습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이씨는 “다른 백화점 매장과 제품 가격대는 비슷하다. 일반 소규모 펫숍에 비해서는 물건이 좋은 편이라 가격이 저렴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집사’에서 판매하고 있는 각종 수제 간식과 영양 파우더.
이씨는 늘 밖에서 배변하는 보리 때문에 아침과 저녁 꼭 1시간 이상씩 산책을 해왔다. 그는 “보리가 불편하면 배변을 안 하는데 산책 시간이 편했던 것 같다”며 “추운 날씨에 밖에서 강아지와 계속 돌아다니느라 도그 워커가 고생이 많았다. 봄이나 가을처럼 날씨가 좋을 때라면 이용해볼 만한 서비스 같다”고 말했다. 이씨는 깔끔하게 정리된 매장과 펫 컨설턴트의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친절한 설명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다만 이씨는 “반려견 산책 서비스 외에도 반려견을 맡겨둘 수 있는 서비스나 카페가 확충된다면 좋을 것 같다. 산책 서비스는 비나 눈이 오면 이용하기 어렵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김민아 팀장은 “‘집사’는 그동안 반려동물과 함께 백화점을 방문할 수 없던 고객을 위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 앞으로 유기견 입양 지원 캠페인 등에도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반려동물을 키워왔다는 김 팀장은 “백화점에 반려동물 돌봄 서비스가 있지만 한 공간에 갇혀 있는 것보다는 산책하는 기쁨을 누리게 해주고 싶었다. 고객은 편안하게 쇼핑하고 강아지는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집사’에서 판매하는 제품들은 상반기 중 롯데백화점 온라인몰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오프라인 매장도 수도권에 추가로 열 계획이다. 이날 보리는 매장에서 산 고급 간식을 양껏 먹고는 기분이 좋아졌는지 기자의 품에 안겨 있다 곤히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