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가 몰려 있는 서울 여의도 빌딩 숲. [동아DB]
주요 경제 신문이나 잡지는 대개 1년에 한 번 정도 분야별 베스트 애널리스트를 선정한다. 이렇게 선정된 애널리스트는 경력을 소개할 때마다 이 사실을 빼놓지 않는다. 예를 들어 ‘2017년 주간동아가 선정한 반도체 업종 베스트 애널리스트’ 식으로 말이다.
영국 유명 경제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는 최근 중국 애널리스트들이 ‘뉴 포천(New Fortune)’이란 중국 잡지가 투표로 선정하는 애널리스트 순위에 오르고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투표하는 사람에게 공짜로 애플 아이폰을 준다거나, 설을 맞아 빨간 봉투(red envelop)를 건네는 수준을 넘어 진짜 뇌물을 주기도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한 여성 애널리스트는 검은색 정장에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빨간 소파에 누워 있는 선정적인 사진을 위챗(WeChat) 프로필 사진으로 올리기도 했다. 물론 이 애널리스트는 사생활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홍콩의 한 남성 애널리스트는 케이팝(K-pop) 댄스를 추는 영상을 인터넷에 올려 톡톡히 효과를 봤다. 미국 ‘블룸버그’에 따르면 잠시 동안이긴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보다 훨씬 많은 클릭 수를 받았다고 한다.
중국 애널리스트들이 이렇게 과도한 행동을 하는 이유는 뭘까. 무엇보다 중국에 너무 많은 증권사와 애널리스트가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본업인 투자분석은 그다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많은 경쟁자 속에서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면 다른 방법이 필요했던 것이다. 중국에서 스타 애널리스트가 되면 미국 월가의 정상급 애널리스트 부럽지 않은 연봉을 받을 수 있다.
미인대회가 된 베스트 애널리스트 경쟁
투자자들은 ‘서로 비슷한 의견만 낸다’ ‘분석 결과가 시장 상황과 다르다’ ‘리포트 내용을 상황에 맞춰 바꾼다’ 등 애널리스트 리포트에 불만이 많지만 그래도 구해서 읽어보지 않을 수 없다. 세계 굴지의 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자도 마찬가지다. 기관투자자는 리포트를 받는 데 그치지 않고 콘퍼런스 콜 등에서 애널리스트를 직접 만나 더 많은 이야기를 들으려 한다. 개인투자자는 물론, 기관투자자도 애널리스트 리포트나 면담에 비용을 지불하지는 않는다.애널리스트는 왜 시간과 노력을 들여 리포트를 쓰고 콘퍼런스 콜에 응하는 걸까. 투자자들은 리포트를 쓴 애널리스트가 몸담고 있는 증권사를 통해 금융자산을 거래한다. 즉 거래 수수료 등으로 애널리스트가 간접적으로 수익을 얻는 구조다. 결국 최종 투자자인 연기금 또는 펀드에 가입한 개인투자자가 거래비용을 지급하는 셈이다. 이때 베스트 애널리스트에 선정되면 회사에 엄청난 도움이 된다.
EU, 리포트 구입비를 내도록 법 시행
증권가 ‘애널리스트 전성시대’가 저물고 있다. [동아DB]
애널리스트 리서치만 해도 비록 EU 법이지만 이미 미국 등 여러 나라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행 미국 금융법은 증권사에게 따로 리서치 비용을 지불하지 못하게 돼 있다. 그렇기에 미국 증권사는 EU 자산운용사들에게 리서치와 리포트를 돈 받고 팔 길이 없다. 결국 미국 역시 EU의 변화에 발맞춰 법 개정 작업에 들어갔다고 한다.
애널리스트 리서치에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면 많은 기관투자자가 가장 효율적인 애널리스트 리서치를 찾아보려 할 것이다. 당연히 좋은 콘텐츠를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하는 리서치를 선택하지 않겠나. 과거처럼 거래하는 증권사의 애널리스트가 만든 것이라고 일단 보는 일은 없을 테다. 앞으로는 그저 그런 리포트를 대량 생산하던 증권사가 설 자리는 없을 것이다. 분석의 질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베스트 애널리스트가 되는 것은 별 소용이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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