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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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드 니로 감독의 ‘굿 셰퍼드’

국가에 충성 뒤안길 한 가족의 피눈물

  • 입력2007-04-11 20: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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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버트 드 니로 감독의 ‘굿 셰퍼드’
    당대 최고 배우로 꼽히는 로버트 드 니로의 감독 데뷔작 ‘브롱스 이야기’(1993년)를 보고 실망했다면, 그것은 영화에 질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연출력이 좋지 않아서가 절대 아니다. 로버트 드 니로라는 이름에서 발생하는 아우라가 너무 커서 무엇인가 엄청난 것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 이름만으로도 영화 팬들에게 믿음을 주는 배우 로버트 드 니로가 두 번째 연출작을 내놓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는 배우로서 쌓아올린 공적 이상의 내공을 비축할 기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의 두 번째 연출작 ‘굿 셰퍼드’는 미국중앙정보국(CIA)과 그 전신인 미국전략사무국(OSS)에서 활약한 정보요원 에드워드 윌슨(맷 데이먼 분)의 생애를 그린다. 매우 빠른 편집과 간결한 묘사, 압축적인 설명은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다.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부터 미국이 소련과 날카롭게 대치하던 1950년대, 60년대 초 쿠바 미사일 위기에 이르기까지 30년에 걸쳐 미국 첩보기관의 이면과 역사를 생생히 보여준다. 하지만 감독은 민주주의와 국가를 위해 사랑과 가족을 희생한 한 남자의 개인사에 더 초점을 맞추는 듯하다.

    그의 데뷔작 ‘브롱스 이야기’는 갱스터물이면서 계층간 갈등이나 존재에 대한 성찰까지 깊이 있게 다뤘으며, 또한 성장 영화이기도 하다. 로버트 드 니로 감독은 영화에서 버스 운전사 로렌조(로버트 드 니로 분)와 그의 아들 칼로제로(프랜시스 카프라 분)를 중심축으로 이야기를 펼쳐나가는데, 부자 관계는 영화의 수면 아래에서 모든 사건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CIA의 음모와 비밀을 파헤치는 첩보스릴러 ‘굿 셰퍼드’에서도 역시 내러티브의 중심에 부자간 갈등이 보이지 않게 자리잡고 있다.

    생생히 펼쳐지는 미국 첩보기관 이면과 역사



    ‘굿 셰퍼드’의 오프닝 시퀀스(영화 시작 전 상영되는 장면)는 흑백으로 비춰지는 침대 위 섹스신이다. “내 곁에 있으면` 안전해”라는 여자의 목소리도 함께 깔린다. 이는 영화의 중심축이 어디에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왜 감독은 이 장면을 오프닝 시퀀스로 선택했을까? 그가 말하고 싶은 것은 가족의 문제, 그것도 아버지와 아들을 중심에 놓고 전개되는 가족간의 갈등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첫 배경은 1961년 4월. 쿠바에 카스트로가 이끄는 공산정권이 들어서며 위기가 고조된다. 쿠바 해안에 상륙했던 미국 해병대는 기다리고 있던 쿠바군에 밀려 퇴각한다. 상륙지점의 정보가 노출된 것이다. 정치적으로 큰 타격을 받은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CIA는 내부 첩자를 비밀리에 조사하기 시작한다.

    로버트 드 니로 감독의 ‘굿 셰퍼드’
    그러던 중 CIA 초창기부터 첩보 업무를 담당한 베테랑 요원 에드워드 윌슨에게 익명의 녹음 테이프와 흑백사진이 도착한다. 첩자를 알아낼 수 있는 유일한 단서인 이 증거물의 정체를 하나씩 밝혀나가면서 에드워드는 자신의 CIA 활동을 회상한다. 짙은 회색 중절모를 쓰고 비둘기색 트렌치코트를 입은 그는 신중하고 날카로운 정보요원 특유의 분위기를 풍긴다.

    시간은 193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명문가 출신으로 예일대 재학생이던 에드워드는 ‘해골단(Skull and Bones Society)’이라는 비밀단체에 가입한다. 1832년 만들어진 예일대 학생들의 비밀 서클인 해골단은 매해 15명만을 신입회원으로 가입시키는 특별한 조직. 현재까지 미국 대통령 중 세 사람이 ‘해골단’ 출신일 만큼 미 정계와 재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청년 에드워드는 지도교수이자 나치의 스파이라는 의심을 받고 있는 미-독문화위원회 회장 프레데릭스 교수(마이클 갬본 분)와 만남을 갖고, 청각장애인이지만 마음이 통하는 로라와 데이트를 즐기기도 한다. 하지만 해골단에서 만난 클로버(안젤리나 졸리 분)와 충동적인 하룻밤을 보낸 뒤, 그녀의 임신으로 사랑 없는 결혼식을 올린다. 이후 에드워드가 첩보활동을 위해 전쟁 중인 유럽으로 떠나는 이야기가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아버지와 아들 관계 유독 강하게 집착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귀국한 에드워드는 자신의 아들인 에드워드 2세와 처음 만난다. 다섯 살인 아들과 서먹하면서도 의미 있는 만남을 가진 그는 아버지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한다. 아들의 합창단 발표에 참가한 에드워드는 그 와중에도 끊임없이 첩보활동과 관련된 일을 한다. 노래를 부르면서 그런 아버지를 바라보는 에드워드 2세의 표정을 교차편집한 대목에서 감독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냉전시대,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와 심리전을 펼치며 상대의 핵심요원을 첩자로 빼오는 등 다양한 비밀 공작활동을 펼치는 본 줄거리와 특별한 관계가 없어 보이는 에드워드 2세의 등장. 이는 감독의 의중이 어디에 있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다. ‘굿 셰퍼드’의 핵심은 에드워드와 그의 아들을 축으로 전개되는 가정 내 작은 비극이다.

    로버트 드 니로 감독의 ‘굿 셰퍼드’

    '굿 셰퍼드'

    예일대 재학시절 ‘해골단’에 가입할 당시 에드워드는 모든 참가자들 앞에서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는다. 자신이 여섯 살 때 아버지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야기를 꺼낸 것. 해군 제독이 될 수도 있었던 그의 아버지는 비겁했다는 주위의 비난을 견디지 못하고 가족에게 유서를 남긴 채 권총으로 자살한다. 죽기 직전 아버지는 에드워드에게 “절대 거짓말하지 마라. 결국 모든 것을 다 잃는다”라고 말한다.

    에드워드가 겪은 이 에피소드는 에드워드 2세와의 관계에서도 이어진다. 감독은 이를 통해 국가와 같은 거대조직이 개인의 삶에 끼치는 영향을 비판적으로 보여준다. 윌슨가에 닥친 이 비극은 일반 모든 가정의 비극으로 확산될 수도 있다. 감독이 ‘굿 셰퍼드’에서 말하려는 바가 바로 이것이다.

    로버트 드 니로의 영화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유독 집착하며, 여성은 종속적 위치에 머무른다. 이는 가부장적 권위주의에 젖은 자신의 세계관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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